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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 (사사기)를 통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20160814)
본문 : 사사기 전절
핵심구절 :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우리 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함께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십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이번주는 사사기를 살펴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사기의 책명은 "쇼페팀"(지도자들, 또는 재판관들)이라고 합니다. 열두명의 사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라는 뜻을 지닌 '사사기'라는 제목은 이 히브리어 명칭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고 사무엘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이 지도자들(재판관들)은 평상시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법적인 문제점을 해결해 주고, 또한 적군이 침입할 경우에는 그들과 싸워서 몰아내는 일을 주도했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의 저자는 밝혀지고 있지 않으며, 후대의 유대교 전승에 의하면 사무엘이 사사기의 저자라고 하는데, 이 견해가 상당히 가능성이 있는것으로 받아들여지고는 있으나, 확실하게 알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사사기를 통해 두명의 대표적 사사를 이야기 할수 있는데 기드온과 삼손입니다. 그런데 굳이 이 두명의 사사를 꼽는 이유는, 이들은 결코 사사로써 미덕의 본보기를 보인 인물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사기는 대체로 사사들이 자신들의 사역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또한 이방 신들을 버리도록 이끌었다고 묘사하지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시말해, 사사들이 지닌 성품의 다른 측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저버리고, 그 대신 가나안 사람들의 풍습을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따라서 사사들이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인 상태를 항상 개선 시킨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가지 결점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사들은, 때때로 영웅적으로 행동했고, 사사들의 역할인 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와 신실을 베푸는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 쓰임을 받는 하나님의 모든 종들은 각자 결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 가지 취약점을 지니고 있던 사사들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곧 불순종과 배교 행위가 지배하던 사사 시대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자기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에 의해서 결코 방해받지 않으십니다.
그럼 먼저 우리는 사사기의 구조 및 내용을 간단하게 분석해 봅니다
사사기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첫번째, 여호수가 죽은후 그 땅에 나타는 영적 결과들(1:1~3:6)입니다. 두번째로는 지도력의 타락(3:7~16:31)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일반 대중의 타락(17~21장)입니다. 이처럼 사사기는 전체적으로 점점 심화되는 이스라엘의 퇴락을 그리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러한 퇴락의 심화 과정을 '나선형 하강' 또는 '하향 나선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스라엘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퇴락의 사이클을 따라 떨어져, 그 소용돌이는 점점 더 커져서, 결국 온 이스라엘을 삼키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고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사기의 핵심 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지속적인 배교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서 자신들의 존속을 위협받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과 약속의 땅을 온전히 정복하지 못한것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언약을 어겼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뿌린 죄악의 쓴 열매를 계속해서 거두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지속적으로 대적들에게서 구원해 주셨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공로나 회개에 근거해서 구원을 베푸신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쌍히 여기셔서 자비를 베푸시며(2:16,18), 또한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셨기 때문(신6:10~11, 창12:7, 15:7,18~21,26:2~3,35:12)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반복해서 배교행위를 하는 것을 거의 막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사들은 자신들의 그릇된 행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사사들 가운데 주요 인물인 기드온, 입다, 삼손도 스스로 심각하고 중대한 죄를 범했고, 오직 여자 사사인 드보라만이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4~6장).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17:6,2125)지도자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경건한 왕이 필요했던것입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하나님은 장차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17:6,16,35:11,49:10). 또한 경건한 왕은 어떤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시하셨습니다(신17:14~20). 그렇기에 사사기는 경건한 왕이 없던 상황에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인 무질서와 배교 행위에 빠졌는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가지를 집고 넘어갔으며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자기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경건한 왕이 필요했다는 사실에 대한 보충적 설명이 필요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살펴보기위해서는 창세기부터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두말할 필요없이 신정국가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미쳐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백성답게 되어지기 위해서는 여러가지의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기도 하셨고, 그 다음에는 오늘 본문의 사사기에서와 같이 사사들을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게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그것 역시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이제는 왕을 세워, 경건한 왕을 통해 훈련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사기서 역시 하나의 훈련과정임을 분명히 해야 하는것입니다.
구원사적인 측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받은 사명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서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을 통해 성취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여호수아는 자신이 죽기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와 같이 행하기를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공은 지동적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신실한 지도자를 의지하고 따라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사 시대에는 대체로 그들에게 신실하고 경건한 지도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심지어 사사들조차도 이상적인 지도자의 표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사들을 사용하셔서,자기의 백성을보호하시고,때로는 꾸짖으셨습니다. 또한 사사들의 신앙과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실한 왕이 펼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참조, 삼상 1~2장).
문예적 특징
일반적으로 사사기의 형식은 개별적인 ‘영웅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사사기는 사사들이 통치하고 활동하던 특정한 시기의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창세기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사들은 선한 행위 뿐만 아니라,악한 행위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사사기에서 사사들은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인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부정적인 모습으로만 묘사되지도 않습니다. 영웅에 대한 이야기들과 더불어,사사기는 사사들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언급하는 짧은 단락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락들은 그들의 신상에대해서 자세하게 소개하지는 않으며, 잘 알려진 드보라의 노래 (5장)는 시로 쓰여 있고, 삼손에대한 이야기 (13~16장)는 어떤 사람의 비극적인 생애를 다루는 문학에 견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사기는 그 당시의 상황과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합니다. 왜냐하면 사사기는 삶의 부도덕하고 추악한 측면을 간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사기를 읽으면서,우리들은 폭력,성적인 타락,우상숭배 및 권력의 남용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사사기의 이야기에서 신체를 손상시키고 절단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끔찍한 장면도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악한 행위와 관련해서,실상 사사기는 대단히 사악하고 추악한 모습을 그려 줍니다. 사사기는 하나님을 저버린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해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밝히기 위해 그와 같은 것을 빠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사기는 무엇을 말씀하시는걸까요?
한마디로 사사기는 리더십 부재의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역시도 동일한 메시지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현재의 한국교회의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단어가 바로'리더십'의 결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사기 속에서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리더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리더를 사람속에서 찾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준에 의해 리더를 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워야 리더는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신정통치를 거부하고 인본정치를 원했던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을 안듣겠다는 겁니다. 불편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을 세워달라고 합니다. 사람 말은 듣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러한 인본정치가 어떻게 제대로 이루어질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사기는 리더십의 부재 속에서 절망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역설적으로 리더십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패한 인간의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진정한 지도자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사기는 비슷한 곤경에 처해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역설을 통한 긍정적 소망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사기를 통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사사기는 하나님의 필요를 절실히 깨닫게 하시기 위한 과정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왕을 세워달라고 합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기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여호와의 언약적 신실하심과 은혜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곤경에 빠뜨리시는 것은 분명,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것에 기인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언약을 파기한 것에 대한 벌로, 언약의 저주 사항들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무능이나 실패를 보여주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일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나선형 추락을 통해 점점 더 큰 죄악으로 빠져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관영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사사와 왕 그리고 지도자는 여호와이심을 천명합니다. 예를 들어, 드보라와 바락의 전쟁을 주관하시는 이도 여호와시고(4:15,23;5:20,23) 기드온의 미디안과의 전쟁을 승리케 하시는 이도 여호와십니다(7:,22) 따라서 이스라엘 열왕들의 실패가 진정한 왕은 여호와이심을 백성들에게 주지시키지 못함에 있듯이, 사사들의 실패는 진정한 사사는 여호와이심을 보여주지 못함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사사기는 지도자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고 진정한 지도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보여줍니다.
결 론
성경은 언제나 인간이 역사의 주인공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미래의 소망은 오직 뛰어난 영성의 지도자를 통해 성취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새로운 창조 질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단호합니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래하는 것이며, 오늘날 새 언약 속에서 사는 성도들은, 새로운 창조질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는 이미 새로운 창조 질서를 선취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새로운 창조 질서 속에서 사는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고후5:17) 이야기를 합니다.
이처럼 종말의 성도는 옛 창조 질서에 있지만, 더이상 기존 세계에 속하지 않은 우리들을 말합니다. 새 언약의 성도는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지만 이 세상 질서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이 세상의 명예와 재화, 쾌락과 근심등에 지배받는 사람이 아닌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연연해서 자신을 옭아맨다면 그것은 성도의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올바른 삶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사는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중심입니다. 따라서 사사기 역시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로 이 사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새로운 언약 속에서 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우리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