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랬다. 태어나고 늘 살아왔던 도시를 떠나 새로운 도시를 가는 것만으로도 여행이었고 힐링을 느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만났던 도시의 기억은 유명 관광지로 남아 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조금이라도 색다른 도시를 경험시켜 주고 싶어 이곳 저곳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저자도 대학생 시절 배낭을 짊어지고 훌쩍 떠난 여수, 직장을 잃고 심기일전을 하고자 대중교통에 의지하여 떠났던 수원, 일 관계로 자주 드나들던 울산, 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려 있는 부산 등 10개 도시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도시를 소개하는 방법은 특징이 있다.
첫째, 부제 '우리나라 도시에 숨겨진 과학 이야기'가 말해주듯 각 도시에 숨겨진 과학의 '역사'를 소개해 준다. 가령 예를 들면 이렇다. 청주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역사 시간에 들을 법한 이야기로 주의를 환기 시킨다.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을 본 사람은 '두루봉 유적', '흥수아이'를 들어 봤을 것이다. 한반도의 선사 시대를 알려주는 귀중한 유적지다. 지금 청주 상당구 두루봉 동굴 유적지는 한반도 옛 시대 원숭이의 뼈가 발견된 곳이다. 두루봉 동굴 외에도 고수 동굴, 온달 동굴, 천동 동굴 등 충북 지역에는 상당히 많은 동굴 유적지가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저자는 도시를 소개하면서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 유서 깊은 유적지 방문 또는 유물에 관심을 가질 것을 권유하고 있다.
둘째, 저자는 도시를 소개하면서 '과학' 이야기를 접목 시킨다. 청주에 가면 화장품을 유심히 살펴야 하는데 화장품을 만드는 원료가 카르나우바납이라는 것이라는 점, 초정리에는 탄산수가 나온다는 점을 빼 먹지 않고 소개하고 있다. 과학이라고 해서 물리와 화학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동식물에 관한 이야기도 꺼내 놓는다. 수원에 가면 가 봐야 할 곳으로 우리나라 울창한 숲의 기원이 되었던 임목육동연구소라든지 배고픈 시절 쌀밥 만이라도 배불리 먹겠다는 각오로 통일벼를 발명한 연구소가 바로 수원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수라는 도시는 지하 석유 저장소 뿐만 아니라 지하 곳곳에 파이프 라인으로 각종 원료들을 서로 주고 받는다는 이야기는 책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정보다. 부산의 대표적인 동물로 갈매기를 소개하면서 갈매기가 생각 외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조류라는 점과 부산에 있던 갈매기가 일본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점도 재미삼아 소개하고 있다.
셋째, 뭐니뭐니해도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여행지로서의 도시의 가치인 것 같다. 단순히 관광지와 맛집을 소개해 주는 여행 관련 책자는 수두룩하지만 고품격 정신적 가치와 역사적 향취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소개 자료는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도시의 숨겨진 과학 이야기라고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도 10개 도시에 가볼만한 곳을 수첩에 메모하면서 읽지 않을까 싶다. 가족과 함께 꼭 가봐야 할 장소, 자녀들에게 이 도시에 가면 꼭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과학 이야기들을 체크하면서 공부하듯이 이 책을 읽어내려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은 널린 게 여행 정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알고 넘어가야 할 기본적인 상식을 재미나게 풀어내면서 가 봐야 할 장소를 명확히 짚어주는 여행 책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아니, 거의 드물지 않나 싶다. 이에 '곽재식의 도시 탐구' 책을 이번 겨울 도시 여행 가이드로 벗삼아 한 번 쯤 가족들과 휴가를 다녀볼 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 싶다.
올해 생각지도 못하게 부산과 울산을 여러 번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오고 가고 운전 하면서 보낸 시간, 공식적인 일정을 마치고 좀 짬을 내어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단지 피곤하다는 이유로 급하게 도시를 떠났던 것이 좀 아쉽다. 만약 이 책을 좀 더 일찍 접하게 되었더라면 부산에 갔을 때 시간 내어 금정산성도 둘러보고 근대건축의 명소라고 불리는 부산기상관측소도 찾아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울산에 갔었을 때는 태화강변과 대나무숲에 들어가 역사의 숨결을 느껴볼 걸 하는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내년에 타도시를 다녀올 기회를 기대해 보면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