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취는 오감으로 먹는다. 짙은 초록에 싱그러운 향이 터지며 아삭아삭한 소리가 먼저 입맛을 자극한다. 혀에 닿는 쌉쌀함은 다른 산채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독특한 느낌이다. 가족과 함께 나들이 갈 때 곰취 한 장에 삼겹살 한 점 얹어 먹으면 그 맛이 또 추억거리다. 봄이 무르익으면 강원도 양구는 곰취 세상이다. 해마다 5월이면 양구에서는 곰취축제도 열린다.
곰취 쌈밥
“엄마 밭에서 좋은 향기가 나요!”
양구 동면 일대에 들어서면 곰취 향이 가득하다. 비닐하우스 어느 곳을 기웃거려도 초록의 곰취가 빼곡히 메우고 있다. 투박한 거름 냄새에만 익숙한 아이들에게 곰취 향은 꽤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다.
곰취 따는 마을주민
5월이 되면 비닐하우스까지 직접 곰취를 사러 온 외지인들이 줄을 잇는다. 인근 군부대에서도 방문하고, 양구에 놀러온 행락객들도 “쌈으로 먹으려 한다”며 박스째 곰취를 챙겨 간다.
5월의 곰취
대암산 인근, 물이 오른 청정 곰취
20여 년 전만 해도 곰취는 대암산 자락에서 직접 채취했다. “모 심고 나면 곰취 캐러 밥하고 된장만 들고 산에 올라갔더래요. 나물 따다가 배고프면 그 자리에서 곰취에 식은밥을 싸 먹었죠.” 곰취를 따던 할머니의 기억 속에는 사람들이 나물 캐러 유독 대암산 자락만을 올랐다.
“인근에 사명산이 있지만 거기는 여산신이 지켜서 나물이 쓰고, 대암산은 남산신이 지켜서 달달하다고 주민들이 믿었거든요.”
사실 대암산 자락에 곰취가 풍성했던 것은 자연적인 영향이 크다. 곰취는 물을 좋아하는 음지식물이다. 대암산 정상 일대에는 ‘용늪’이라 불리는 늪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 출입이 통제됐던 생태계의 보고로 람사르 협약에 따라 습지보호구역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런 산속의 청정 늪지를 배경으로 대암산 곰취가 자랐다.
곰취쌈밥과 절임
주민들은 양구군 동면 땅에서 곰취가 잘 자라는 것은 비슷한 지세가 영향을 준 것이라고 믿는다. 양구에서 곰취를 재배하는 농가 중 80% 이상이 동면에서 밭을 일구고 있다. 이곳 곰취는 태생이 그렇듯 무농약, 무공해로 재배된다. 군청의 무농약 인증을 받아야만 출하가 가능하다.
동면 곰취밭
하우스 재배 이후 2월부터 곰취가 나오고 있지만 연한 어린잎이 쑥쑥 자라는 5월 전후가 곰취 맛이 가장 좋을 때다. 여름으로 넘어서면 줄기가 억세져 씹는 맛이 다소 반감된다. 15년간 곰취를 재배했다는 동면 주민은 “예전에 산에서 캘 때는 딱 보름 정도만 곰취를 맛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전한다.
곰취 따기
5월 곰취축제, 쌈.떡.절임으로 즐기다
일반인들의 입맛에 곰취가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은 돼지고기에 쌈을 싸서 먹을 때다. 싱그러운 곰취 향과 달달한 맛이 돼지고기의 기름 냄새를 그윽하게 눌러준다. 상추나 깻잎에 싸먹는 삼겹살과는 맛의 차원이 다르다. 여기에 질 좋은 된장이 어우러지면 금상첨화다. 5월이면 읍내 곳곳의 식육식당에서 곰취가 인심 좋게 나올 때다. 굳이 삼겹살이 아니더라도 곰취쌈밥을 주문해 아삭아삭 씹어 먹어도 짙은 봄맛을 즐길 수 있다.
제철을 넘긴 곰취는 절임이나 장아찌로 변신한다. 1년 내내 곰취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지만 절임이나 나물 등은 생으로 먹는 곰취의 향과 맛을 넘어서지 못한다. 굳이 5월에 곰취를 맛봐야 하는 이유다.
곰취쌈
곰취의 고장 양구에서는 매년 5월이면 곰취축제가 열린다. 2019년 5월에는 4~6일 양구읍 레포츠 공원 일원에서 펼쳐진다. 축제장을 찾으면 말로만 듣던 곰취로 만든 이채로운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곰취전병, 곰취찰떡, 곰취절임, 곰취장아찌 등 입맛 다시게 하는 반찬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음식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다. 특히 곰취가 들어간 곰취찐빵은 이 지역 별미로 자리를 잡았다.
고기와 어우러진 곰취쌈과 나물
축제 때는 다양한 체험 행사가 어우러져 가족 나들이객의 발길을 유혹한다. 곰취를 현장에서 직접 채취해보는 시간이 마련되며, 맷돌을 직접 갈아 곰취두부를 만들고, 소를 이용해 밭을 직접 갈아볼 수 있다. 축제 기간에 곰취가 나는 산과 밭을 밟아보는 등반대회도 개최된다. 광치자연휴양림을 시작으로 대암산 솔봉, 생태식물원 등을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곰취 부침개
아이들과 함께라면 돌아오는 길에 박수근미술관을 놓칠 수 없다. 양구 출신 박수근 화백의 생가터에 건립된 박수근미술관은 작가의 손때가 묻은 유품과 스케치, 드로잉과 같은 습작, 삽화 등 여러 유작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이밖에 두타연, 국토 정중앙 천문대 역시 두루 둘러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