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면도기
정혜인
남편과 아이가 집을 나선 후 두 남자가 남겨놓은 흔적들을 치우는 아침 손길이 바쁘다. 벗어놓은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베란다 창문을 연다. 주인 허락도 없이 들어온 무단 침입자처럼 아침 햇살이 거실 구석구석 내리 꽂힌다. 걸레로 방을 닦다가 문득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멈춘다. 몇 개의 골동품들과 함께 함지박 안에서 놓여 있는 면도기.2년 전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친정에서 챙긴 아버지의 유품이다.
아버지는 당뇨환자였다. 식이요법이나 운동요법, 심지어 약물요법조차 제대로 하지 않더니 어느 해인가부터 거동이 불편해져 누워 지냈다. 아버지는 거의 말이 없었고 멍한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 년에 두어 번 친정에 가면 아버지는 여전히 자리에 누워 있었지만 엄마의 푸념은 여전했다. 저리 아파 누워있어도 고집을 부리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수그러들지 않는 아버지의 깐깐함을 오랜만에 집에 온 딸에게 쌓인 먼지를 털 듯 그렇게 엄마는 하소연을 했었다. 평생 고생을 시키더니 늙어서까지 병수발로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엄마의 푸념을 들으면서 결혼을 하고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는 게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그때마다 했었다. 그래도 위로랍시고 아파 누워있는 게 엄마에게는 차라리 더 낫지 않느냐고 했다. 평소에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아버지였다. 하지만 술만 마시면 가족들을 힘들게 했었던 아버지. 당신에게 한이 많아 그랬었나, 라는 생각은 결혼을 하고 아버지의 술주정을 자주 대하지 않을 무렵에서야 했다.
아버지가 병원 응급실에 가기 전에 친정에 갔었다. 아버지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죽을 떠먹여 드리려고 아버지를 일으켜 앉혀놓고 수저로 죽을 뜬 순간에 아버지는 그만 뒤로 떨어지고 말았다. 자세가 반듯하지 않았나 싶어 다시 몸을 일으켜 머리를 만져주고 다시 앉혔다. 아버지는 먹지 않겠다고 떼쓰는 아이처럼 다시 그대로 눕고 말았다. 벽과 간격이 좁았더라면 아마도 벽에 머리를 부딪쳐 그 때 아버지를 떠나보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단지 자세가 불편했거나 약간 기운이 없었던 탓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 아버지를 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여동생의 전화를 받은 건 이틀이 지난 후였다.
응급실에 누워 계신 아버지는 옆에 가족들이 없었다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 몸이 퉁퉁 부어있었다. 팔과 손등, 그리고 발등까지 대여섯 개의 주사바늘이 꽂혀 있었다. 아버지, 낮게 불러보았으나 아버지는 눈을 떠 딸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 눈을 뜨려 애를 쓰는 듯 했으나 심하게 부은 눈을 뜨기란 당신의 의지로도 어찌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매달려 있는 여러개의 수액들이 아버지의 몸을 불려놓고 있었다. 날카로운 물건으로 살짝 찔러대기라도 한다면 막 수문을 연 댐처럼 아버지의 몸 안에 있는 것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울컥하고 목젖 위로 울음이 넘어오는데 고인 침을 삼키듯 꾹 밀어 넣고 말았다. 이제 와서 내가 눈물을 흘릴 자격이라도 있던가, 자책감이 밀려왔다. 아버지의 부은 손과 발을 만져보는 일과 연민 가득 찬 눈빛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 주사바늘이 꽂힌 자리에 이상은 없는지, 링거 수액이 너무 빨리 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시간마다 소변의 양을 기록하고 소변을 버리는 일, 그것이 그날 내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다음 날 중환자실로 옮겨진 아버지는 완전히 의식을 찾았고 붓기가 조금 빠진 후에서야 아버지의 눈을 마주 할 수 있었다.아버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좀 괜찮아?”
“괜찮게 보이냐?”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사람이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진다는데 무뚝뚝한 건 여전했다. 그래도 좋았다. 그래, 아버지가 이렇게 쓰러지실 양반이 아니지,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와의 대화가 이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정말 그때는 몰랐었다. 면회를 마치고 병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언니와 동생에게‘아버지 곧 일어나시겠네. 여전한 그 성격 보니까’그렇게 말했었는데, 이 고비만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툴툴 털고 다시 일어나 가족들에게 깐깐하게 대할 것만 같았는데. 함께 살면서 수많은 말을 주고받았을 텐데 그 후로 이상하게 마지막 말만 뱅뱅 머릿속에서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가족들을 괴롭혔다.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고 사소한 것에서 트집을 잡기 일쑤였다. 지나간 일들을 되새김질 하면서 밤새 엄마와 자식들을 불러다 앉혀놓고 잔소리를 했다. 참다못한 엄마가 한 마디 토를 달면 그것은 곧 불길에 기름을 붓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살림이 박살나기도 했다. 아버지 앞에서는 가족 누구든 침묵을 해야 했다. 어느 날은 아버지의 횡포를 피해 밤거리를 방황하면서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통사고 뉴스라도 들려오면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였다면 하는 생각을 아주 잠시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바로 그런 자신에게 소스라쳐 놀라 도리질을 했다. 누군가 나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할까봐 겁이 났다. 죽이고 싶도록 밉다는 생각은 사춘기 시절 내내 지녀야했던 끔찍한 비밀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보고서야 두고 온 남편과 아들 걱정에 조만간 또 오겠다고 친정을 나섰다. 3시간 동안 운전을 하면서 지나온 시간들이 글씨 없는 그림책이 되어 한 장씩 펼쳐지기 시작했다. 왜 하필 이제야 좋았던 기억들이 떠오르는지 시야가 흐린 것이 눈물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와이퍼를 작동시켜 차 유리만 닦아댔다.
아버지와 내가 유일하게 부녀지간의 정을 나누는 일은 면도를 해드리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전기면도기 대신 이발소에서 쓰는 면도기를 사용했다.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내게 처음으로 면도를 해달라고 하셨다. 결혼해서 남편에게 면도도 해줘야 사랑받는 여자가 된다며 미리 연습을 해보라고 하셨다. 당신이 하기 귀찮아서일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아버지의 요구를 흔쾌히 승낙했다. 비누거품을 내서 얼굴에 바르고 살이 밀리지 않게 한쪽 손으로 얼굴을 잡고 조심스럽게 면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얼굴 몇 군데에 상처를 냈다. 놀란 내게 아버지는 괜찮다고 했다. 위에서 아래쪽으로 면도를 하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면도를 하고 나면 까칠하던 아버지의 얼굴은 금세 여자의 얼굴처럼 부드러워졌다. 엄마의 로션과 스킨을 발라드리고 나서야 아버지의 수염 깎는 일은 끝이 났다. 그 후로 늘 아버지 면도를 해 드리는 일은 내 몫이었다.상처를 내지 않고 익숙하게 잘도 했다.
상태가 호전되는 듯해 잠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보름 정도 지나 그 새를 못 참고 아버지는 평소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언니가 병실을 지키는 동안 세상을 떠나셨다. 언니는 가장 멀리 사는데도, 직장을 다니는데도 그 날 시간을 내서 아버지를 찾았다. 술에 취해 난리를 피울 때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위로해주지 않았던 언니였다. 자식들에게 해준 게 무엇이냐고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던 언니였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마지막 본 가족이 언니라니. 배신감이 느껴졌다. 울지 말자고 운전을 하는 내내 다짐을 했다. 그래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꾸 가슴 끝을 찔러댔다.
아버지는 고향인 지실마을 식영정 뒷산에 묻히셨다. 딸들이 많이 울어야 좋은 곳에 간다고 누군가 뒤에서 말을 했다. 결국엔 이렇게 갈 거면서, 라는 말만 수없이 하면서 그때서야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술을 한 잔 하고 들어온 남편은 기분이 좋은지 내 양손을 잡더니 자신의 발등위에 내 발을 올리라고 한다. 그의 허리를 껴안고 발을 반쯤 올린다. 그는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뒤뚱뒤뚱 걷기 시작한다. 남편의 볼에 가만히 내 얼굴을 대고 눈을 감는다. 아침에 면도를 했는데도 마주 댄 볼이 따끔거린다. 나는 다시 유년 시절로 돌아간다. 퇴근 후 기분 좋은 날이면 아버지는 당신의 발등 위에 내 발을 올리게 하고 방 안을 한 바퀴 돌고는 내 볼에 뺨을 대고 비벼댔다. 따갑다고 아버지의 볼을 밀어내면서 깔깔거렸던 기억이 가슴에 파고 들어앉아 떠날 줄 모른다. 아버지의 수염을 깎는 일은 나에게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깎아내는 것과 같았는지도 모른다. 면도를 할 때만큼은 아버지를 사랑했고 행복했으니까. 면도날을 만져본다. 날이 많이 무뎌져 있다. 숫돌을 사야겠다. 둘째딸이 사랑받는 아내가 되길 바란다던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당신이 쓰시던 면도기로 남편의 수염을 깎아줘야겠다. 남편에게 면도를 해주는 일은 이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깎아내는 일이 아니라 그리움에 대한 것이리라.
아버지를 배웅하는 일이 꽤 오래 걸릴 듯하다. 기억해 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다 토해내지 않고서는 차마 돌아서지 못할 것이기에.
첫댓글 세월은 좋든 싫든 모든 것을 그리움으로 만드는 마법상자
동의 합니다..ㅎㅎ
제 팔자엔 딸이 없으니...
ㅎㅎ 아들도 실만 합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