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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계인이 침공했다! ]
― 부산독서아카데미, 지구를 구하라!
* 부산독서아카데미(독토) 제300회 독서토론회 기념 콩트*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2026년 10월 어느 날, 지구의 모든 방송과 통신이 동시에 마비되었다. 하늘에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우주선들이 나타났고, 세계 각국의 군사기지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백악관과 크렘린궁, 중국의 중난하이, 대한민국 청와대가 동시에 발칵 뒤집혔다.
그런데 외계인들은 이상했다.
핵미사일도 쏘지 않았고, 전투기도 출격시키지 않았다. 대신 지구상의 모든 도서관과 서점, 출판사 서버에 접속하더니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송출했다.
「지구인에게 고한다. 너희는 지나치게 똑똑해졌다. 즉각 지적 능력을 반납하라!」
외계인 총사령관의 이름은 '그라모스 7세'였다. 은하계에서 지적 생명체의 진화와 문명을 관리하는 초은하문명관리위원회의 의장이기도 했다.
그는 지구를 침공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지구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책이라는 위험한 물건을 만들어 서로 읽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유발 하라리가 말한 호모 데우스, 즉 신의 경지에 도전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이대로 두면 머지않아 우주의 질서마저 뒤흔들 것이다. 우리는 우주 평화를 위해 지구인의 지적 능력을 초기화하기로 결정했다!"
기자들이 물었다.
"그렇다면 지구인들의 지적 능력을 어떻게 제거할 계획입니까?"
그라모스 7세가 음흉하게 웃었다.
"간단하다. 지구상의 모든 책을 불태우고, 인간의 뇌에서 축적된 지식을 삭제할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300개 단어만 남겨 놓겠다. 그러면 인간들은 개와도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단순해질 것이다. 물론 개들이 인간을 이해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전 세계의 책들이 한 권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가 사라지고, 플라톤, 장자가 사라지고, 스피노자도 사라졌다. 도스토옙스키도 사라지고, 조지오웰, 칼 세이건, 줄리안 반스도 사라지고, 심지어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까지 텅 비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더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어떤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에서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자유롭게 민주씨와 만나 … 그러니까……."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인공지능은 계산기 수준으로 퇴화했고, 대학 교수들은 자기 전공의 기본 개념조차 설명하지 못했다. 인류 문명은 순식간에 퇴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외계인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대한민국 부산에 있었다.
바로 부산독서아카데미, 약칭 독토였다.
1. 은하계가 주목한 수상한 조직
부산독서아카데미는 18명의 대원들로 구성된 정체불명의 조직이었다.
대원들은 매월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읽고 토론했다. 그렇게 27년이 흘렀고, 마침내 300회째 토론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27년 동안 300회의 토론이라니!
이것은 단순한 독서모임이 아니었다. 지식의 축적과 사유의 단련, 논리의 연마를 거듭해 온 일종의 지적 특수부대였다.
그런데 이들의 활동을 오랫동안 감시해 온 존재들이 있었다.
은하계 외계정보국 소속의 잠복 요원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무려 수십년간 독토에 잠입해 있었다. 그는 회원들이 읽는 책을 기록하고, 토론 중에 나오는 발언을 녹취해 매주 본부에 보고했다.
그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았다.
보고서 제299호.
부산독서아카데미 대원들의 지적 수준은 통상적인 지구인의 범위를 현저히 초과함.
문학, 미술, 철학, 역사, 교양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비정상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문붕한이라는 자를 비롯하여, 대원들이 어떤 책을 언급하든 이미 읽었다고 주장하며, 실제로 그 내용까지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공창옥이라는 자 등... 이들은 모두 인간일 가능성이 희박함.
게다가 지구상의 유명 대형서점들이 차례로 문을 닫는 판국에 그동안 모은 전재산을 털어 시골에 쪽방 서점을 개업한 후, 모든 서적의 주요 사상을 마이크로 칩으로 제작하여 두개골 속에 감추는 넘버완이라는 요시찰 인물,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면서 사람들 세금 챙겨주고 떼 돈을 벌면서 이 조직의 운영자금을 대고 있는 회장 직함을 건 수상한 자도 있음
주목할 것은 차나리라는 여성 대원이 가장 위험함. 두 외계인 의심 개체의 발언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으며, 오히려 핵심을 찌르는 질문으로 토론의 주도권을 장악함.
특히 매번 준비해 오는 독서메모는 정밀한 분석 도구와 유사함.
결론: 지구 침공 시 독토를 최우선 감시 대상으로 지정할 것.
이 보고서를 받아 본 외계인 사령부는 즉각 결론을 내렸다.
"저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지구의 지적 수준을 초기화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독토 대원들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그 책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리고 토론 중에 어떤 논리를 펼칠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외계인들은 은하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를 동원해 독토 회원들의 지적 능력을 분석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분석 불가!
슈퍼컴퓨터는 한참 동안 계산하다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출력했다.
'이 집단은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책을 읽은 사람끼리 서로의 생각을 공격하고 방어하며 지식을 재구성합니다. 기존의 지능 측정 방식으로는 평가할 수 없습니다.'
외계인 사령관이 소리쳤다.
"도대체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2. 지구 결사대, 18명의 전사
각국 정부는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회의 끝에 세계 지도자들은 영화 ‘300’의 격전지 테르모필레 전투를 본뜬 작전을 세웠다.
좁은 협곡에서 소수의 정예 병력이 대군을 막아 냈던 것처럼, 지구에서도 소수의 지적 전사들이 외계인의 침공을 저지한다는 계획이었다.
작전명은 「300: 최후의 독서토론」.
당초 300명을 선발하려 했으나 예산과 훈련장 사정, 그리고 무엇보다 한자리에 모아 놓고 책을 읽힐 수 있는 공간의 한계 때문에 18명으로 축소되었다.
선발 대상은 단 하나였다.
부산독서아카데미 대원.
그들의 독서량과 토론 경험, 논리적 내공이라면 외계인과의 지적 전쟁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독토 대원들이 긴급 소집되었다.
지구방위군 사령관이 말했다.
"여러분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외계인들은 핵무기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준비한 무기는 우리 인간의 지식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으로 맞서야 합니다!“
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오늘 토론할 책은 뭡니까?"
사령관은 당황했다.
"지금 전쟁이 벌어졌는데 책이 중요합니까?"
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책이 정해져야 토론을 하지요."
결국 지구방위군은 긴급회의를 열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책들을 선정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조지 오웰의 『1984』, 존 롤스의 『정의론』 등이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 물었다.
"그런데 이 책들을 외계인들도 읽었을까요?"
회의장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때 차나리가 입을 열었다.
"읽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떻게 읽었는지가 중요하지요."
그 한마디에 회의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차나리였다.
그녀는 만장일치로 지구 결사대의 대장에 임명되었다.
임명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토론에서 핵심을 찌르는 통찰력.
둘째, 빈틈없는 독서 준비와 예리한 질문.
셋째, 도봉산 자락에서의 유아 시절 개구리를 잡아 떼기장을 쳐서 구워 먹었다는 무용담.
마지막 항목은 군사적 가치가 정확히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회의 참석자들은 그 정도의 담력이라면 외계인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차나리는 임명장을 받아 들고 짧게 말했다.
"좋습니다. 다만 토론 전에 상대방의 주장을 충분히 들어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사령관은 속으로 생각했다.
'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
3. 사라진 두 명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지구 결사대 18명이 테르모필레 협곡에 집결했다.
그런데 점호를 하던 차나리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두 명이 없었다.
공창옥과 문붕한이었다.
두 사람은 독토에서도 가장 강력한 지적 전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던 인물들이었다. 한 명은 문학과 철학을 종횡무진 누비는 지성의 화신이었고, 다른 한 명은 웬만한 도서관보다 많은 책을 읽은 것으로 유명했다.
차나리는 즉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긴급 조회를 요청했다.
30분 뒤, 충격적인 답변이 도착했다.
"공창옥과 문붕한은 외계인 침공 직후 예비 검속되어 관타나모 미군 기지에 구금 중입니다."
채나리는 눈을 감았다.
"역시……."
27년 동안 독토 회원들 사이에서 돌던 의혹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공창옥은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정은 복잡했다.
공창옥은 스파이의 임무를 띠고 이 정체불명의 조직에 잠입했지만, 신분을 속이고 모임에 참석할수록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구인들은 비록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미숙한 존재들이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고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놀라운 생명체라는 사실을.
지구인들의 향학열과 독서열에 감동해 그는 결국 지구인으로 귀화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진주만 공습 직후 미국 내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예비 검속 및 구금조치)에 따라 외계인 혐의로 체포 및 구금된 것이다.
한편 문붕한은 진짜 외계인 스파이였다.
그는 독토에 잠입해 도서선정위원장의 자리까지 꿰차고, 각 영역별 책을 토론 서적으로 선정하여 지구인들의 지적 수준을 조사하고, 매월 본부에 보고서를 보내 왔다.
그런데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혼란이 생겼다.
난도가 낮은 책부터 시작한 지구인들의 지적 수준 감별작업이 넘사벽이라 생각한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 일리야 프리고진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까지 너끈히 소화해내는 독토 회원들의 내공에 질려버린 것이다..
더 이상 임무수행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그는 은밀하게 일론 머스크에게 거액을 주고 스페이스X의 우주선 좌석을 예약했다.
그러나 출발 당일, 머스크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죄송합니다. 해당 항공편은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문붕한이 항의했다.
"나는 외계인입니다! 지금 당장 지구를 떠나야 한다고요!"
상대방이 대답했다.
"외계인이시든 지구인이시든 환불 규정은 동일합니다."
문붕한은 그 자리에서 우주적 절망에 빠졌다.
그는 결국 지구에 남았다가 전쟁이 터지자 즉각 체포되었다.
그렇게 지구 결사대의 최강 전력 두 명이 사라졌다.
차나리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좋습니다. 우리끼리 싸웁시다. 지식은 빌릴 수 있어도 생각은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남은 대원들을 향해 외쳤다.
"우리는 27년 동안 매월 한 번씩 토론했습니다. 300번이나 서로의 생각을 부딪쳤습니다. 오늘은 그 모든 토론의 결론을 보여 줄 때입니다!"
대원들이 환호했다.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오늘 점심 메뉴는 뭡니까?"
차나리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평화시에나 전쟁시에나 초지 일관 돗토리 김밥 한줄입니다!.“
4. 외계인과의 첫 번째 토론
외계인 군대가 협곡에 도착했다.
그들은 은하계 최고의 지능을 자랑하는 전사들이었다. 머리는 크고 눈은 깊었으며, 몸에는 고도로 발달한 지식 추출 장치가 장착되어 있었다.
외계인 총사령관 그라모스 7세가 앞으로 나섰다.
"지구인들이여! 너희는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함으로써 우주의 질서를 위협했다. 이제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지식 반납에 동의하면 생명은 보장하겠다."
차나리가 앞으로 나섰다.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그라모스 7세가 비웃었다.
"질문이라니? 우리는 은하계에서 가장 지적인 문명이다. 질문은 얼마든지 해 보라."
차나리가 물었다.
"당신들이 말하는 지식이란 무엇입니까?"
외계인 총사령관은 즉시 답했다.
"지식이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저장하고 활용하는 능력이다."
차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식을 많이 가진 존재가 반드시 현명한 존재입니까?"
"물론이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왜 지구를 침공했습니까? 지식을 가진 존재라면 지구인의 지적 발달을 위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원인과 의미를 먼저 이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라모스 7세의 눈이 흔들렸다.
차나리는 계속했다.
"플라톤은 지혜를 사랑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지혜의 출발이라고 했지요. 당신들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한 존재가 된 것은 아닙니까?"
외계인 총사령관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부하들이 수군거렸다.
"사령관님, 저 질문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왜 예상하지 못했지?"
"저희는 상대가 공격할 경우를 대비해 8,000억 개의 반론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질문으로 공격할 경우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차나리는 미소를 지었다.
"토론에서는 질문이 답변보다 강할 때가 많습니다."
첫 번째 전투는 지구인의 승리였다.
외계인 군대는 30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5. 존 롤스와 오웰의 역습
그러나 그라모스 7세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는 즉시 전략을 바꾸었다.
"좋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질문하겠다. 지구인들은 지식을 축적했지만 전쟁과 폭력, 차별과 탐욕을 멈추지 못했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고도 왜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가?"
이 질문은 날카로웠다.
회원들은 잠시 침묵했다.
그라모스 7세는 기세를 올렸다.
"『파시즘』을 읽고도 히틀러의 아바타가 되려는 트럼프 같은 얼간이가 설치고 있고, 『정의론』을 읽고도 불의가 판을 차고 억압받는 자들이 늘어나며, 『1984』를 읽고도 감시와 통제를 시도했다. 도스토옙스키를 읽고도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했다. 너희의 독서는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것은 지구인에게도 아픈 질문이었다.
잠시 후, 한 대원이 입을 열었다.
"책이 인간을 자동으로 선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다른 대원이 이어받았다.
"그러나 책은 인간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돌아볼 기회를 줍니다."
또 다른 대원이 말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해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고 토론하는 것입니다."
차나리가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책은 인간을 완성품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책을 읽고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읽고 토론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잘못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외계인 총사령관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면 너희는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인가?"
"물론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책을 읽는가?"
차나리는 단호하게 답했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외계인 군대의 지식 추출 장치가 일제히 과열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는 익숙했지만,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계속 배우려는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은하계 슈퍼컴퓨터에 경고 메시지가 떴다.
「경고: 지구인의 지적 체계에는 오류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수정하는 기능이 존재함. 해당 기능은 현재의 외계인 분석 모델로 설명할 수 없음.」
그라모스 7세는 이를 악물었다.
"좋다. 마지막 승부를 하자!“
6. 최후의 무기, 독서메모
외계인 총사령관은 최후의 무기를 꺼냈다.
그것은 은하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신 제압 장치인 '절대지식광선'이었다.
이 광선에 노출되면 상대방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잊어버리고, 상대가 주입하는 정보만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광선이 발사되었다.
지구 결사대원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맹자가…… 누구였더라?"
"스피노자…… 일본 사람이었던가?"
"『은교』가 책 제목이었나, 영화 제목이었나?"
지구의 운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그때 차나리가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독서메모였다.
그녀가 27년 동안 매월 토론을 준비하며 작성한 메모들, 책의 핵심 문장과 의문점, 저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 다른 책과의 연결고리가 빼곡히 적힌 기록이었다.
차나리는 메모를 펼쳐 들고 외쳤다.
"여러분! 책의 내용을 전부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질문했고, 어떻게 생각했으며, 무엇을 새롭게 깨달았는가입니다!"
그녀는 메모 한 장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지만, 이성만으로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가?"
다른 메모를 읽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내린 선택은 정당한가?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또 다른 메모를 펼쳤다.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 있지만, 그가 전제한 조건은 과연 타당한가?"
대원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책의 내용을 단순히 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300번의 토론을 통해 서로의 질문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을 배우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는 방법을 익혀 왔다.
그들의 지식은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만이 아니었다.
서로의 생각을 연결하는 능력, 질문하는 습관, 틀렸을 때 다시 시작하는 용기.
그것이 독토의 진짜 무기였다.
차나리가 외쳤다.
"토론을 시작합시다!"
회원들이 일제히 외쳤다.
"저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반론은 가능한가!"
"그렇다면 다른 해석은 없는가!"
16명의 대원이 서로 질문하고 답하며 논리를 쌓아 갔다. 질문은 질문을 낳고, 반론은 더 정교한 반론을 불러왔다.
토론의 열기는 협곡을 넘어 외계인 진영까지 퍼져 나갔다.
외계인들의 정신 제압 장치가 하나씩 폭발하기 시작했다.
은하계 슈퍼컴퓨터는 끝내 계산을 포기했다.
「시스템 오류. 지구인의 토론은 단일한 정답으로 수렴하지 않음. 분석 불가. 분석 불가. 분석 불가.」
그라모스 7세가 비명을 질렀다.
"이럴 수가! 저들은 정답을 하나로 통일하지 않는데도 협력하고 있다!"
차나리는 마지막 메모를 펼쳤다.
거기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만나는 일이고, 토론한다는 것은 그 생각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읽는 일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절대지식광선이 완전히 꺼졌다.
외계인 군대는 무기를 내려놓았다.
지구 결사대의 승리였다.
7. 문붕한의 귀환, 그리고 뜻밖의 반전
전쟁이 끝나자 세계 각국은 환호했다.
부산독서아카데미는 인류를 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유엔은 독토를 지구 지적문명 보존 특별기구로 지정하려 했다.
그러나 차나리는 먼저 두 사람을 찾았다.
관타나모에 구금된 공창옥과 문붕한이었다.
공창옥은 석방되자마자 말했다.
"제가 외계인이라는 의심은 억울합니다. 저는 지구인으로 귀화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차나리가 물었다.
"그럼 문붕한 대원은요?"
문붕한은 고개를 숙였다.
"저는…… 사실 외계인 스파이였습니다."
대원들이 술렁거렸다.
"뭐라고?"
"그럼 그동안 당신이 선정한 책 목록은 모두 외계인 사령부와의 내통에 의한 것이었단 말인가요?"
문붕한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령부에서는 지구인들을 얕잡아보고 만화책이나 동화책 수준의 목록만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탄탄한 내공의 독토 대원들을 보고 제가 독단적으로 가스통 바슐라르, 일리야 프리고진, 마리아 포포바 같은 저자들의 벽돌책을 선정했지요. 그러나 끝내 당신들을 포기시키지 못한 절망감에 탈출을 시도한 것입니다”
대원들은 한동안 문붕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독토 대원 중 착하기로 소문난 이헌식 대원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스파이 덕분에 독토 대원들의 내공과 독서 체력이 일취월장해졌으니 한번 용서해줍시다”
대원들이 웅성거렸다.
용서해주자는 의견과 엄벌헤 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갈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 결론을 딱 내려줘야 할 상황...
대원들의 눈길이 일제히 독토 짬밥이 가장 많은 허종맹 대원에게로 향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정상 참작할 사유가 있긴 하지만, 그 죄질이 무거우니 종신형에 처하도록 합시다”
“아니, 종신형이라면?”
“ 지구상에서 숨을 거둘때까지 독토에 남아서 다음달 도서를 선정해야하는 종신형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8. 300회, 새로운 시작
몇 주 뒤, 부산독서아카데미는 마침내 제300회 독서토론회를 개최했다.
장소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회원들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는 책이 놓였고, 회원들의 손에는 독서메모가 들려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토론회장 한쪽에 외계인 대표단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라모스 7세도 참석했다.
그는 지구 침공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은하계 총사령관직에서 물러났지만, 독서토론의 매력에 빠져 지구에 남기로 했다.
그는 『오월의 장미』를 읽고 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문붕한이 물었다. 오월의 장미라... 저자가 누구지요?
그라모스 7세가 자신 있게 답했다.
“리베카 솔깃!”
김여경 대원이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한글부터 배우세요, 쫌! ”
문붕한이 다시 물었다.
"그럼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무엇입니까?"
그라모스 7세는 갑자기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게……."
차나리가 미소를 지었다.
"읽었다는 것과 이해했다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이해했다는 것과 동의한다는 것도 다르지요."
그라모스 7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토론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대원들은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고, 때로는 격렬하게 반론했으며, 때로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누군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벌써 세 시간이 지났네요."
다른 대원이 대답했다.
"책 한 권을 읽고 세 시간 토론하는데, 27년 동안 300회면……."
문붕한이 재빨리 계산했다.
"토론 시간만 대략 900시간입니다. 물론 책 읽는 시간은 별도고요."
공창옥이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면 우주에서도 보기 드문 지적 수련이지요."
차나리가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27년 동안 해 온 일이 무엇일까요? 책을 많이 읽은 것일까요, 아니면 서로의 생각을 많이 나눈 것일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그라모스 7세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제 생각에는…… 둘 다 아닐까요?"
차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답변입니다. 하지만 다음 토론회에서 더 깊이 이야기해 봅시다."
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 토론회가 끝난 뒤, 그라모스 7세는 은하계 본부에 마지막 보고서를 보냈다.
은하계문명관리위원회 최종 보고서
지구 침공 작전은 실패했다.
원인은 핵무기나 군사력의 부족이 아니다. 지구에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종류의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
이들은 매월 책을 읽고 토론한다. 서로의 의견에 반대하면서도 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때 수정하며, 하나의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견뎌 낸다.
특히 부산독서아카데미라는 집단은 27년 동안 300회의 토론을 통해 이 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지식 자체가 아니다.
지식을 의심하는 능력, 타인의 생각을 듣는 능력,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려는 태도다.
따라서 지구 침공은 중단할 것을 권고한다.
오히려 우리 은하계에도 독서토론회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덧붙인다.
나는 다음 달에도 부산독서아카데미 토론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날 읽을 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벌써부터 기대된다.
에필로그: 외계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제300회 토론회가 끝난 뒤, 회원들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27년의 세월을 함께한 회원들의 얼굴에는 뿌듯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누군가는 앞으로의 300회를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400회 때는 더 특별한 행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때 문붕한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차나리가 물었다.
"무엇입니까?"
"우리가 300회 토론회를 했으니, 이제 외계인들도 독토를 두려워하게 된 것 아닙니까?"
공창옥이 웃었다.
"두려워하는 정도가 아니지요. 아마 앞으로는 지구를 침공하기 전에 반드시 부산독서아카데미의 토론 일정을 확인할 겁니다."
그라모스 7세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리 은하계에서는 이미 지구 침공 작전의 새로운 절차가 마련되었습니다."
회원들이 귀를 기울였다.
"그 절차가 무엇입니까?"
그라모스 7세가 엄숙하게 답했다.
"지구를 침공하기 전에 반드시 독토 회원들의 독서메모를 검토하고, 토론회에 참석해 예비 토론을 거칠 것."
회원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채나리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명심하세요."
"무엇입니까?"
"토론회에 참석하시려면 반드시 책을 다 읽고 오셔야 합니다."
그라모스 7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그날 밤 은하계 본부로 돌아가 긴급 지시를 내렸다.
「전 은하계에 명한다. 부산독서아카데미의 독서토론회에 참석하는 모든 외계인은 지정 도서를 완독할 것. 독서메모 미제출자는 입장 불가.」
그리고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다음 문장이 추가되었다.
「특히 차나리 대장의 질문에 대비할 것.」
그렇게 지구는 구원받았다.
핵무기 때문도 아니었고, 최첨단 과학기술 때문도 아니었다.
27년 동안 매월 한 권의 책을 읽고, 300번의 토론을 이어 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류는 깨달았다.
외계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핵폭탄이 아니라, 책을 읽고 질문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산독서아카데미 제300회 독서토론회, 그 위대한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 달에도 책은 선정될 것이다.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밑줄을 긋고, 누군가는 반론을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토론회가 끝날 무렵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늘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다음 달에는 또 어떤 책을 읽을까요?"
그 질문이 계속되는 한, 지구는 안전하다.
적어도 외계인들이 부산독서아카데미의 다음 토론회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 끝 ―
(이 콩트는 부산독서아카데미 300회 기념 콩트로 챗GPT의 믾은 도움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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