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예부터 친구는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로 구분되었다. 좋은 친구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익자삼우(益者三友)”로서 정직한 사람, 신의가 있는 사람, 그리고 견문이 넓은 사람이고, 나쁜 친구는 “손자삼우(損者三友)”로서 아첨하는 사람, 줏대 없는 사람, 겉으로 친한 척하면서도 진정성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찌 익자삼우(益者三友)만 가지겠는가? 당연히 손자삼우(損者三友)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광고카피처럼 친구도 내 하기 나름이다. 내가 먼저 손자삼우(損者三友)가 아닌 익자삼우(益者三友)가 되면 당연히 익자삼우가 많아질 것이다. 물론 세상은 그런 법칙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절친(切親)으로 사귀었으나 어느 순간 배신하는 바람에 말 못할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빈(孫矉)과 방연(龐涓)의 우정(友情)이 비정(非情)으로 변한 과정만 보아도 그렇다. 고대 중국의 위(魏)나라 혜왕(惠王)은 천하의 영웅호걸들을 중용하였다. 그때 찾아온 사람이 방연(龐涓)이었다. 혜왕은 방연을 직접 만나 부국강병의 방법에 관한 의견을 듣고는 천하에 찾기 어려운 인재라고 칭찬하면서 대장군으로 임명했다. 그 후 혜왕은 손빈(孫矉)이 비범한 인재라는 말을 듣고 방연을 보내어 손빈을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청년 시절 손빈은 방연(龐涓)과 함께 병법을 배웠던 절친이었다. 그러나 손빈의 학업 성적이 늘 방연을 앞질렀기 때문에 방연은 항상 손빈에 대해 시기심과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손빈이 오자 자기 능력이 손빈보다 못함을 잘 알고 있었던 방연은 혹시라도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 봐 혜왕에게 “손빈이 적국 제나라와 암암리에 사통하고 있습니다”하며 음해하고 나섰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혜왕은 대로(大怒)하면서 손빈을 잡아들여 얼굴에 뜨거운 인두로 자자(刺字)를 내고 무릎의 슬개골을 빼내 앉은뱅이로 만들고 말았다. 그때 위나라에 와 있던 제나라 사신이 이를 알고 손빈을 몰래 자기 나라로 데리고 갔고 제나라의 위왕(威王)은 크게 기뻐하며 손빈을 중용했다.
기원전 341년, 위나라가 방연을 앞세워 한나라를 공격하자 한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제나라 선왕(宣王)은 전기(田期)와 손빈(孫矉)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한나라를 구하게 하였다. 명을 받은 손빈은 공격을 당하고 있는 한나라로 가지 않고 위나라의 도성으로 진격했다. 본국의 도성이 위급하다는 급보를 받은 방연은 할 수 없이 군사를 되돌려 본국인 위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한편, 손빈이 위나라 도성을 공격하자 위나라 태자 신(申)이 대군을 이끌고 결사적으로 항전하는 바람에 제나라 군은 견디지 못하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방연은 제나라 군을 몽땅 섬멸할 요량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후퇴하고 있는 손빈의 군대를 추격해갔다. 방연의 군대가 마릉(馬陵)까지 추격해갔을 때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마릉은 길이 무척 좁고 양쪽에는 장애물들이 가득했다. 방연은 제나라 군을 섬멸시키려는 일념으로 어둠 속에서도 군대를 계속 그런 험한 길로 내몰았다. 그런데 가장 좁은 길에 들어서자 무수한 통나무들이 길을 꽉 막고 있었다.
방연이 앞으로 나가 보니 길 양쪽의 나무들을 모두 찍어 길을 막았는데 유독 가장 큰 나무 하나만 나무껍질이 벗겨진 채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횃불을 비춰보니 “방연은 이 나무 밑에서 죽으리라!”라고 적혀 있었다. 대경실색한 방연은 급히 군사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사방에서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지면서 제나라 군이 새까맣게 몰려왔다. 손빈은 방연이 추격해 오도록 유도하기 위해 거짓 철군을 하는 한편 마릉의 좁은 길에 군대를 매복시키고 기다렸던 것이다. 절망에 빠진 방연은 검을 뽑아 자기 목을 베어 자결하고 말았다. 젊은 시절 절친이었던 손빈과 방연의 우정은 이렇게 비정한 우정으로 끝맺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 정치판도 이와 비슷하다. 이 당에서 저 당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찍이 모택동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枪杆子里面出政权: 무력적 기반이 없으면 권력을 획득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총구에는 우정을 가리는 눈이 없다. 권력에도 우정을 가리는 눈이 없고 이익에도 우정을 가리는 눈이 없다. 무력투쟁, 권력투쟁, 이익투쟁은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냉엄한 투쟁이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는 이런 냉엄한 투쟁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고 권력으로 흥한 자 권력으로 망하는 법이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자마자 감옥으로 직행해 온 우리 근대사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제발 그런 비정한 저주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빌고 또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