< 유비무환(有備無患), 평소에 준비가 철저하면 후에 근심이 없습니다. >
유비무환(有(있을 유) 備(갖출 비) 無(없을 무) 患(근심 환))!
"평소에 준비가 철저하면 후에 근심이 없습니다! 한 번 당했으면 됐습니다. 또 당할 이유 없습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고사성어의 유래를 보니….
춘추시대에 진나라의 도공(悼公)에게 사마 위강(司馬魏絳)이라는 유능한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는 법을 엄히 적용하는 것으로 이름이 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도공(悼公)의 동생인 양간(楊刊)이 군법을 어기자 그의 마부를 대신 잡아다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양간이 형인 도공에게 호소하기를,
"지금 사마 위강은 눈에 뵈는 것이 없나 봅니다. 감히 제 마부의 목을 베어 죽여서 우리 왕실을 욕보였습니다."
그러자 도공은 자초지종도 듣지도 않고 사마 위강을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이때 곁에 있던 양설이라는 신하가 사마 위강을 변호했습니다.
"위강은 충신(忠臣)으로 그가 그런 일을 했다면 반드시 연유(緣由,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도공이 그 내막을 알게 되어 사마 위강을 더욱 신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해 정나라가 출병하여 송(宋)나라를 침략하자 송나라는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진나라의 도공은 즉시 노(魯), 제(齊), 조(曹)나라 등 12개국에 사신을 보내 연합군을 편성하여 사마 위강의 지휘로 도성을 에워싸고 항복을 요구하여 마침내 정나라는 연합국과 불가침조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한편 초(楚)나라는 정나라가 북방과 화친을 맺자 이에 불만을 품고 정나라를 침공하였습니다.
초나라의 군대가 강성함을 안 정나라는 초나라와도 화의를 맺었습니다.
이러한 정나라의 태도에 화가 난 12개국이 다시 정나라를 침공했으나, 이번에도 진나라의 주선으로 화의를 맺자 정나라는 진나라의 도공에게 감사의 뜻으로 값진 보물과 궁녀를 선물로 보냈고 진나라의 도공은 이것을 다시 사마 위강에게 하사했습니다.
사마 위강은 도공의 하사 선물을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정):
"평안히 지낼 때에도 위태로운 때를 생각해야 하고(居安思危),
위태로운 때를 생각한다면 언제나 준비가 있어야 하며(思危則有備),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有備則無患)."
이 말을 전해 들은 도공은 정나라가 보내준 궁녀들을 모두 정나라로 다시 돌려보냈고, 이런 사마 위강의 도움을 얻어 마침내 천하통일(天下統一)의 패업(霸業)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지키는 것,
거룩한 예배를 지키는 것은….
신자(信者)가 아닌 이상,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弟子)로서, 성도(聖徒)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첫댓글 그럼요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이모양 저모양으로 교회와 예배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사랑의 수고가 있었기에 주일예배가 방해없이 지켜졌다고 믿습니다
예배방해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찾아 미리 공포한것도 예배방해를 모의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앞에 큰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위함 뿐 아니라 무지하여서 물질적인 큰 손해를 입지 않도록하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익숙지 않은 환경때문에 불편하고 마음이 상하셨더라도 이해해주시고, 교회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함께 동참해주세요...
그것이 우리 교회가 살고 예배가 사는 것입니다
오늘 한 연예인의 힘들었던 사건 기사를 보았습니다.
정선희 "기자들, 냉장고 박스에 숨어 나 지켜봤다" 과거 상처 토로….
"또 한 번은 잡지사 수습기자인 거 같은데 추위에 떨고 있더라. 내가 그 사람을 불러서 인터뷰 못한다고 거절했더니, 나를 인터뷰하지 못하면 편집장이 데스크에 오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편집장에게 직접 손 편지로 '지금은 미안하고 나중에 지나가면 꼭 인터뷰 하겠다'고 써서 줬는데 그 편집장이 내 손 편지를 그대로 기사로 써서 내보냈다. 정말 화가 났었다"며 과거 사건들을 토로했다.
한 연예인에 대해서 이런 일도 하는데, 사랑의교회를 어지럽히는 ㅅ회넷에서는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참으로 불쌍합니다ㅡ시간이 지날수록 더 초조해져서 어떤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슈로 딴지를 걸지...지겹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