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료원 69% 의사 부족… 정년 넘긴 70대도 채용
[의사 구인대란]
공공의료기관 평균 결원율 18%
수술 못하고 환자 돌려보내는 곳도
전문의 결원률이 34.3%로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중 가장 높은 성남의료원. 성남의료원 홈페이지 캡처
수도권의 한 시립병원은 소속 전문의 약 40명 중 6명이 정년(60세)을 훌쩍 넘긴 60대 후반에서 70대다. 의사 면허에는 정년이 없지만, 시립병원 같은 공공의료기관은 소속 의사들의 정년을 두고 있다. 이 병원은 의사를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정년을 마친 고령의 의사들을 채용한 것이다. 병원 관계자는 “나이가 많다 보니 당직 서기도 어렵고 진료 활동에도 체력적 한계가 있지만 의사를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의사 구인 대란’이 심각한 가운데 특히 공공의료기관의 상황이 더 나쁜 것으로 분석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서정숙 의원(국민의힘)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공의료기관인 지방의료원 35곳 중 24곳(69%·1월 기준)이 의사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평균 결원율은 약 18%다. 의료원마다 정상적인 병원 운영을 위해 필요한 의사 5명 중 1명이 없는 셈이다. 성남시의료원 결원율은 무려 34.3%에 달한다.
공공의료기관들이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정년을 넘긴 고령 의사를 채용하는 자구책까지 쓰고 있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의사가 없어 병원을 찾은 환자를 돌려보내고 수술도 못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고령 의사의 경륜이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젊은 의사 부족으로 인한 진료 역량 약화가 더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일용 경기도의료원장은 “병원 입장에서는 연봉 1000만∼2000만 원을 더 주더라도 젊은 의사를 뽑고 싶지만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의사 못구해 투석환자 80명 돌려보내고, 수술실 두달 문닫기도
지방의료원 69% 의사부족
적은 보수-지방 기피에 구인난 심각
1인당 업무량 증가로 구인난 가중
“응급센터 확충 등도 근본대책 못돼
의사 공급 늘려야 그 다음 단계 구상”
공공의료기관의 의사 부족 현상은 진료 차질과 환자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인천의료원은 지난해 신장내과 의사가 그만둔 뒤 새로 의사를 구하지 못해 현재까지 인공신장실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중단 전 일주일에 2, 3번씩 이 병원에서 투석을 받던 환자는 약 80명이었다. 병원은 이들에게 “다른 병원으로 가서 투석을 받아 달라”며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현재 심장질환 등을 담당하는 순환기내과 의사도 없어서 인근 가천대 길병원에서 순환기내과 의사 한 명을 일주일에 한 번씩 파견받아 진료를 이어 나가고 있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도 상황이 비슷하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두 달 동안 수술실을 닫았다. 응급실을 찾은 급성 충수돌기염(맹장염) 환자도 인근 병원으로 보냈다. 임승관 안성병원장은 “의사 한 명이 그만뒀을 때 후임자가 바로 구해진 건 최근 3, 4년간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 과다 업무에 처우 열악, 코로나19 영향까지
지방 공공의료기관들이 서울의 대형 민간의료기관보다 심각한 구인난에 처한 이유는 보수가 더 적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다 보니 지방 공공의료기관에서는 의사 한 명이 과도한 양의 업무를 맡아야만 하고, 이는 또 구인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공공의료기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이후 의사가 대거 이탈했다. 비(非)코로나19 환자가 대폭 줄거나 아예 없어지면서 이 환자들을 진료하던 의사들은 ‘커리어 공백’이 생겼다고 느껴 병원을 떠난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의사 부족을 겪고 있는 공공의료기관이 경쟁적으로 인력 확보를 시도하면서 의사의 ‘몸값’은 더 오르고 있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의료원장)은 “인력난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데 연봉 인상 요구는 커진다”며 “이런 식으로 사람을 구하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수그러들면서 공공의료기관은 순차적으로 전담병원 지정에서 해제되고 있지만 일반 환자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시립병원인 서울 서남병원의 노창석 진료부장(호흡기내과 전문의)은 “환자 입장에서는 병원을 바꾸려면 진료 내역이나 서류 등을 새로 준비해야 하다 보니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며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도통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 교수 승진 가산점-전공의 공급 등 고려해야
의료 현장에서는 의사 구인난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노 부장은 “의사 수는 정해져 있는데 은퇴하는 의사는 계속 나온다”며 “특히 의사들이 기피하는 과에서는 구인난이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더 이상 개별 의료기관이 알아서 의료진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적인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는 의사가 없어서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는 응급의료센터 확충, 중증 어린이 환자 진료 인프라 확대 등의 대책들은 ‘더 많은 의사가 있어야만’ 실행할 수 있다. 임 원장은 “의대 정원 확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의사 공급을 늘려야 그 다음 단계를 구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의료기관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도 필요하다. 의사들이 연봉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형 민간병원이 아닌 공공의료기관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고 싶은 의사들도 분명 있는데 지금은 ‘일할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며 “국립대병원 교수 승진을 심사할 때 논문 및 연구 점수를 평가하듯 지방의료원 근무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법이 있다”고 제안했다.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리는 지방의료원에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공급을 늘리자는 제안도 나온다. 지방의료원에는 전공의가 없는 병원이 많은데, 이는 전문의 업무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지방의료원 35곳 중 전공의 수련병원으로 지정된 곳은 20곳뿐이다. 정 원장은 “대학병원과 연계해서 인턴 일부를 지방의료원에서 수련받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