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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모든 것이 개인화된 세계, 삶은 떠돈다…현대사회의 불확실성 분석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현대’
소비주의, 신자유주의, 기성 정치체제의 위기가 사회 구조와 개인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았다고 주장한 폴란드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유럽의 사상을 대표하는 최고봉’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후 70년의 서구사회는 흔히 ‘진보의 시대’와 ‘보수의 시대’로 구분된다.
1)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의 ‘복지국가 시대’가 진보의 시대라면,
2) 1980년대에서 2000년 이후 첫 10년까지의 ‘신자유주의 시대’는 보수의 시대다.
여기서 신자유주의 시대란 경제체제에 초점을 맞춘 역사 구분이다. 경제체제를 넘어서 전체 사회의 시각에서 지난 30여년을 규정한 사회이론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영향력 있는 시도의 하나가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1925~ )이 제시한 ‘액체 현대’ 이론이다.
<액체 현대>(Liquid Modernity, 2000), <액체 사랑>, <액체 인생>, <액체 공포>, <액체 시간>, <액체 현대 세계로부터의 편지>, <액체 현대 세계의 문화>, <액체 감시>, <액체 현대 세계의 관리>, <액체 악마>. 바우만이 단독 또는 공저로 발표한 ‘액체 시리즈’ 저작들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질 수 있다. 최근 당신의 삶은 어떠했는가. 어느 한 곳에 고정되지 못한 채 부초처럼 떠다닌다는 느낌을 갖는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바우만의 액체 현대 이론에 동의한다고 볼 수 있다. 바우만 사상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액체 시리즈를 통해 바우만은 1980년대 이후 세계사회를 특징지어온 자유와 불안, 애착과 공포를 다각도로 조명·분석함으로써 아카데미 안에 머물러 있던 사회이론을 시민들 삶 한가운데로 이동시켜 놓고 있다.
바우만은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다. 유대인이란 이유 때문에 폴란드에서 쫓겨난 그는 영국으로 이주해 왕성한 지적 활동을 벌였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저작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1989)였다. 이 책에서 그는 비이성의 폭발과 문명의 파괴 현상인 유대인 집단 학살에서 관료제와 도구적 합리성이 그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음을 밝혀 현대성의 그늘을 고발했다. 이후 그는 액체 시리즈를 잇달아 발표해 서구 교양시민들로부터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21세기에 들어와 서구 시민들에게 지적 영향을 미쳐온 사회학자들 가운데 바우만에 필적한 사람은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 정도일 것이다.
■액체 현대란 무엇인가
<액체 현대>는 액체 시리즈의 등장을 알린 첫 저작이다. <액체 현대>를 위시한 일련의 저작들에서 바우만이 제시한 액체 현대 이론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바우만은 현 시대가 ‘고체(solid) 현대’에서 ‘액체(liquid) 현대’로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액체 현대란 현대의 ‘녹이는 힘’이 재분배되고 재할당되는 것을 말한다. 이 ‘액화하는 힘’은 체제를 ‘사회’로, 정치를 ‘생활 정책’으로, 사회적 공존의 ‘거시적 차원’을 ‘미시적 차원’으로 변화시킨다. 그 결과 우리 시대는 실패의 책임을 개인의 어깨 위에 부과하고 새로운 유형의 삶을 모색해야 하는, 다시 말해 모든 것들이 개인화하고 사적으로 변화하는 시대라는 게 바우만의 문제의식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을 둔 그는 해방, 개인성, 시·공간, 일, 공동체의 다섯 영역에서 액체 현대의 현실을 다각도로 추적·분석한다.
바우만은 액체 현대로의 변동을 가져온 세 가지 원인을 주목한다.
1) 사회적 측면의 ‘소비주의’,
2) 경제적 측면의 ‘신자유주의’,
3) 정치적 측면의 ‘기성 정치체제의 위기’가 그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소비주의, 신자유주의, 기성 정치체제의 위기는 사회 구조와 개인 정체성을 모두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구조적 차원에서의 대량 실업과 희망 없는 가난, 개인적 차원에서의 의미 없음과 외로움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액체 현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바우만은 세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1) 액체 현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
2) 권력에 대한 정치의 통제력 회복,
3) 현실에 대해 비판적 사유를 갖는 회의주의적 태도가 그것이다.
특히 마지막 비판적 회의주의의 태도는 일찍이 1980년대에 그가 주장했던 권위적인 ‘입법자’를 넘어선 서로 다른 문화를 해석하고 중개하는 ‘해석자’로서의 시각에 맞닿아 있다.
■액체 현대 이론의 명암
현대란 대략 17세기에 서유럽에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돼온 제도와 문화를 지칭한다. 이러한 현대의 이해와 분석을 둘러싼 토론은 20세기 후반 이후 인문·사회과학의 가장 중요한 논쟁의 하나였다. 논쟁의 초점은 현대에 담긴 질적 변화에 대한 해석과 평가에 맞춰져 있었다.
다수의 사회이론가들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안에서 단계 구분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1)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진전이 가져온 새로운 단계의 제도적 특징을 앤서니 기든스와 울리히 벡이 ‘제2의 현대’로 개념화했다면,
2) 소비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제도적 특징을 바우만은 액체 현대로 이론화했다.
액체 현대 이론의 장점은 사회를 구성하는 두 축인 구조와 정체성의 변화를 날카롭게 분석했다는 데 있다. 이 이론의 매력은 자유와 불안의 동시 증진이 액체 현대의 특징이라는 통찰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한편, 액체 현대 이론은 파편화돼 가는 삶에 맞서는 대안의 탐구에서 아쉬움을 갖게 한다. 유동하는 불안과 공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바우만은 비판적 회의주의라는 소극적 태도 이상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앞서 나는 최근 당신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한편으로 자유롭지만 다른 한편으론 불안하고 두려운 불확실성의 시대가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이러한 시대에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의 실천적 태도를 모색하는 것은 현대인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오늘날 인간다운 삶의 태도를 갖기 위해선 먼저 이 유동하는 시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바우만의 액체 시리즈를 읽어보는 것은 이러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좋은 방법의 하나임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어판 저작은
<액체 현대>는 영문학자 이일수에 의해 <액체 근대>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 옮겨졌다. 바우만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려면 사회학자 노명우가 우리말로 옮긴 대담집 <사회학의 쓸모: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화>가 유용하다.
■리처드 세넷의 신자유주의 비판 - 신자유주의는 개인을 무력화한다…‘능력주의’와 ‘퇴출의 공포’로
바우만의 액체 현대 이론에 대한 비판의 하나는 리처드 세넷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사회학과 교수(73·사진)에 의해 이뤄졌다. 세넷은 바우만이 액체 현대에서 개인의 자유로움이 증진했다고 주장한 것과는 달리 액체 현대 시대인 신자유주의 아래서 이러한 증진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세넷 사회이론은 바우만의 사회이론 못지않게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사회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세넷의 문제의식은 신자유주의가 우리 인간성을 부식시키는 체제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분석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잘 드러난 두 저작이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원제: The Corrosion of Character, 1998), <뉴 캐피털리즘>(원제: 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 2006)이다.
세넷의 신자유주의 비판에서 주목할 두 개념은 ‘능력주의’와 ‘퇴출의 공포’다. <뉴 캐피털리즘>에 따르면, 능력주의란 특별한 능력을 지닌 개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념이었다. 능력사회가 추구한 목적은 신분제적 특권에 맞서 능력을 갖춘 엘리트들 간의 경쟁을 활성화하려는 데 있었다.
문제는 최근 새로운 자본주의의 유연 조직들이 재능 및 성장 잠재력을 강조함으로써 한편으론 개인을 독려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개인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무력감이 어느 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느낌 또는 생각을 뜻하는 퇴출의 공포로 나타난다는 게 세넷의 분석이다.
능력주의가 강제하는 과도한 경쟁은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그늘이다. 세넷의 사회이론을 우리 사회 현실에 적용해 보면, ‘경쟁에 의한, 경쟁을 위한, 경쟁의 사회’야말로 한국사회의 적나라한 현주소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가야 할 직장이 없어도 스펙을 빼곡히 늘려야 하는 청년세대,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동료들과 또 다른 경쟁을 벌여야 하는 30대, 그리고 직장에서 은퇴한 다음 치킨집·피자집을 열어도 거기에 또 다른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는 50·60대는 바로 우리 모두의 정직한 자화상이다.
경쟁 없는 사회는 없다. 하지만 삶의 의미를 파편화하고 결국 부정해 버리는 경쟁체제로는 인간적인 사회를 열어갈 수 없다. 이 점에서 세넷의 신자유주의 비판은 한국사회 현실을 이해하는 데 작지 않은 함의를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