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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위험이 현대사회 중심 현상”…과학기술에 대한 성찰적 반성 촉구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서구 중심의 산업화와 근대화가 위험사회를 낳는다고 경고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르겐 하버마스, 앤서니 기든스, 피에르 부르디외 등과 함께 현대 사회학의 흐름을 주도했다.
지식인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방식은 두 가지다. 뛰어난 저작들을 연속 발표해 명성을 꾸준히 쌓아가는 게 하나라면, 참신한 테제를 담은 저작을 들고 혜성처럼 등장하는 게 다른 하나다. 미셸 푸코, 위르겐 하버마스, 앤서니 기든스가 전자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라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1944~2015)은 후자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다. 1986년 벡은 <위험사회: 새로운 근대를 향하여>(Risikogesellschaft: Auf dem Weg in eine andere Moderne)를 발표해 일약 세계적 지식인의 반열에 올라섰다.
오늘날 사회학자가 주조한 개념들 가운데 ‘위험사회’만큼 널리 알려진 개념도 드물다. 원전 사고에서 기후변화에 이르기까지 위험과 그로부터 비롯된 불안은 이제 우리 삶을 구성하는 한 요소가 됐다. 벡이 겨냥한 것은 현대사회가 위험사회라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 들어왔음을 주목해 모더니티의 연속과 단절에 대한 새로운 이론화를 모색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벡의 ‘위험사회론’은 즉각 논쟁을 일으켰고, 현대사회 탐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위험사회> 이후 벡의 지적 활동은 눈부셨다. <정치의 재발견>,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 <세계화의 길>, <글로벌 위험사회>,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대항권력> 등을 발표함으로써 영국의 기든스, 프랑스의 피에르 부르디외와 함께 현대 유럽 사회학을 대표해 왔다. 어떤 사상이라 하더라도 시간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영향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벡의 위험사회론은 이러한 경향과는 반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그 위력을 증가해 왔다.
■위험사회와 성찰적 현대화
위험사회는 벡 사회사상의 키워드다. <위험사회>에서 제시되고 이후 정교화된 위험사회론의 기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위험사회란 위험이 사회의 중심적 현상이 되는 사회를 말한다. 위험사회의 핵심적 특징은 측정 가능한 위험과 측정 불가능한 불확실성 간의 경계, 객관적 위험 분석과 사회적 위험 인식 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는 데 있다.
벡은 위험사회의 성격을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위험은 전염성이 강하다. 기존의 사회적 궁핍이 계급에 따라 차별적이었던 것에 반해, 위험은 무차별적이고 따라서 민주적이다. 빈자와 약자뿐만 아니라 부자와 권력자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게 위험의 특징이다.
둘째, 위험은 그 진원이 되는 한 부분에 제한될 수 없다. 시민들은 ‘세계적 위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 이와 연관해 ‘지구적 국내정치’가 등장한다.
셋째, 과학의 발전에 대응해 위험에 대한 인식이 낮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높아진다.
넷째, 안전이라는 가치가 평등이라는 가치를 몰아낸다. 불안이 삶의 느낌을 규정하고,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한 전체주의가 등장할 수 있다.
다섯째, 시민들의 불안이 증가함에 따라 ‘안전’은 물이나 전기처럼 공적으로 생산되는 소비재가 된다.
위험사회론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통찰은 위험사회의 도래가 가져오는 개인의 변화다. 벡에 따르면, 위험사회의 등장은 위험의 개인주의화를 낳는다. 모더니티의 진행 결과 개인은 점차 독립적으로 되지만, 그 독립은 새로운 대가, 즉 전문가에 의존하고 ‘인지적 주권’이 위협받는 상황에 노출된다. 이제까지 사회적으로 규정됐던 생애가 스스로 생산해야 하는 생애로 변화하는 개인주의화의 증가야말로 위험사회의 새로운 현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벡은 이러한 위험사회의 도래에 대한 두 가지 대응을 주목한다. 하나는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성찰적 반성의 강화다. 이 성찰적 반성은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와 구별되는, 위험으로 인해 비판적 공론장이 형성되는 ‘제2의 현대’로서의 ‘성찰적 현대화’의 특징을 이룬다. 다른 하나는 환경·반핵·평화운동 등으로 나타나는 ‘하위정치’의 부상이다. 위험에 대한 대처는 정치가나 과학자에게만 맡겨지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 적극적 개입에 의해서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위험사회에서 세계시민주의로
<위험사회>는 발표되자마자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출간한 해에 일어난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벡을 일약 유명 지식인으로 만들었다. 전통적인 계급이론가들은 위험사회론이 불평등보다 위험을 더 중시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위험의 예기치 않은 분출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험사회론은 서구 지식사회 안팎에서 커다란 환영을 받았다.
위험사회론에 이어 벡이 주력한 것은 세계화의 탐구다. 세계화에 대한 그의 연구가 집대성된 저작들은 세계시민주의 3부작인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대항권력>, <코스모폴리탄 시각 또는>, <코스모폴리탄 유럽>이다. 이 가운데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대항권력: 새로운 세계정치경제>(2002)는 세계화 시대에 자본·국가·시민사회운동 전략들을 비교·분석하고, 민족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신자유주의라는 이상이 역사적으로 마모된 이후 추구해야 할 새로운 이상으로서의 세계시민주의를 제안한다.
위험사회론에서 세계시민주의론에 이르는 벡의 지적 여정은 전후 70년 현대사회의 구조적 변동과 개인적 대응에 대한 대표적인 사회학적 탐구로 평가할 만하다. <위험사회>가 발표된 지 40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위험사회론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기후변화 등 생태 위기와 과학기술의 발전은 위험사회론의 영향력을 앞으로 더욱 증가시킬 게 분명해 보인다.
위험이 세계화되는 성찰적 현대화의 규범적 질문에 대한 벡의 응답이 갖는 실천적 의미 역시 결코 작지 않다. 최근 영국의 브렉시트에서 볼 수 있듯 오늘날 민족주의와 세계주의가 일대 충돌한다.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규범적 토대로서의 세계시민주의는 21세기 사회사상의 새로운 출발점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어판 저작은
<위험사회>는 사회학자 홍성태 상지대 교수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졌다. 위험사회론의 지구적 버전인 <글로벌 위험사회>는 철학자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와 사회학자 박미애씨에 의해, 세계화를 다룬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대항권력>은 사회학자 홍찬숙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에 의해 번역됐다.
■압축 산업화 경험한 ‘한국사회 현실 판독’의 이론틀 제공
1997년 <위험사회>가 우리말로 옮겨진 이후 위험사회론은 압축 산업화를 경험한 한국사회 현실을 판독하는 이론틀의 하나가 됐다. 적지 않은 사회과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은 벡의 이론틀에 기반을 둬 ‘위험사회로서의 한국사회’를 분석했다. 위험사회론의 유용성이 크게 주목된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였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가 벡이 말하는 생태 위기의 ‘새로운 위험’은 물론 재난 대처 시스템 부재와 안전 불감증이라는 ‘오래된 위험’이 공존하는 ‘이중적 위험사회’임을 증거했다. 벡은 2014년 7월 한국을 방문해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등이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해방적 파국: 기후변화 및 위험사회에 던지는 함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당시 벡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질문에 “정부의 무능과 무지를 드러내게 됐다”고 답하고, “정치적 결정, 처리 방식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깨닫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 제도 자체에 대해 회의를 갖게 한다”고 비판하고, 결국 “정치와 제도의 정당성을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미세 먼지 증가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은 위험사회의 또 다른 증거들이다. 미세 먼지 증가가 급속한 산업화가 초래한 위험의 하나라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은 위험에 대한 통제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올여름 우리나라를 강타한 폭염도 그 원인의 하나를 지구 온난화의 기후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사회의 또 하나의 징후다. 위험은 이제 시간과 공간의 구속에서 벗어나 사회 도처에서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다.
벡이 강조하듯 제2의 현대에서 위험은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생활의 편리함을 안겨주지만, 그 과학기술에 내재된 위험을 모두 측정하고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위험의 완전한 제거가 아니라 위험의 가능한 한 최소화가 현실적인 대안인 셈이다. 위험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부 활동과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 및 통제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위험사회의 정치학은 현재 한국사회에 부여된 중대한 과제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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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벡의 개념들
사랑은 세속적 종교
국가와 사회, 종교에 대한 기대를 철회한 개인들은 '사랑'을 통해 불안을 해소하고자 했다. 울리히 벡은 위험 사회가 가속화되면 사랑이 새로운 종교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답답한 정부와 만날 수 없는 신을 떠나 개인들은 사랑으로 발길을 돌렸다. 종교가 된 사랑은 이념이 되고 결국 이데올로기가 된다.
https://m.blog.naver.com/43000109/221293671379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1311222012005 경향신문 <자기만의 신>
(책) 자기만의 신
자기만의 신은 종교를 경쟁적으로 ‘진정한 자아를 찾는 종교들’로 변화시킨다. 결국에는 천국과 이승의 차이가 없어진다. … 개인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진다. 과거에는 천국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것들, 또 천국에 강요했던 것들을 이제는 자기 자신의 삶이라는 왕국에서 지금 찾아야 하고 … 현존 천국, 이것은 바로 지금 여기 자신의 삶 속에 있는 천국을 의미한다.”
(뒤르켐) 인간이 신자인 동시에 신이 되는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