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꽃 피어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시를 무척 좋아한다. 나 한 사람으로 세상이 크게 달라질 수 없겠지만 나 한 사람이라도 똑바로 살고 싶은 마음으로 인생 좌우명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40여년을 줄곧 자라나는 후학을 가르쳐 왔다. 그리고 정년퇴직을 했다. 남들은 퇴직했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도 다니고 여가를 즐기라고 권했다. 그러나 허전하고 할 일거리가 없다는 충격을 받아야 했다. 여행을 다니고 여가를 즐기는 것은 에너지를 충전해서 일을 활기차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살아가는 의미가 없이 지낸다는 것은 내 인생 좌우명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봉사활동을 다녔다. 무료급식소에서 식당봉사,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마사지 봉사, 지역아동센터 아동에게 스포츠 스테킹 봉사, 한글미해득 어르신에게 문해교육도 자원해서 했다. 코이카 해외봉사활동도 지원하여 필리핀에서 해외봉사활동도 하고 왔다.
지난 해 1월 어느 날 〈찾아가는 인생나눔교실〉이라는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멘토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읽게 되었다. 그때 내 머리에 섬광처럼 번쩍이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그래서 얼른 지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2023년 인생나눔교실 멘토로서 1년차를 보람있게 잘 보냈다. 한 주에 두 번씩 멘토링 기관에 찾아가는 시간이었지만 가기 전 사전에 멘토링을 계획하고 준비물을 챙기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고 가슴이 설레었다. 단순한 봉사활동과는 달랐다. 멘토링 수업은 나를 매우 긴장된 상태로 이끌어 갔고 멘티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노라면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짜릿한 맛도 느꼈다. 멘티들과의 만남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내가 살아온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내 삶의 성공담은 물론 실패했던 일들도 멘티들과 나누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여유로운 마음이 행복의 지름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유를 모르는 사람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세 가지의 여유로움(三餘)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하루 중에서 저녁이 여유로워야 하고 긴 겨울철이 여유로워야 하며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노년에 접어든 지금 이 여유로움을 멘토로서 보낼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선배 세대로서 후배 세대에게 나누고 베풀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선배 세대로서 쌓은 인생경험을 후배세대에 흘러 보내는 일이야말로 삶의 활력소가 되는 일이며 나를 크게 성장시켰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두 개의 큰 호수가 있다. 이스라엘 북동부에 있는 갈릴리 호수(Sea of Galiee)와 남쪽에 있는 사해(死海 Dead Sea)다. 이 두 호수는 넓은 호수이기에 흔히 바다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북부 헤르몬산에서 발원하여 갈릴리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물은 요르단강을 통해 사해로 빠져나간다. 하지만 사해에 흘러 들어온 물은 수면이 낮은 호수이기 때문에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서울특별시 면적과 비슷한 사해는 요르단 강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흘러 보내지 못해 완전히 폐쇄된 호수가 되었다. 수분이 증발되어 빠져나가더라도 물속에 든 광물질은 증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어 광물질이 쌓이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염분함량이 31.5%이나 된다. 바닷물의 평균 염분함량이 3.5%인 점을 감안하면 무려 10배에 가깝다. 그래서 바다에서 쉽게 뜨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부력으로 둥둥 떠다닐 정도다. 몸에 상처나 염증이 있는 사람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사해 입수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흘러보내지 못하는 사해는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된 것이다. 그러나 갈릴리 호수는 들어오는 물만큼 흘러 보내기 때문에 썩지 않고 맑고 신선한 물이 넘실거린다. 주변에는 아름다운 산과 언덕, 그리고 푸른 물이 있어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최고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경험했던 소중한 자산, 그리고 경륜과 지혜를 후배 세대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흘러 보내는 일이다. 자존감이 낮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대안학교 멘티들에게는 어릴 적 경험도 들려주었다. 어릴 적 농촌에서 살았던 경험도 들려주었다.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던 이야기, 어려웠던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8km나 떨어진 고등학교를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걸어 다녔던 이야기, 걸어 다니면서 메모장에 적은 영어단어를 암기했던 이야기, 이른 새벽 자녀들과 함께 신문배달을 했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근면성실하게 경제활동도 해야 하지만 재무관리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처럼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생나눔교실에서는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멘티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고 공감해 주니 래포형성이 잘 되었다. 흔히들 지식이 부족하면 무식하다고 말하고 지혜가 부족하면 미련하다고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식보다 지혜가 더 필요하다.
그런데 올해에는 멘토링 사업이 없는지 몹시 궁금했다. 기다려도 공고가 되지 않았다. 지난 6월 어느 날 메일이 왔다. 멘토를 모집한다는 공고문이 있었다. 선배되는 분에게도 관련 서식을 보내 드리면서 한 번 도전해 보시라고 하고 얼른 서류를 작성해서 보냈다. 며칠 후 광주 국제 직업전문학교에서 면접이 있으니 시간에 늦지 않게 참여해 달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기회가 또 주어지는구나! 반가웠다. 면접 당일 시간에 맞춰 승용차를 몰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닌가? 전북대학교 학생들이 방학을 하는 날이었기에 광주행 고속버스표가 모두 매진되었다. 다음 버스표도 그 다음 버스표도 모두 매진되었다. 세 번째 버스표를 사게 되면 면접시간을 맞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터미널 근처에 주차한 승용차의 키를 만지작만지작 했지만 장거리 운전을 한다는 것이 못내 불안했다. 그렇다고 면접시험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별수 없이 택시를 잡았다. 택시비가 고속버스 차비의 10배에 가까웠다. 하지만 어쩌랴. 당당히 면접에 응했다. 송곳같은 질문공세가 쏟아졌다. 멘토 1년차를 보냈던 나는 멘티들과 나눴던 이야기 그리고 멘토링을 통해서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발견하고 활기차게 노후를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멘티들과 함께 인생나눔을 하면서 서로 성장해 가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선발해 주신다면 3년차에도 도전하고 싶고 3년차 졸업을 하게 되면 튜터로서도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면접위원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사해의 물처럼 고여있는 물은 썩는다. 흘러 보내고 새 물을 받아야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갈릴리 호수의 물이 될 수 있다. ***이라는 고등학교 3학년 멘티의 이야기였다. 부모님이 헤어지고 아버지와 단 둘이서 살다가 아버지가 형무소에 가게 되었다. 그래서 혼자 자취를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가정이 파괴되고 혼자 지내니 무엇이 즐겁겠는가? 학교에 싫증을 느끼고 비행을 저질러 대안학교에 오게 된 멘티였다. 하루에 담배를 두 갑 정도 피우면서 생활에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멘티가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멘티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다. 그러자 격의없이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었다. 심성이 참 고운 멘티였다. 우선 담배를 끊겠다고 했다. 참 잘했다고 칭찬도 해 주었다. 마음과 마음을 나누니 변화하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어 보람을 느꼈다. 어려울수록 이를 악물고 극복하려는 의지가 중요함을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했다. 나는 이제껏 살면서 술 담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도 남한테 돈을 빌린다든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적도 없다. 한 달 수입이 있으면 아끼고 절약해서 한 달을 살고 남은 금액은 반드시 1년 만기 정기예금을 들었다. 40여년 동안 계속했더니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 종자돈이 생기면 필요한 부동산도 사고 살림도 장만했다. 종자돈이 돈을 벌어주는 역할을 했다. 크게 욕심 부리지 않더라도 여유롭게 살게 되었다는 경험도 들려주었다. 올해에는 중증장애인들을 맡았다. 자폐증이 있는 멘티, 정서가 불안한 멘티, 함묵증이 있는 멘티 그리고 여기저기 뛰어나니는 멘티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우선 멘티들과 친해지기 위해 자기 안아주기를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마음을 갖게 하였다. 그리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후 쉬운 동요 부르기를 했다. 박수도 치고 하하 웃으며 몸을 움직이는 동작을 해 보았다. 풍선을 불고 만져 보는 시간도 가졌다. 색종이를 찢어보고 오려보는 시간도 가졌다. 중증장애인 멘티들도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품어주었다. 돌봄센터 초등학생인 멘티들은 생기발랄하고 표정이 밝아 좋았다. 멘티들을 만나면 힘도 나고 웃음도 절로 났다. 내가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도록 하였다. 운동을 좋아하는 멘티, 음악을 좋아하는 멘티, 춤을 좋아하는 멘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멘티 다양했다. 인생나눔교실에서는 멘티가 지니고 있는 재능이 무엇인가를 발굴해 주는 일이고 그 재능을 키워주는 일이다. 멘티들을 칭찬하면서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멘토링 수업을 다녀와서는 멘토링일지를 작성하고 그날 멘티들과 어떻게 인생나눔을 했는지를 38회분을 글로 남겼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삶의 지침서를 주고 싶었고 후배 세대들에게 멘토로서 활동하다 보면 이런 성장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서로 성장하는 멘토링』이란 책으로 묶었다. 인생나눔교실은 내 인생의 크나큰 활력소가 되었다. 머지않아 풀밭이 꽃밭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풀밭에 나 하나의 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