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만 아니라 그녀의 조국사랑도 대단했습니다.퀴리 부인이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녀의 조국 폴란드는 러시아의 통치하에 간습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수업은 모두 러시아어로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폴란드 사람들은 폴란드어로 공부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실에서 폴란드 역사를 배우고 있을 때였습니다. '찌링, 찌링, 찌링!' 교실에 달아 놓은 벨이 세 번 울렸습니다. 러시아 관리가 왔다는 신호입니다.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학교를 감시하기 위해 가끔 러시아 관리를 학교에 보냈습니다.
학생들은 재빨리 폴란드 역사책을 감추고, 바느질 도구를 책상 위에 내놓았습니다. 잠시 후, 러시아 관리가 거드름을 피우며 교실에 나타났습니다. 관리는 학생들을 한번 둘러 보고서, 선생님에게 명령했습니다.
"내가 질문하는 것에 대답하도록, 한 학생을 골라 주시오."
퀴리 부인은
'하느님, 부디 제가 뽑히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퀴리 부인을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이 학급에서 러시아어를 가장 잘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던 러시아 관리는
"그럼, 지금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이 누구인가?"
퀴리 부인은 폴란드 사람입니다. 때문에 러시아 황제 폴란드를 다스리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을 안 하면 큰일이 벌어지고 말 것입니다. 퀴리 부인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할 수 없이
- 알렉산드르 2세 -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 폐하입니다."
관리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교실을 나갔습니다.
그 순간,
퀴리 부인은 선생님에게 달려가 와락 안기며 외쳤습니다.
"선생님, 저는 폴란드 사람이에요."
설움이 복받쳐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습니다.
선생님의 눈에서도 눈물이 글썽그렸습니다.
퀴리 부인은 폴란드 사람들이 러시아의 노예처럼 살아야 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부인의 조국에 대한 사랑은 이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바르샤바 여자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퀴리부인은 몸이 허약해서 시골 친척집에 잠시 머물러 있을 때, 그 시골 사람들에게 조국에 대한 사랑을 심어 주기로 다짐하고 폴란드어 사용이 금지된 상황에서 폴란드 말을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이런 사실이 러시아 당국에 알려지면 큰 일이지만 부인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폴란드 책을 모아 조그마한 도서실을 차리고, 공장에도 찾아가 여직공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 소르본 대학다닐때 데이트 모습 -
그녀는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다닐때 피에로퀴리를 만나 사랑하게 되서 결혼을 결정하려 할 때에도 ' 내가 프랑스 사람과 결혼을 하면 조국 폴란드사람이 아닌 프랑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이런 고민만 봐도 그녀가 그녀의 조국 폴란드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수있을 겁니다.
-세계1차 대전에 의료 봉사단 조직 참여ㅡ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마리는 딸 이렌과 함께 'X선 사진'을 실용화할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녀는 X선 사진 촬영기를 들고 전쟁터로 나갔고, 이동차량에 X선 촬영기를 싣고 이동 방사선 의료반을 조직해 활동했고 병사들의 뼈 사이에 깊숙이 박혀 있는 파편도 X선으로는 쉽게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만일 X선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포화를 뚫고 이를 실어온 용감한 과학자 마리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전쟁의 희생자는 훨씬 많았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의사인 언니 브로냐와 함께 전장을 누빈 마리는 곧 전쟁터의 작은 영웅이 되었습니다.
1911년 마리 퀴리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1918년, 딸 이렌이 라듐 연구소에 합류하면서 이 연구소는 핵물리학과 화학의 세계적인 중심지가 되었고 1922년 퀴리는 의학 아카데미에서 방사성 물질을 의학적으로 이용할 방안을 연구했고 이후 파리에 퀴리 재단이 만들어지고 1932년 그녀의 애국심은 조국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라듐 연구소를 개소하게도 했습니다.
그러나 계속된 방사능 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 후유증 때문에 마리의 몸은 점점 더 쇠약해졌고 그녀는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도 쉬지 않은 계속된 연구는 끝내 백혈병으로 1934년으로 생을 연구하며 결국 최후를 연구실에서 마감하게 했습니다.
-연구에 몰두하는 피에로퀴리와 퀴리부인 -
그녀가 과학사에 남긴 업적은 너무나 크며 그가 세상을 떠난지 ..61년이 지난 1995년까지도 계속됐습니다.
그녀가
세계 과학사에 공헌한 고마움은 프랑스 정부가 그걸 높이 평가해 나폴레옹을 비롯한 프랑스 영웅들만 영면하는 '팡테옹'에다 여성인 그녀를 남편 피에로와 함깨 영면하게 해주었습니다.
(위 프랑스 파리 팡테옹의 지하분묘는 팡테옹 관람객 누구나 들어가 명복을 빌어줄 수 있도록 개방돼 있습니다)
( 위 마리 퀴리부인의 영면분묘는 방사선오염 땜에 특수 납관으로 처리 안치했다고 합니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