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다섯개를 들고 옷수선 가게를 찾았다. 체중이 줄고 허리가 가늘어진 탓인지, 나이 들면 키가 줄어든다는데 하체는 더 빨리 짧아지는지, 입던 바지가
자꾸 끌리고 그때마다 추켜 올리기도 귀찮아서 바짓단을 손보기로 했다. 늘어선 가게들 중에서 수선가게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저녁 여섯 시, 상가건물 1층 툭 터진 공간, 이렇게 한산하면 다들 어떻게 먹고 사나, 걱정이
되는 풍경인데, 재봉틀 소리가 시끄러운 귀퉁이로 찾아가보니 아니나 달라 옷 수선집이다. 오십 대쯤 될까, 날씬한 체구의 여인이 검은 색 바지를 다리다 말고
돌아본다.
“바짓단 좀 줄이려고요”
내 말에 따로 댓구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여자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여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두 걸음 떨어진 곳에 등받이가 없는 의자가 있다. 거기에 앉으라는 말이나 몸짓을 내게 했던가..., 긴가 민가 하면서 나는 의자에 앉았다. 여자는 바지를 다리미로 마저
다린 후, 곁에 있는 재봉틀에 앉아 바짓단과 허리를 돌려가며 박는다.
다시 내가 앉은 자리에 가까이 와 바지를 다림질한 후 가지런히 개켜 통로 쪽 진열대 위에 올려 놓은 후 내게 다가온다.
“바지 다섯 갭니다.”
“길이는 재어 왔어요? 여기서 재어야
하나요?”
“등산바지와 검은색 바지에는 핀을 꼽아 표시했고요,
나머지는 검은색 바지와 꼭 같이 하면 됩니다.”
여자는 검은 색 바지의
단을 가위로 잘라낸 후, 다른 바지들도 거기에 맞추어 하나씩 단을 잘라낸다. 등산바지는 단을 잘라낸 후 통로 쪽에 있는 다른 네모난 재봉틀 위에 따로 걸쳐둔다.
그러는 사이에 내 나이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 뵈는 일흔 안팎 여인이 종이 쇼핑백을 들고 통로에서 가게 안 공간으로 돌아 들어온다.
“바쁜가봐?”
주인 여자는 대답이 없다.
“볼 때 마다 안 바쁠 때가 없어.”
“가게 문 닫는 여덟시까지 다 끝내야 하니까요.”
돌아 보지도 않은 채
하는 대답이다. 나이 든 여자는 통로 쪽 진열대를 등지고 놓인 의자에 앉는다. 말끄러미 바라보는 지 살피는 지 내게 머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나는 주인여자의 바쁜 손놀림으로 시선을 옮긴다. 익숙한 솜씨 때문인지 동작이 빠르다. 잘린 내 바짓단 열개가 주인여자가
서 있는 콘크리트 연마석 바닥에 내 던져진다.
나이 든 여자는 흰 쇼핑
백에서 흰색 와이셔츠 같은 것을 꺼내어 깃을 두 손으로 펼쳐 올린다.
“이걸 없애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지? 날이 더운께.”
주인 여자는 흘낏 돌아보며
가타 부타 말이 없다. 아마도 입던 와이셔츠 깃을 잘라내어 성직자들이 입는 셔츠처럼 만들고 싶은 듯.
주인여자가 마주 서 있는
벽에는 색색가지 재봉실이 감긴 원추형 물건들이 수 십 개 걸려 있다. 여자는 내가 가지고 간 바지에
맞는 색상의 실을 골라 재봉틀에 갈아 끼운다. 바짓단 하나 줄이는 삯이 이천원. 전에 내가 삼 천원에 고친 적이 있는 곳 대신 아내가 소개한 곳이다. 이
천원 짜리 작업에 번잡한 공정이 몇 가지인가. 자르고, 접고, 바지 색에 맞는 실을 고르고, 재봉틀로 박고, 고친 바짓단을 다림질로 모양을 잡고… 게다가 등산바지는 올이 풀리지
않게 특수한 재봉틀로 단을 미리 박는 공정을 거친다.
“먼저 좀 해 주면 안되능가?”
나이 든 여자의 안 중에는
내가 없는 듯하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고는
주인 여자가 한 마디 더 붙인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 보다 더 급해요.
오기만 하면 빨리 해 달라고 하니.”
“뭐가 하루 종일 그리 바빠?”
“아침 열 시에 문 열면 일이 밀리는데 저녁 여덟 시까지는 다 끝내야 하찮아요?”
“바쁜 것이 좋지...”
사십대로 뵈는 몸집이
단단하게 생긴 반바지 차림 남자가 들어온다. 종이 쇼핑 백에서 셔츠를 반쯤 꺼내 보인다.
“셔츠 좀 줄이려고 하는데.”
여 주인은
대답이 없다. 아마 이 남자도 나이 든 여자처럼 이 가게에 단골인 듯.
“얼굴은 왜 그래? 점이라도 뺐는가?”
나이 든 여자의 질문에
주인여자는 잠깐 고개를 돌리면서 웃는다. 오른쪽 눈 아래 길게 입술 옆까지 반 뼘 길이의 붉고 가느다란 상처가 나 있다.
“이렇게 긴 점이 다 있다요? 우리 애 운동회에
갔다가 두 사람이 발 묶고 뛰는 경기를 했는데 넘어져서 그래요.”
“바쁘기로는 세상에 나처럼 바쁜 사람이 있으까?”
나이 든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나를 빤히 쳐다본다.
주인여자는 손놀림을 한
순간도 멈추지 않은 채, 나이 든 여자가 하는 말에 응대한다.
나이든 여자의 말을 종합해 보면 남편은 병원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이유 중에는 그 남편도 있는 듯하다. 남편이 내가 하루 빨리 죽어야지 하면, 아버지 그런 말씀하지 마셔요, 아버지가 계시니까 제가 병원에라도 올 수 있잖아요, 라고 말하는 아들이
있고, 꼬박꼬박 한 달에 일백 오십만 원을 병원비로 들이느라 힘들기 짝이 없는 살림을 살면서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는 며느리가 있다. 주인여자가 응대하는 말에 따르면 나이든 여자가 모르지 않는 듯한
누구 네는 한 달에 병원비를 이 백만 원씩 들이고 있단다.
병석에
누운 남편의 시중을 드는 처지를 하소연하는지, 아들과 며느리를 자랑하는지, 나이든 여자가 늘어 놓는 말에 주인 여자도 비슷한 화제를 들어 적절하게 응대를 빼지 않는
동안 내 바지 다섯 개는 말끔하게 다림질까지 끝내고 개켜져 내가 들고 왔던 쇼핑백에 도로 들어갔다.
내 맞은 편 벽에 걸린
티브이에는 우럭을 재료로 한 음식을 소개하느라 바다풍경, 우럭 바구니,
음식점 주방이 차례 차례 등장한다. 나이 든 여자와 티브이 사이에 있는 의자에 앉아 스마트 폰만 들여다 보던 남자는 우럭 매운탕 얘기를
꺼낸다. 싱싱한 우럭도 좋지만 약간 말린 우럭으로 끓인 우럭탕은 더 없이 맛있다고 주인 여자가 응대한다.
어떻게 어느 정도 말리면 되느냐고?
내가 일어서기 조금 전에 찾아와 수선 삯
오천 원을 낸 젊은 이는 티브이 밑에 놓인 운동화를 제 손으로 집어서 갔다. 일곱시가 넘었으니 주인여자에게 남은 시간은 한 시간도 안된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주인여자를 위해 나는 수선 삯 일만원을 지불하고 자리를 떠야 했으므로 거기까지는 듣지 못했다.
그렇지만 다달이 일백 오십만 원씩
아니면 이백만 원씩 들여야 하는 사람들 얘기가 자꾸...
첫댓글 깔끔하고 여운있는 르뽀. 이런것이 리어리티 쇼. 프로파간다 양념 듬뿍친 역겨운 보도는 저리 가거라. 훠이.
수선한 옷들은 입을만 하던가요
그렇게 바쁜데도 실수가 없었는지? 나는 사천원씩 주고 고치는데...
그 중 하나를 이삼일 입고 다녔는데 아주 훌륭했습니다. 나머지도 아내 앞에서 입어보기만 했는데 별 말이 없더군요. ^^
@나도 백사 그분 대단한 장인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