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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162 나의 영적 필요
날마다 잊지 말고 그날의 성구를 살펴보십시오
“베레아에 있는 사람들은 ··· 말씀을 받아들이며 ··· 날마다 성경을 주의 깊이 조사했다.”—사도 17:11.
성구 해설: 후비판(後批判, post-critical) 또는 ‘탈비평적 해석’은 단순히 “비판을 해야 한다거나 비판을그만두자”는 뜻이 아니다. 성경을 먼저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에도 성경을 여전히 살아 있는 신앙의 텍스트로 읽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서 나온 해석 태도다. 근대 성서학에서는 성경을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이 크게 발전했다.
예를 들어 성경을 읽으면서 이 본문은 실제로 언제 기록되었는가? 저자는 누구인가? 여러 자료가 합쳐진 것은 아닌가? 후대에 편집된 부분은 없는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은 무엇인가?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인가, 문학적 구성인가? 등을 묻는다. 이런 작업을 역사 비평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본문비평, 출처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 등이 있다. 실제 성서비평학에서는 이런 여러 방법들이 발전해 왔다. 이것은 성경을 무조건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이라는 문헌을 역사적·문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예수의 부활 이야기를 읽는다고 하자. 비판적 연구자는 이렇게 자문할 수 있다. “이 부활 이야기는 어떤 전승 과정을 거쳐 현재의 형태가 되었는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멈춰 버리면 성경의 질문이 “이 이야기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에서 “이 이야기는 언제,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조작했는가?”로 바뀌어 버릴 수 있다. 즉 성경을 역사적으로 조작된 고대 문헌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위험이 있다. 후비판적 접근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그러면 성서 읽기에서 후비판적 태도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비판을 통과한 후 다시 성경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 읽는 것이다. 따라서 전비판적 태도가 “성경에 쓰여 있으면 무조건 사실”이라면 비판적 태도는 “정말 그런가?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하는 것이며, 후비판적 태도는 “그런 역사적·문학적 문제들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 이 텍스트가 구성하는 세계와 이야기를 하나의 전체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읽어보자.” 이렇게 비판 이전의 순진성(second naiveté)’과 연결된다. 첫 번째 순진성은 아무 의심 없이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무비판적 태도이지만, 두 번째 순진성은 비판을 경험하고 난 뒤에도 다시 텍스트에 참여할 수 있는 태도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셨다.” 라는 복음서의 내용에 대해 “실제로 물 위를 걸었는가?”, “그 역사적 사건의 원래 형태는 무엇인가?” 등을 먼저 묻는 것이다. 그런데 후비판적적 접근에서는 이야기가 만들어 놓은 서사적 세계 자체가 중요하다. 즉,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셨다는 이야기가 복음서 안에서 예수를 어떤 존재로 보여주는가?”를 묻는다. “역사비평은 유용하지만 그것만으로 성경 읽기를 끝내서는 안 된다.” 후비판적 해석은 현대의 비판적 연구를 활용하면서도, 그것이 성경을 단순한 고대 문헌이나 역사 자료로만 축소시키는 것을 경계한다. 이점은 세 가지 균형 때문에 중요하다. 1. 맹목적인 신앙주의를 피하면서도 신앙을 잃지 않는다. 2. 성경을 '정보의 창고'로만 읽지 않게 한다 성경은 단순히 “기원전 몇 년에 무슨 일이 있었다.”
를 알려주는 역사책이 아니다. 창세기, 욥기, 시편, 복음서, 로마서 등은 각각 이야기·시·지혜·서신 등의 방식으로 인간과 하나님, 죄와 구원, 고난과 희망을 말한다. 따라서 “이것이 역사적으로 정확한가?”라는 질문과 함께 “이 내용은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3. 자신의 선입견을 의심해 보게 한다. 이것이 후비판적 태도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자신의 세계관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하느님이라면 반드시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성경에 집어넣게 될 수 있다. 따라서 후비판적 읽기는 자신의 해석 틀 자체도 의식하게 한다. 따라서 후비판적 태도는 비판을 통하여 믿음을 버리는 태도가 아니라, 성경을 다시 읽을 수 있는 태도라고 이해하면 가장 정확하다.
| 요점 매일의 성구를 검토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알아보세요. |
1-2. 여호와의 조직은 형제자매들이 매일 성구를 살펴볼 수 있도록 어떤 출판물들을 발행했으며,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서 매일의 성구와 해설을 볼 수 있습니까?
모든 교파들이 그러하듯이 시계탑도 자기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성경해석을 신자들에게게 주입시키려고 한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경읽기가 아니고 그들의 관점을 주입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성경읽기의 의도는 읽는 사람이 그 의미를 능동적으로 이해하려는 데 있어야 한다.
1905년에 여호와의 조직은 「믿음의 가족을 위한 일용할 천적 만나」(Daily Heavenly Manna for the Household of Faith)라는 책을 발행했습니다. 이 책에는 형제자매들이 매일 살펴볼 수 있는 1년치 성구들과 「시온의 파수대」(Zion’s Watch Tower)에서 발췌한 그날그날의 해설이 들어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그 동일한 책을 20년 넘게 매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1927년부터는 「연감」에 매일 살펴볼 성구와 해설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a 그렇게 해서, 훨씬 더 다양한 성구들과 그에 대한 「파수대」의 의미 있는 해설들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1986년부터 여호와의 조직은 매일 살펴볼 성구와 해설이 담긴 「날마다 성경을 검토함」 소책자를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현재 300개가 넘는 언어로 나와 있습니다. 또 「JW 라이브러리」 앱과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wol.jw.org) 그리고 「워치타워 라이브러리」의 홈 화면에서도 그날의 성구와 해설을 볼 수 있습니다.
3. (ㄱ) 왜 매일의 성구를 살펴보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까? (ㄴ) 이 기사에서는 어떤 점들을 알아볼 것입니까?
매일 두세끼의 식사가 필요하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영적 식사가 필요하다. 그 양식은 명언을 통하여서 또는 유명 주석가의 성서해설을 읽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성서 자체를 스스로 읽고 그 의미를 스스로 검토해보는 것이다.
3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에 매일의 성구b를 살펴보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먼저 매일 성경을 검토한 베레아 사람들의 본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의 성구를 왜 살펴보아야 하는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도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의 본
4. 베레아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나타냈습니까? (사도행전 17:10, 11)
그들은 성경을 임의로 풀이한 말씀을 듣거나 배운 것이 아니고 성경 자체를 조사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들은
열린 마음으로 듣고, 성경을 직접 조사하여, 그 가르침이 실제로 옳은지 검증함으로써 옳다면 받아들였다. 이것은 내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태도, 확증 편향적 태도를 버려야 함을 의미하며, 특히 시계탑 교인들에게 요구되는 태도이다. 그들은 유일한 통로, 유일한 진리를 주장하면서 만만주의 태도를 지닌다.
4 이 기사의 주제 성구에서는 바울이 마케도니아의 도시인 베레아에서 전파할 때 그의 말을 듣던 유대인들의 태도를 묘사합니다. (사도행전 17:10, 11 낭독) 그들은 흠을 잡으려는 태도가 아니라 기꺼이 배우려는 “고상한” 태도를 나타냈고,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말을 성경의 내용과 비교해 봄으로, 그가 전하는 소식이 진리라는 것을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베레아 사람들과 같은 태도를 나타냅니다. 집회나 대회에서 연설을 들을 때 우리는 연사가 언급하는 성경 내용을 찾아 따라 봅니다. 그처럼 성경을 직접 확인해 봄으로 연사가 성경에 근거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5. 베레아의 형제자매들은 날마다 성경을 살펴봄으로 어떤 유익을 얻었습니까?
사도행전의 기자가 베레아 사람들의 태도를 언급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일방적인 답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계탑의 경우, 그들은 그들의 시한부 종말론적 관점의 성경해석을 상대방에게 쑤셔넣으려고 하면서 그것이 실패하면 배교자,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 등의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이것이 시계탑이 컬트라는 증거이다.
5 “[베레아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신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17:12) 하지만 곧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베레아로 와서 “무리를 선동하여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사도 17:13) 그 결과 베레아의 많은 사람들이 새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베레아의 새로운 형제자매들은 두려움에 움츠러들지 않았습니다. 분명 성경을 날마다 연구하여 진리를 확신하게 된 것이 믿음 안에 굳건히 서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매일 성경을 살펴본다면, 살면서 겪는 어려움들을 이겨 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매일의 성구를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
6. 우리가 매일의 성구를 살펴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 매일 숭배를 드린 성경의 예들” 제하의 내용 참조)
어떤 교단에서 매일 제공되는 성구들이 있다면 그것을 살펴보는 것은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주의할 점은 성구와 더불어 주어지는 그들의 해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며 주체는 성경을 읽는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성구를 읽을 때, 후비판적 태도가 필요하다. 유용한 비판의 관점은 역사 비평적 관점이다. 즉 본문의 정확성, 출처, 편집과정 그리고 양식을 비평하는 것이다.
6 우리가 매일의 성구를 살펴보는 이유는 여호와께 그분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보여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영원히 살기를 바라십니다. (요한 3:16) 그분은 우리 하느님으로서 우리의 정성과 숭배를 받아 마땅하십니다. 성경의 예들을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가 매일 그분께 숭배를 드릴 때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은 매일 그날의 성구를 읽는 것이 기도와 성경 읽기, 묵상과 같은 영적 일과를 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 매일 숭배를 드린 성경의 예들
모세 율법에 따르면 매일 희생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출애굽 29:38-42; 30:7, 8.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율법을 “밤낮으로” 읽고 묵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여호수아 1:8, 각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율법을 베껴 쓰고 매일 읽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신명 17:18-20.
시편 필자는 “밤낮으로” 하느님의 법을 읽으면서 기쁨을 얻으라고 권했습니다.—시 1:1-3.
다니엘은 매일 하루에 세 번 기도했습니다.—다니엘 6:10.
요한 계시록에서는 큰 무리가 하느님께 “밤낮으로” 신성한 봉사를 드린다고 알려 줍니다.—계시록 7:15.
7-8. 매일의 성구를 읽어야 하는 또 어떤 이유들이 있습니까? (에베소서 5:15, 16)
성구를 읽고 나름의 주관적 이해를 통해서 그 이해를 상호 교환할 수 있다. 인터넷의 발달 덕분에 자신의 글을 블로그에 올림으로써 상대로부터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피드백을 참고하여 교정과 세련된 이해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성꾸가 자신의 삶의 기준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7 우리가 매일의 성구를 살펴보는 이유는 그것이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15, 16 낭독) 매일 몇 분이라도 시간을 내서 사랑 많은 하늘의 아버지의 생각을 배우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8 우리가 매일의 성구를 살펴보는 이유는 하루하루의 염려와 걱정을 인내할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매일매일 “그날의 괴로움”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6:34) 그 말씀처럼 우리는 날마다 다양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여호와께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다 알고 계시며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잘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6:25-32) 매일 그날의 성구를 읽으면, 우리가 가진 걱정거리에서 눈을 돌려 여호와께서 주시는 도움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시 68:19; 베드로 전서 5:6, 7) 예를 들어, 한 십 대 자매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정말 용서해 주셨는지 확신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자신이 정말로 용서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날의 성구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성구가 시편 86:5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오 여호와여, 당신은 선하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며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충성스러운 사랑을 풍부히 보이십니다.”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구를 읽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여호와께서 나에게 꼭 필요한 위로를 베풀어 주셔서 정말 감사했죠. 그 이후로 매일 잊지 않고 그날의 성구를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9. 우크라이나의 형제자매들에게 매일의 성구가 어떻게 도움이 되었습니까?
인용된 성꾸 잠언 3장, 5, 6절과 이사야 30: 15절은 하느님을 신뢰해야 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면 이 성구를 읽거나 기억하는 독자는 먼저 하느님의 존재를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은 신앙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평생을 시계탑 조직에 바쳐 봉사한 한 장로 형제(박 종일)는 그가 세상을 하직할 즈음에 정말로 하느님이 계신지 온전히 믿지 못한다는 그의 심정을 솔직히 털어 놓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느님을 우리의 경험 세계와 분리된 자로 주입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증명이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확신을 줄 수 없는 믿음인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이 우리와 분리된 자가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존재하는 세계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것은 존재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며, 그분이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사실은 '분석 명제'가 되는 것이다.
9 매일의 성구에는 어려움을 겪을 때 “여호와를 신뢰”하도록 일깨워 주는 내용이 자주 나옵니다. (잠언 3:5, 6) 예를 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던 날, 그날의 성구는 이사야 30:15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너희의 힘은 평온을 유지하고 신뢰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 성구가 우크라이나의 형제자매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예두아르트라는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성구를 읽으니까 마치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 같았어요. 그날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성구를 읽고 기도를 드렸죠. 그렇게 하니까 마음이 차분해지고 힘이 났습니다.” 스비틀라나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사야 30:15은 우리에게 정말 특별한 성구가 되었어요. 우리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에 수시로 그 성구를 떠올리며 의미를 묵상했죠.”
10. 우리는 왜 용기가 필요하며, 어떻게 용기를 기를 수 있습니까? (여호수아 1:6-9) (또한 삽화 참조)
미래에 대해 불확실할 때, 가지는 용기는 용기가 아니고 만용이다. 왜냐하면 불안한 가운데서 발생하는 도피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를 구체적 사실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에게 유익하게 될 것을 확실히 안다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마음에는 하느님의 평화가 깃들게 되며 이로부터 발생하는 용기가 진정한 용기인 것이다.
10 우리가 매일의 성구를 살펴보는 이유는 그렇게 할 때 충성을 지킬 용기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하고, 사람들에게 성경 진리를 전하고, 박해를 받을 때에도 충성을 지키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호수아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임명되었을 때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용기와 힘을 내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얻기 위해 율법책을 매일 읽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6-9 낭독) 우리도 매일 성경을 읽는 것에 더해 그날의 성구와 해설을 읽는다면 충성을 지킬 용기와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매일 그날의 성구를 읽으면 용기를 얻게 됩니다 (10항 참조)
11. 매일의 성구를 살펴보는 것이 영적으로 발전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매일 새벽 또는 아침에 성구를 보고 영적인 양식을 섭취하는 것은 충실한 삶을 영위하는 필수 요소이다. 그것은 더딜지 모르지만 꾸준한 진보를 가져오며 마침내 승리하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성공의 원리다. 그것이 사업이든 신앙 생활이든 우리의 삶에서 똑같이 적용되는 원리다. 반대로 조급한 자는 10중 8, 9 실패한다. 그 사례가 시계탑의 시한부 종말론에서 드러났다. 그들은 구원을 조급하게 서두려며 긴급한 활동으로 용어를 바꾸었으나 계속해서 실패하여 왔다. 그럼에도 동일한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그들이 구원을 포기하였으나 그들의 사업을 세속적으로나마 포기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11 우리가 매일의 성구를 살펴보는 이유는 영적으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젊은 디모데가 어떻게 영적으로 더 발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디모데에게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순결과 같은 부면에서 계속 발전하라고 권했습니다. (디모데 전서 4:12, 15) 매일 그날의 성구를 살펴보면 자신이 어떤 면에서 더 발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좋은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영적인 사람이 되어, 여호와의 생각을 닮아 가고 생활의 모든 부면에서 그분을 더욱더 기쁘시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로마 8:5, 6.
12. 영적으로 장성한 형제자매들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조직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자격을 갖추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진실한 신앙인이라면 그들의 시계탑 조직의 활동 자체가 결코 신앙을 성장시키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왜냐하면 시한부 종말론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며, 거북이와 같이 느리더라도 꾸준히 걸음으로써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직무 수행은 하나의 조직으로서 존속하기 위한 방법으로서만 용인될 수 있다.
12 우리가 매일의 성구를 살펴보는 이유는 조직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준비를 갖추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조직에서 할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장성한 형제자매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파이오니아나 선교인으로 봉사할 사람들도 필요하고, 베델이나 신권 건축 현장이나 현지 번역 사무실에서 일할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또한 봉사의 종이나 장로나 순회 감독자로 일할 유능하고 겸손한 젊은 형제들도 필요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성경 원칙을 올바로 적용할 줄 아는 신뢰할 만한 형제들이 조직에서 인도하는 일을 하기를 바라십니다. (신명 1:13-15) 매일의 성구를 살펴보는 것을 포함해 좋은 영적 습관을 가지면, 성경 원칙들을 배워 앞으로 조직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더 많은 유익을 얻는 방법
13. 매일 그날의 성구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더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함께 의무적으로 다루는 성서 읽기는 상투적인 습관에 지나지 않으며 마음에 기억되지 않으므로 삶의 기준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기도는 필요할 수 있지만 형식이 되지 않아야 한다. 기도는 자기의 마음을 집중시킴으로써 자기 안에 존재하는 하느님께 자기의 이성의 능력을 한껏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13 매일 그날의 성구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더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전 세계의 베델 가족은 하루를 시작할 때 먼저 함께 간단하면서도 진실한 기도를 드린 다음 그날의 성구와 해설을 살펴봅니다. 우리도 매일의 성구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간단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곧 읽을 내용에서 유익을 얻게 도와달라고 여호와께 말씀드리십시오. (야고보 1:5) 그런 다음 성구와 해설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이런 점들을 자문해 보십시오. ‘이 내용은 여호와에 대해 어떤 점을 알려 주는가? 어떻게 내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가? 오늘 겪을지 모르는 어려움에 대처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성구를 살펴보는 경우라면, 함께 성구를 읽고 나서 어떤 점이 격려적이었는지 대화를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로마 1:12) 또한 일부 형제자매들이 하는 것처럼 성구의 요점을 몇 마디로 요약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루 종일 성구의 내용을 더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14-15. 또 어떤 제안들을 적용해 볼 수 있으며, 그날의 성구를 기억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해설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핵심은 비켜나갔다. 핵심은 주제 성구의 해설에서 일부 설명한 바와 같이 양비판적으로 성서를 읽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필요한 상황에서 자기가 읽은 성꾸가 머리에 떠올라 적용하게 된다. 양비판적 성서 읽기란 내가 성서를 비판적으로 읽으며, 동시에 성서가 나를 비판하도록 마음을 여는 것이다.
14 또한 다음과 같은 제안들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1) 「파수대」 해설의 요점에 밑줄을 치거나 하이라이트 표시를 하고, 그 점에 대해 묵상해 보십시오. (2) 해설에 나오는 참조 성구들을 읽어 보십시오. (3) 그날의 성구가 들어 있는 성경 장 전체를 읽어 보십시오. (4) 「여호와의 증인을 위한 연구 자료 찾아보기」를 사용해 그날의 성구에 대해 더 조사해 보거나, 성경의 연구 노트를 살펴보십시오. (5) 해설이 발췌된 연구 기사의 항들을 앞뒤로 더 읽어 보십시오. 전자 기기를 사용하는 경우 해설 끝부분에 나오는 출처를 누르면, 해설이 발췌된 「파수대」 연구 기사로 바로 연결됩니다.c
15 19세인 매켄지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성구를 읽을 때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내려고 노력해요. 5분만이라도 더요. 성구와 해설을 더 천천히 읽고 묵상하니까, 읽은 내용이 더 잘 기억나더라고요.”
16. 매일의 성구를 언제 살펴보아야 합니까?
가장 좋은 시간은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일 것이다. 그러나 가족과 같이 살펴 본다면 아침 식사 전도 괜찮을 것이며 다른 시간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교파적 해설, 특히 시계탑 종파의 해설은 모래가 너무 많이 썪이거나 썩은 양식이라는 점이다.
16 매일의 성구를 언제 살펴보아야 합니까? 자신과 가족에게 잘 맞는 편리한 시간을 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자매들은 아침 식사 전이나 후에 그날의 성구를 살펴봅니다. 자녀가 학교에 가기 전에 그렇게 하는 가족들도 있습니다. 일부 형제자매들은 그날의 성구를 보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검토함」 책을 식탁이나 그 밖에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 둡니다. 물론,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긴다면 그에 맞게 조정해 다른 때에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7-18. 매일의 성구를 읽을 시간을 정해 두는 것이 왜 유익하며, 매일 성구를 읽는 습관을 유지하는 데 또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또한 삽화 참조)
성구를 읽는 시간을 정해두고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어야하며, 그 시간이 즐거워야 한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자체가 즐거운 활동이 될 때, 가장 유익한 것이다. 의무적으로만 하는 활동은 쉽게 지치며 신체가 거부하기 때문에 결국 중단된다.
17 그날의 성구를 읽을 시간을 정해 두는 것이 왜 유익합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구를 아예 읽지 않고 하루가 지나가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16세인 존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구를 읽는 것을 하루 중 반드시 해야 할 일로 정해 두지 않으면 아예 잊어버리기가 쉽죠.” 25세인 시에라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그날의 성구를 읽어요. 바쁜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요.” 21세인 로헬리오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휴대폰에 알림을 설정해 두면 매일 빠뜨리지 않고 읽는 데 도움이 돼요.”
18 매일의 성구를 읽을 구체적인 시간을 정해 두고 그 시간을 최대한 잘 지키십시오. 그 어떤 것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십시오. 19세인 이자벨 자매는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그날의 성구를 읽기 전까지는 휴대폰으로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세요. 만약 성구를 휴대폰으로 보는 것 자체가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책으로 읽어 보세요.” 19세인 올리비아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그날의 성구를 읽는 것도 도움이 돼요. 그렇게 성구를 읽도록 일깨워 줄 사람이나 함께 읽을 사람이 있으면, 매일 성구를 보는 습관을 잘 유지할 수 있죠.”
매일의 성구를 읽을 때 방해받지 않도록 어떤 조처를 취할 수 있겠습니까? (18항 참조)
자녀들이 매일의 성구를 읽는 습관을 갖도록 도와주십시오
19.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매일 성구를 보는 습관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예를 들어 보십시오. (빌립보서 1:9, 10)
성인이 아닌 경우는 약간의 율법성, 즉 강제성이 동원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이성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이고, 신체가 요구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는 말의 의미는 그들이 사리 분별력이 완숙할 때까지는 어느 정도 강제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율법이 몽학 선생이 되어 좋은 습관을 형성시키는 것이다.
19 부모라면 매일 가족이 함께 성구를 읽는 것을 습관으로 삼아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자녀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습관을 잘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자녀가 어려서 성구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매일 성구를 보는 습관을 길러 주는 것 자체가 장기적으로 자녀에게 유익을 줄 것입니다. 어린 식물이 매일 흙에서 조금씩 수분을 흡수해서 결국 커다란 나무가 되는 것처럼, 어린 자녀들도 매일 몇 분씩 시간을 내서 그날의 성구와 해설을 살펴본다면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빌립보서 1:9, 10 낭독.
20. 영적인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배가 고플 때 음식이 가장 맛있다. 그처럼 영적 양식도 우리의 삶에서 영적 필요를 특별히 의식하는 때가 존재한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의식할 때, 반복되며 지나가는 신체적 활동들로부터 회의가 일어나고 죽음이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의미와 행복을 깨우쳐주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20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마태 4:4)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하루를 보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말씀을 매일 섭취하는 것은 얼마나 더 중요하겠습니까! 따라서 우리 모두 날마다 잊지 말고 그날의 성구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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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매일의 성구를 살펴보면서 더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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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94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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