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없이 추웠던 12월과 1월을 지나 2월은 어느새 다가올 봄을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유난히 추웠던 올 겨울. 매섭단 겨울 바람은 사그러들었지만 이따금씩 부는 찬바람에 괜히 뼈까지 시린 기분은 여전하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 되면, 혹은 마지막 추위가 겨울의 끝을 알릴 때쯤이면 생각나는 먹거리가 있다. 마음까지 시린 겨울날 간절히 생각나는 먹거리들…. 생각만해도 몸이 훈훈해 지는 음식들이 있다. 특별히 근사하지 않은 소박한 음식들 이지만 올 겨울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이 겨울을 나게 해준 따뜻한 먹거리들을 소개한다.
연희동에 있는 ‘리틀 차이나 타운’은 예전부터 화교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그들이 운영하는 음식점들이 즐비한 곳이다.
서울에서는 드물게 진짜 중국 본토의 맛을 전하는 음식점들이 많은 곳으로, 세련되고 화려한 맛은 없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공 깊은 음식점들을 많이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리틀 차이나 타운’에 있는 독특한 중국 음식점 중 하나가 바로 ‘홍복’이다. 아주 작은 규모의 중국만두 집으로 중국의 명절에 즐겨 먹는 복숭아 모양의 빵이나, 보들보들한 생선 물만두, 파를 넣고 지진 ‘따빙’ 등…독특한 모양과 맛을 지닌 중국 빵과 만두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감동의 맛은 바로 ‘빠오쯔’라고 불리는 왕만두이다. 두꺼운 껍질에 돼지고기와 부추가 들어간 만두… 평소 제일 싫어했던 바로 그 ‘중국식 왕만두’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이 바로 홍복의 왕만두다.
아가씨의 두 주먹을 합쳐 놓은 크기의 빠오쯔는 1인분에 3개가 나오는데 왠만한 장정도 한번에는 해결하기 어려울 만큼 그 양이 대단하다. 조금 두껍다 싶은 만두 피는 몽근하고 폭신하게 부풀어 올라 먹는 동안 입안에서 뭉치아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반으로 쪼개는 순간 맛있는 냄새를 가득 담은 김이 오르고 마침내 실하게 들어찬 속이 보인다. 돼지고기 , 부추, 양파 등 속재료는 너무 잘게 다지지 않아 씹는 맛이 좋다.
눈 깜짝할 새 하나를 다 먹고 나면 어느새 두번째 만두를 집어 들게 된다. 일 인분을 시켜서 하나는 늘, 집에 있는 동생의 야참을 위해 포장해 가지만, 막상 늦은 저녁, 남은 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건 언제나 나였던 것 같다.
(문의: 02-323-1698 /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 연남동 226-23호)
홍복과 마찬가지로 중국집 ‘루루’도 연희동 차이나 타운에 있는 중국음식점이다. 이곳은 홍복과 달리 다양한 중국 요리들을 먹을 수 잇는 곳으로 규모가 제법 커 간단한 모임을 하기에도 좋은 소박한 음식점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이곳을 몇 번 방문해 보았지만 항상 주문하는 것은 한가지 음식이다. 바로 시뻘건 국물이 입맛을 당기는 ‘우육탕면’ 이다.
특별히 한문공부를 잘했던 사람이 아니라도 제목만 들으면 짐작할 수 있듯이 ‘우육탕면’은 진한 고기 국물에 면을 말아내는 탕면이다. 하얀 그릇 가득 담긴 쇠고기 국물에는 맵싸 한 고추기름이 둥둥 떠 있고 파와 죽순, 청경재가 드문드문 보인다. 일반적인 면보다 훨씬 넓은 면발은 칼국수와 수제비면의 중간 굵기로 진한 국물맛과 잘 어울린다.
우육탕면이 나오면 우선 그 뜨끈하고 매운 국물부터 한 차례 들이킨다. 아릿하게 식도를 타고 들어가 어느새 뱃속까지 훈훈해진다. 두 번째로 그 독특한 국수를 한 젓가락 맛봐야 한다. 쫄깃하고 매끈한 면발이 한번에 입안으로 딸려 들어간다. 국물과 국수를 번갈아 먹다가 심심하면 아삭한 청경채와 죽순을 중간중간 먹어준다.
그렇게 몇 차례 순서가 돌아가고 나면 국수는 어느덧 바닥을 보인다. 이렇게 먹는데 보통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데, 다 먹고 난 손님들은 연신 땀을 훔치고 콧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다. 감기가 걸려서 코가 막혔을 때 특히 생각나는 루루의 우육탕면은 가벼운 감기 기운쯤은 한번에 떼어줄 얼큰한 겨울 먹거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의: 02-333-3865 /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188-7)
이태원 하얏트 호텔 근처에 있는 프랑스 식당 비손은 아기자기 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특히 여성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곳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찾는 음식은 주로 스테이크나 파스타류이다.
하지만 내가 비손을 찾는 이유는 단 한가지 바로 ‘양파수프’(프렌치 어니언 수프) 때문이다. 이태원에서 어정쩡하게 남은 시간과 이곳 저곳 돌아다니느라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들어갔다가 우연히 맛보게 된 후 반한 것이 바로 이곳의 양파수프다. 레스토랑의 대표메뉴로 다른 것도 아니고 달랑 수프 한가지를 꼽는 다는 것이 칭찬일지 욕일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의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먹어 봤을 때도 양파수프를 처음 먹었을 때 느꼈던 감동은 느끼지는 못했었다. (파스타 두 가지와 스테이크를 한가지 먹어봤을 뿐이므로 다른 메뉴가 어떤 수준인지는 알지 못한다.)
프랑스에서 양파수프는 우리나랑의 탕과 국처럼 아주 흔하게 먹는 소박한 음식이다. 양파 맛이 진하게 우러난 국물에 구운 바게트빵을 담그고 그 위에 모짜렐라 등 치즈를 잔뜩 올려 다시 구워내는 양파수프는 한끼식사로도 훌륭한 전통의 수프이다.
맛있는 양파수프라 함은 자고로 진하면서도 개운한 맑은 수프에 국물을 담뿍 머금고 있으면서도 쉽게 풀어지지 않는 두툼한 바게트 빵, 그 위를 완벽하게 덮고 있는 두꺼운 치즈가 필수적인 요소이다.
비손의 양파수프는 나의 이런 기준과는 조금 다른 맛의 양파수프 였지만, 볶은 양파에서 우러난 깊은 단맛과 진한 국물의 맛이 색달랐다. 미리 데워진 수프그릇에 담긴 뜨거운 양파수프는 만족스러울 만큼 두껍지 않은 바게트가 아쉬웠지만, 그 위에 듬뿍 얹어진 치즈의 고소함이 반가웠다. 창 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며 따끈한 양파수프 한 그릇을먹는다면 한겨울 매서운 바람마저 낭만적으로 느껴질 만 하다.(문의: 02-790-0479 / 위치: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135-55)
위에서 소개한 세가지 음식도 추위를 가시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홍대 전철역앞에 있는 훠궈 전문점 ‘불이야’에 가볼 것을 권한다.
훠궈는 중국식 샤브샤브라 할 수 있는 음식으로 온갖 향신료와 유채기름을 육수에 넣고 끓인 시뻘건 홍탕과 소반골에 늙은 닭을 함께 넣고 고아 뽀얗게 우려낸 백탕에 여러 가지 재료를 익혀먹는 음식이다. 태극문양의 그릇에 국물이 끓고 있을 때쯤 준비된 쇠고기, 양고기, 해산물, 청경채, 배추 등을 차례로 넣어 먹는다.
이곳의 골수 단골이신 중국전문가, 신계숙 교수님은 우럭을 냉동실 에 얼려두었다가 이 곳에 올 때 챙겨오신다고 한다. 준비해온 우럭 두 마리를 각각 터프하게 홍탕과 백탕에 하나씩 집어 넣고 그 국물이 우러나오면 다른 재료를 넣어 익혀 드신다. 설설 끓고 있는 백탕과 홍탕, 각각에 들어 있는 우럭 두 마리, 푸짐하게 쌓인 온갖 재료들… 정말 중국대륙처럼 호쾌하고 호방한 정서가 느껴지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원래 본토의 훠궈는 그 매운 맛에 입천장이 까지고, 속이 쓰릴 정도라고 하는데 불이야의 훠궈는 그 보다는 조금 수위를 낮춰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먹는 내내 연신 코를 풀어대고 땀을 흘리게 되니,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나 폼잡아야 하는 사람과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일본의 샤브샤브와는 다르게 다소 기름지고 향이 강한 편이라 꺼려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뭔가 화끈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 한 겨울음식이다. (문의: 02-335-6689 / 위치: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