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 능선은 백두대간 구룡령 주변, 그 뒤 왼쪽은 사삼봉, 가운데는 응복산, 그 오른쪽은 가칠
봉, 멀리 오른쪽은 방태산 연릉
居然惑衆岐 맘 놓고 가다가 갈림길 현혹됐음이라
始思行直遂 처음엔 곧장 가면 되리라 여겼는데
俄覺勢參差 이윽고 삐뚤빼뚤 어긋남을 알았어라
忽入幽崖險 아슬아슬 낭떠러지 깊이 빠져 들었다가
旋登峻嶺危 길 돌려 올라서면 험준한 산등성이
搜深猶跼蹐 잔뜩 몸 굽힌 채 깊은 골짝 뒤지고
逢坦枉奔馳 평탄한 길 만났다고 마구 잘못 달리다가
指畫終非是 동서남북 가늠하면 결국은 잘못된 길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7)
―― 택당 이식(澤堂 李植, 1584∼1647), 「산길을 가다 길을 잃고(山行失路)」에서
▶ 산행일시 : 2020년 5월 23일(토), 맑음, 연무 낌
▶ 산행인원 : 12명(버들, 악수, 대간거사, 일보, 소백, 챔프, 산정무한, 신가이버, 해마, 해피,
무불, 메아리)
▶ 산행시간 : 8시간 2분
▶ 산행거리 : 도상 11.7km(1부 3.0km, 2부 8.7km)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
06 : 24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43 -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
09 : 11 - 구룡령 넘어 지방넘이 가기 전 산모퉁이, 산행시작
10 : 19 - 백두대간 주릉
10 : 50 - 약수산(藥水山, △1,306.2m)
11 : 13 - 1,218.5m봉
11 : 40 - 구룡령(九龍嶺), 1부 산행종료, 점심
12 : 14 - 2부 산행시작
12 : 40 - △1,101.4m봉
13 : 27 - △1,129.3m봉
14 : 35 - 골짜기, 구룡령 옛길
15 : 40 - 1,072.3m봉
16 : 00 - 1,101.3m봉
16 : 22 - △1,029.1m봉
17 : 13 - 원당초등학교 명개분교 터, 산행종료
18 : 27 ~ 20 : 20 - 홍천, 목욕, 저녁
21 : 4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1.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1-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2. 산행 고도표(산정무한 님 오룩스 맵)
▶ 약수산(藥水山, △1,306.2m)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가 모처럼 많은 상춘객들로 붐빈다. 주차장은 대형관광버스가
드물고 자가용으로 꽉 찼다. 대부분 가족 나들이다. 여느 때처럼 카메라 들고 데크전망대에
나가 공작산을 바라보며 오늘 일기를 가늠한다. 비교적 맑다. 휴게소 건물 맨 끄트머리 구석
진 곳에다 설치해 놓은 자판기에서 커피 뽑아 졸음 쫓고 차창 밖 산천경개 구경한다.
오늘 산행의 콘셉트는 산나물을 뜯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곰취다. 창촌을 지날 때 챔프 님과
소백 님은 가게에 들러 큼지막한 양파망을 얻어왔다. 산나물을 뜯어 담을 용기다. 비닐봉지
에 담으면 공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나물이 떠서 변색되기 일쑤라 양파망이 아주 좋다.
한편, 챔프 님은 걱정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해서 가면 꼭 허탕 치는 수가 잦더라나.
미리 결과를 말하자면, 걱정대로 그랬다.
56번 국도는 계방천 외청도교를 건너고 나서부터는 구절양장 산굽이 돌고 돌아 오른다.
구룡령, 고개가 가파르고 험하여 마치 용이 구불구불 기어오르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그대로다. 구룡령 고갯마루를 넘고 내릴 때는 약수산 북쪽 자락을 돈다. 길쭉하게 내리
뻗은 산모퉁이를 잡는다. 다행히 낙석방지용 철조망을 잇댄 틈이 보인다.
버스를 잠시 멈추게 하고 익숙하게 옹벽을 올라 철조망 기둥사이의 틈을 파고든다. 그런데
정작 고약한 건 이 다음이다. 절개지 가파른 사면을 또 철조망으로 덮어놓았다. 철조망이 무
척 미끄럽다. 잡목은 성기어 납작 엎드려 철조망에 양손 열 손가락을 꽉 끼워 움켜쥐고서 기
어오른다. 순전히 악력(握力)으로 오른다. 절개지가 높기도 하다. 각자도생한다.
철조망을 가까스로 통과하자 밀림 속 너덜이 대기하고 있다. 태고의 이끼 낀 암릉 같은 너덜
이다. 어제 내린 비에 젖어 미끄럽다. 성한 너덜이 없다. 짜릿한 손맛 본다. 부토 혹은 낙엽에
가린 허방에 빠질라 뜀바위로 넘고 넘는다. 거기에 덩굴 숲도 한 몫 하니 손과 발이 바쁘다.
20분 남짓 된 힘을 쏟아 한 고비를 넘겼다. 보도블록이 널린 공터에 올라선다. 예전에 헬기장
이었나 보다.
때 이른 첫 휴식한다. 입산주 냉탁주가 입에 달다. 가파름은 약간 수그러들었지만 크고 작은
너덜은 이어진다. 이래서는 산나물은 물 건너가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쩌다 하
늘이 뚫려 풀숲이어야 할 개활지는 삭막하기 짝이 없다. 숫제 풀이 자라지 않았다. 솜털 부숭
부숭한 단풍취만 나들이 나왔다. 그리고 철쭉 숲이다.
대간거사 총대장님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에서인가 보았다고 했다. 단
풍취야말로 산중 최고의 나물이라고 극찬하더라 누차 광고하였으나 챔프 님은 조금도 거들
떠보지 않는다. 세상에 맛없는 게 단풍취라며 일축한다. 빈눈 빈손으로 백두대간 주릉까지
올라와버렸고, 1부 산행은 사실상 만사휴의다. 휴식 빌어 탁주나 분음한다.
백두대간 주릉은 잘 다듬어 놓았다. 가파를만하면 핸드레일과 계단을 설치했다. 약수산 정상
약간 못미처 전망바위가 있다. 북동쪽으로 조망이 훤히 트인다. 연무가 짙어 원경은 가렸다.
암벽에 붙인 추모동판을 본다. 아마 백두대간 중주 중에 유명(幽明)을 달리 했나 보다. “따뜻
하고 정다운 사람/독수리 날개 이제윤 님/파란 하늘 높은 산/훨훨 백두대간 날아/영원히 행복
하소서! 용인백두대간 5기 종주대”
약수산 정상은 비좁다. 키 큰 나무숲 둘러 아무 조망도 없다. 삼각점은 어렵게 판독하여 ‘연
곡 315, 2005 재설’이다. 약수산이란 이름은 이 산 남쪽 골짜기에 있는 명개약수에서 유래하
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 근처에는 유명한 약수가 여럿 있다. 가칠봉 아래 삼봉약수, 암산
아래 불바라기약수, 갈전곡봉 아래 갈전약수 등이 그것이다.
3.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에서 바라본 공작산
4. 약수산 오르는 길
5. 철쭉
6. 약수산에서 조망, 앞 능선이 백두대간 구룡령 주변
7. 약수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약수산 북사면
8. 은방울꽃
9. 구룡령에서 바라본 오대산 연릉
10. 구슬붕이
풀은 아직 자라지 않았고 철쭉 숲은 울창하여 사면을 누빌 일이 없으니 그저 줄달음한다. 다
만, 섭섭한 마음을 달래려고 약수산 내린 넙데데한 안부에서 1,218.5m봉을 왼쪽 사면으로
깊고 길게 돌아 넘는다. 1,218.5m봉 넘고 등로는 급전직하한다. 통나무계단과 돌계단 0.6km
를 쏟아 내린다. 발걸음을 제동하느라 땀난다.
구룡령. 해발 1,013m의 준령이다. 대기가 서늘하다. 고갯마루 오른쪽 갓길에는 오토바이 전
시장을 방불케 한다. 주로 할리 데이비슨이다. 구룡령이 그들의 중간 기착지다. 오토바이로
하도 할리를 들먹이고 비싼 기종은 3천만을 호가한다기에 찾아보았다. 1903년 미국의 윌리
엄 실베스터 할리(William Sylvester Harley)와 아서 데이비슨(Arthur Davidson)이 공동
창업하여 각각의 이름을 따 할리 데이비슨이라 지었다 한다.
“할리 데이비슨은 아메리칸 크루저 장르로 흔히 ‘할리’라고 부른다. 일제 중에도 크루저 모델
이 다수 있고, 유럽의 몇몇 브랜드 역시 크루저를 만들고 있으나 할리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은
없다. 크루저 장르는 절대성능보다 감성적인 부분이 더 중요한데, 성능으로 할리를 능가하는
크루저는 많이 있지만 할리의 독보적인 위상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이처럼 하나의 바이크 장르를 단독 브랜드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예는 할리 데이비슨이 유
일하며, 자동차로 치면 이는 세단시장을 단 하나의 브랜드가 독식하고 있는 것처럼 거의 불
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세상 모든 남자들의 영원한 로망, 미국 바이크-할리
데이비슨, 이완수)
우리는 그들과 좀 떨어진 갓길 나무그늘에 들어 점심밥 먹는다. 오전의 1부 산행에 별로 한
게 없어 밥맛이 없지만 오후의 2부 산행이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 억지로 먹어둔다. 구룡령
고갯마루 오른쪽에 목조건물인 산림전시관이 있다. 노산 이은상이 짓고 도정 권상호가 쓴,
시 ‘나무의 마음’ 4연을 전시관 현판으로 걸었다. 그중 제1연이다.
나무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소
숨 쉬고 뜻도 있고 정도 있지요
만지고 쓸어주면 춤을 추지만
때리고 꺾으면 눈물 흘리죠
▶ 1,129.3m봉
2부 산행. 가파른 사면을 덮은 데크계단으로 오른다. 늘어지게 휴식하였던 터라 갑자기 다리
에 힘을 주려니 쥐가 나려고 한다. 불과 10분인 계단길이 퍽 길다. 가쁜 숨 몰아쉬며 능선에
올라서고, 버들 님과 아름다운 동행을 마다하지 않은 소백 님, 해마 님은 곧바로 남릉을 진행
하기로 한다. △1,029.1m봉에서 산나물이나 뜯으며 놀고 계시라. 그러면 우리는 구룡령 옛
길을 빙 돌아 그리로 가리다.
봉봉이 준봉이다. 1,092.9m봉 넘어 내린 안부는 ╋자 갈림길이 잘 났다. 구룡령 옛길이다.
명지리와 갈천리를 오가는 지름길이다. 못 본 체하고 지나친다. △1,101.4m봉 삼각점은 ╋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이다음 1,122.0m봉은 나와 일보 님 둘이 등로 따라 직등하고 다수 일
행은 왼쪽 사면을 훑는다. 그러나 그들은 산죽 숲만 헤쳤을 뿐이다. 아무래도 산나물 희망을
거둘 때가 되었다.
1,133.7m봉 긴 오르막 도중에 백두대간 길은 오른쪽 샛령으로 가고, 우리는 직등한다. 인적
흐릿한 초원을 간다. 여기는 이른 봄날이다. 여기저기서 구슬붕이가 발목 붙든다.
△1,129.3m봉 삼각점도 판독하기 어렵다. 현리 424, 2005 재설. 초원은 계속 이어진다. 박
새 무리에 섞여 있는 피나물과 노루삼을 발견하고 들여다보는데 그새 일행들은 한껏 목청 높
인 연호가 닿지 않게 멀리 가버렸다.
11. 갈전곡봉 지난 백두대간
12. 갈전곡봉 지난 백두대간
13. 멀리는 오대산 상월봉
14. 갈전곡봉 지난 백두대간
15. 구슬붕이
16. 구슬붕이
17. 구슬붕이
18. 구슬붕이
어디선가 낙엽 헤친 일행들의 발자취를 놓쳤다. 어차피 구룡령 옛길 골로 내렸다가 앞 능선
을 오르기로 했던 것. 내 길을 간다. 지도에 눈을 박고 등고선 느슨한 능선을 잡는다. 바윗길
날등이다. 오른쪽 사면으로 비켜 내린다. 발밑에 잡석이 와글거린다. 수직으로 떨어진다.
잡석에 사태 부추겨 함께 쓸려 내린다. 나무 그루터기 붙들어 멈추기를 반복한다.
골짜기가 완만할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가 보면 거기는 너덜에 덩굴 숲이 울창하여 더 사납다.
수적이라도 보이면 반가울 텐데 그도 없다. 검은등뻐꾸기는 나를 쫓아다니며 지저귄다. 휘파
람 내서 대꾸해준다. 미나리냉이와 금낭화가 보인다. 바닥 칠 골이 그리 멀리 않았다. 계류
물소리가 들린다. 가파름이 누그러지고 풀숲 뚫으니 구룡령 옛길이다.
어느 지능선을 잡아 오를까? 옛길 따라 산굽이 돌아내린다. 너무 내렸나? 지도 들여다본다.
명지리가 가깝다. 더 내리면 혹시 내 마음이 변할지 몰라 서둘러 계류 건넌다. 너덜 잠깐 지
나고 잡목 숲 헤치며 가파른 생사면을 오른다. 이윽고 능선이다. 흐릿한 인적이 앞서간다. 비
로소 안심한다. 배낭 벗고 숨 고른다. 그 인적을 꼭 붙든다.
이상한 일이다. 내 자청하여 혼자 가는 산일 때는 여유로운 걸음이어서 주변의 풀숲을 누벼
보며 즐기는데, 이처럼 일행에 떨어져 나와 혼자가 될 때는 초조하고 조급해진다. 서둔다. 주
변 경치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목이 말라도 조금만 더 가서 쉬자 하고 스스로 채근한
다. 몇 번이나 제발 침착하자 하고 다짐한다.
고도 370m를 곧추 올라 1,072.3m봉이다. 통화가능지역이다. 신가이버 님에게 전화 걸었다.
△1,029.1m봉에 올랐단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 천천히 오시란다. 거기까지 도상 1.5km.
42분 거리였다. 택당 이식의 「산길을 가다 길을 잃고(山行失路)」가 이랬다. 그분도 산행을
즐겼음이 틀림없다. 그분은 산행을 인생에 비유했다. 그 시의 끝 부분이다.
山日已西欹 산에는 이미 해가 서쪽에 걸렸어라
道固皆如是 길이란 본시 모두 이와 같은 걸
人多未信斯 사람들 대부분이 믿으려 하지 않네
一條寧絶遠 한 가닥 인생길 어찌 이와 다르리요
千里本毫釐 처음에 삐끗하면 천 리 어긋나는 걸
嘆我回車晚 나 역시 늦게야 수레를 돌려
蕭蕭兩鬢紛 귀밑머리 다 센 것을 탄식하노라
△1,029.1m봉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다. 잡목 숲을 헤쳐 나아간다. 1,101.3m봉 넘을 때에는
지능선을 잘못 잡아 내리다가 연호하여 뒤돌아 길 찾는다. △1,029.1m봉. 신가이버 님과 일
보 님이 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반갑다. 일보 님이 건네주는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내 물은 얼음이 다 녹아 미지근하다.), 신가이버 님이 깎아주는 참외 한 개를 다 먹는다.
다른 일행들은 더덕을 찾으러 갔다.
이제야 발걸음이 사뭇 가볍다. 수렴 걷고 골 건너 사삼봉과 가칠봉, 구룡덕봉을 들여다본다.
일행들은 930m봉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남진해야 할 것을 서진하였다. 우리가 잠시 선두가
된다. 쭉쭉 내린다. 무덤이 나오고 오랫동안 끈질기게 사납던 길이 풀린다. 산줄기가 마침내
맥이 다하도록 붙잡아 내린다. 폐교된 원당초등학교 명개분교 앞이다. 나물 잃고 산도 잃을
줄 알았는데 산은 얻었다.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브 힘차게 나눈다.
19. 피나물
20. 노루삼
21. 금낭화
22. 금낭화
23. 가칠봉
24. 등로
25. 등로, 종점이 가까워졌다.
26. 제비꽃
첫댓글 결국 양파망은 빈털터리?
오랫만에 계곡 바닥치고 오르기 신공을 시전했네요.뻑뻑합니다. 나물시기를 못맞춘 죄는 대역죄에 버금간다는 걸 잘 알게 됐습니다. ㅋ
ㅎㅎ 고생많으셨습니다...챔프님만 빼고 다들 빈털터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