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쩍새 우는소리
박 종 오
시내근교의 가까운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가끔 고향친구들과 만나며 고향 자주 집을 들려 보곤 한다.
아카시아 꽃 향기로움이 마을에 퍼지고 어둠이 시작된다. 안개가 자욱이 뒤덮는 초저녁 꽃향기 맡으며 걸어오는데 앞산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쩍새 소라가 내 발길을 멈추게 하는구나.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옛 여름의 추억이 떠오른다.
고향집 바깥마당에 고목의 나무구멍에 해마다 소쩍새가 찾아와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며 살고 있다.
고목은 낮에는 동네 사람들의 쉼터요, 저녁이면 어른들의 집합장소이기도 하다. 저녁 먹고 겨드랑이에 집단을 끼고 와 멍석 위에앉아 하루 일과를 얘기하며, 농사일 말씀을 주고받는다. 모깃불 피워놓고 달이 뜨면 달빛을 이용해 새끼 꼬는 분, 멍석 만드는 분, 삼태기 등을 만들며 애기들을 하신다.
고목에서 울어대는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내년의 농사가 풍년, 흉년을 어른들 나름대로 말씀하신다.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길 때 소쩍 하고 슬피 울면 흉년이라고 걱정하며 또 ‘솥 적다’라고 들리면 솥이 적으니 큰솥을 준비하라는 의미로 알고 풍년이 온다고 좋아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멍석 귀퉁이에 앉아 들으며 정말 그럴까? 믿어지지 않는다.
근거는 있는지 모르지만 어른들의 오랜 경험에 의해서 하신 말씀이리라.
어느 날 저녁에는 새끼가 날기 연습을 하다 멍석 위에 한마리가 떨어졌다. 솜털도 벗지 못한 새끼는 날개 짓을 하고 째째 거린다. 노란 입을 벌리고 먹이를 달라고 하는듯하지만 겁을먹은듯 싶기도 하다. 부상을 입었는지 한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 새끼의 떨어짐이 걱정스러운 듯 하다 어미의심정은 얼마나 애틋할까? 어른들이 밤에는 뱀 에 잡혀 먹힌다고 정성스레 나뭇가지에 올려주면 어미가 데리고 간다. 모성애가 깊은 감동을 준다. 소쩍 새의 입속이 붉은데 이새가 피를 토하고 죽을 때 까지 슬피 운다고 하신말씀이 기억난다. 정말 그럴까? 이젠 들어가 공부를 해야지, 방에 들어오니 낡은 창호지 문창이 흔들리듯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가 초저녁에는 잘 모르겠는데 밤이 깊어지면서 크게 들려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 고요하고 적막한 밤이면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슬픈 울음인가하면 매우 평온한 울음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먼 산에서 들려오는 소리보다 마당의 고목에서 우는 소리에 생각이 깊어진다. 먹이를 찾기 위해 우는 것일까? 짝을 찾기 위해 우는 것일까? 새끼를 보호하기위해 우는 것일까? 한이 맺힌 울음소리 인가? 우는 심정을 누가알수 있으랴,
시험이 얼마 안 남았으니 에라 공부나 하자, 책을 보지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이젠 듣기 싫고 짜증이 난다. 밤이 깊어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그치게 하려고 돌을 던져보고 발로 나무를 차면 그친다. 그러나 잠시 후 또 울고 다시 나무를 차면 그쳤다 우는 연속의 반복이었다.
고목은 어느 해 태풍에 쓰러졌다. 둥지를 잃은 소쩍새는 어디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살고 있을까? 궁금하구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쩍새 우는 소리 들으니 옛 추억이 떠오른다. 고향 떠난 몇 십 년이지나 새삼스런 생각에 젖은 채 소쩍새 소리 들으며 발길을 재촉하였다.
복잡한 도시의 소란 속에 시달리다보니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의 옛 추억도 잊은 채 살아왔다.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었던 오래전의 생각이 망각의 수면위로 떠올라 특별한 감정을 느낄 때가있다. 고향의 풍경들은 절기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서 애틋한 향수에 젖을 때가 있다. 일생 중 조용한 감정이 풍부했던 학창시절을 보낸 시골에서의 여름 추억이 떠오른다. 한낮이면 폭염에 지친 매미의 울음소리가 그치면 산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해가지면 소쩍새 울음소리가 교대로 들리던 옛 생각이 그리워지는구나.
소쩍새 울음소리에 대한 설화는 대부분 가족을 지키다 목숨을 잃고, 죽어서도 가족을 그리워하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인가보다.
지금은 개체수가 적어 멸종 위기라 언제까지 들을 수 있을는지, 봄부터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를 듣기위해 자주고향을 찾아가 소쩍새와 가까이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