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될 일과 안 그래야 할 일
간혹 오지랖 사역이라는 깃발을 흔들면서, 어려움을 당한 이들을 위해 모금하고서 당사자에게 송금을 한 후 연락을 하면 대부분들의 반응은 비슷합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이렇게 반응하면 저는 꼭 한마디를 첨언합니다.
“그렇죠! 안 그래도 되는데 헌금해 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지난 2017년부터 오지랖 사역이라는 깃발을 흔들면서 참 많은 오지라퍼들을 만났습니다.
최근에는 속한 노회의 정치부 회의 참석차 원주로 가던 고속도로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받고 보니, 경상도 특유의 억센(?) 억양을 쓰시는 사나이셨습니다.
지난해였던가! 개척교회를 벗어나지 못한 작은 교회 사모의 가슴 수술 당시 일백만원을 보내주셨던 분이십니다.(이러한 사실도 지난 문자 메시지를 보면서 알았습니다.)
이분이 전화주신 이유는 최근에 산삼을 저렴하게 판다며 갈릴리 마을에 올린 글을 보고서 구입을 희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다음 말이 제게는 큰 울림을 가져다 줍니다.
“자신이 요즘 건강이 여의치 않아서 면역력 강화를 위해 먹었으면 하는데, 막상 구입하려니 자신이 먹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말은 언급하지 않지만 분위기로 보아서 주변의 어려운 환경에서 목회하거나 어려운 이웃들이 있는데 값비싼 산삼을 먹는 것이 죄스럽다는 말씀이신 것 같았습니다.
차마 더 이상 말씀을 이어가지 못함이 전화상으로도 느껴질 정도로 망설이는 이분과 통화하면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삭막하고 각박한 오늘날에도 이렇게 선한 마음씨를 가진 분이 있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저로서는 구입해라 말아라 할 입장이 되지 못하니 필요하시면 다시 연락을 주시라”하자 잠시후 다시금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 올리신 두 박스를 제가 구입하겠습니다. 한 박스는 제가 먹고 한 박스는 수술하신 사모님께 보내 주세요.” 하셨습니다.
익히 아시듯이 오지랖이라는 말의 의미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간섭하는 경우를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복음서를 읽다가 보면 최고의 오지라퍼는 예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이해관계라는 기준으로 활동하신 분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유익이나 명망이 드러나는 일에는 오히려 수줍어 하시고, 어떤 경우에는 왕으로 추대하시려 하자 그 자리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하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막1:45, 요6:15)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역 동인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함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안 그래도 될 일들에는 자신을 내어주셨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자신이 행하지 않아도 될 일, 또는 구태여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주저없이 나설 수 있는 이들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얼마든지 자신이 누려도 되고, 행해도 될 권리임에도,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걸림이 되고 아픔이 될 수 있다면 그러지 말아야 함을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음식에 대한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8:8-9)
어떤 점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복잡하고 피곤한 삶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바른 그리스도인이요, 바른 직분자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자기 십자가가 아닐까 싶어지는 세상살이입니다.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오종목의 나의 기원”가운데 목회자의 입장에서 늘 되새기는 부분이 있습니다.
< 나는 십자가! 십자가! 오직 내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께서
'너는 내 이름으로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 하고 왔느냐' 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께서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오리까?>
한국교회의 일원으로서 교회다운 교회는 구호나 슬로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한명 한명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안 그래도(안 해도) 될 일을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행동으로 실천하는 이들이 늘어갈 때 건강한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5:14-15)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