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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견오온 방법 ②》
(8월 23일~30일까지 중국에 있는 동료들과 식구들이 하도 들어오라고 해서 잠깐 다녀오려고 하는데요.^^
중국이 예전과는 달리 외국 사이트나 카톡을 막아둔 곳이 많아서 안되는 지역이 많다고 하네요.^^
그래서 부득이 오늘 선문염송을 보내드려봅니다.😁🪷🙏🏻
그리고 한족 친구들 얘기로는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수행승들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하니 가는 김에 만나보고 오려고요.^^🪷)
♡
[선문염송] 중에서.. (165편) 20240826
제목 : 원상(圓相)
마조에게 어떤 중이 와서 뵈니, 둥근 원상 하나를 그리고 말호대 “들어가도 때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때리리라" 하였다. 중이 선뜻 들어가거늘 마조가 때리니, 중이 말호대 "화상이 저를 때리지 못하십니다" 하였다. 이에 마조는 주장자를 등에 메고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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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
圓相
馬祖因見會參 畫一圓相云入也打不入也打 僧 便入 師便打 僧云 和尙 打某甲不得 師靠却柱杖 休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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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번역본)
【一六五】 마조가 중이 참알(參謁)함을 봄으로 인해 1원상을 그리고 이르되 들어와도 때리고 들어오지 않아도 때린다. 중이 곧 들어갔다. 스님이 곧 때렸다. 중이 이르되 화상은 모갑을 때림을 얻지 못했습니다. 스님이 주장자에 기대고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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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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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8년 전 초기에 글을 쓸 때만 해도 이런 글에 누가 관심을 가져 줄까 싶어서 집안 형님과 지인 형님 한 분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었는데요.
그러다가 주의 사람들과도 같이 보게 되었고 그중에 불자 지인들이 카페에 저의 글을 올려주면서 직접 올려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요.
생각보다 지금은 엄청 많은 분들이 동참을 해주시고 계시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인분들은 거의가 불교와는 상관이 없으신 분들이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주시고 따라 해 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보람을 느끼고 있답니다.🙏🏻
수행이라는 것이 뭐 별거겠습니까?
모두가 참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이고 부처가 되기 전까지는 현명하고 지혜롭게 마음 편하게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지요.
아무쪼록 늘 건강하시고 무엇보다 이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니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꼭 성불을 이루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쉽게 풀어서 설명하느라 글이 좀 길답니다.😅
ㅡ♡
(본문 해설)
오늘 내용도 아주 재미난 내용이 나왔는데요?^^
지금 이 내용은 들어가도 30방 나와도 30방 하는 덕산 선사의 선문과 경허선사가 동내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에 가서 아이들에게 작대기를 손에 쥐여주면서 나를 때리면 용돈을 주겠다 하는 선문과 같은 내용이랍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덕산
https://youtu.be/BYPGo6N6uZA?si=Nejm75wKH9BKBp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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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아주 간단하고 쉽답니다.
왜냐하면 누차 말씀드립니다만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과 마음만 잘 관찰해 보면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진실)
깨닫고 못 깨닫고를 떠나서
"아, 이것이 본래 마음이었구나?"
하는 것 정도는 조견오온(照見五蘊)과 마음만 잘 비교해 보시면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답니다.^^👍🏻
부처님이 중생들이 하도 본성 자리를 못 알아차리니까 방편으로 만들어 놓으신 거랍니다.
그래서 이 방법으로 부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깨치게 했던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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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내용은 이런 내용이랍니다.^^
하루는 마조에게 어떤 중이 와서 뵈니 마조가 바닥에 둥근 원을 하나 그려놓고 말하길..
“이 원 안에 들어가도 때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때리리라"
했다는 것인데요?^^
모르긴 해도 덕산 스님의 30방 선문도 여기서 응용한 것 같습니다?
(참고)
마조와 덕산의 출생연도
마조가 죽을 때 덕산은 6세
마조(709~788)
덕산(782~865)
또는 이렇게 선문을 응용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의자를 하나 앞에 놓고
"앉아도 매를 맞고 안 앉아도 매를 맞는다"
또는
"말을 해도 오십 방 말을 안 해도 오십 방"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아무튼 그래서 중이 선뜻 원 안으로 들어가니까 마조가 그중을 때렸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이 중이 하는 말이 아주 걸작입니다.^^
왜냐하면
"화상 당신은 나를 때리지 못하십니다"
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맞아놓고 "나를 때리지 못한다?" 하니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그렇잖아요?
이미 맞아놓고 "당신은 나를 때릴 수 없다" 하니 이상하지 않나요?
그러나 이상할 것 하나도 없답니다.^^
왜냐하면 본성(불성/성령/마음)은 때릴 수가 없으니까요.
어린 만공처럼 몸은 맞아서 "아야!" 할 수 있지만 본성(불성/성령/마음)은 모양도 형체도 없기 때문에 때리려고 해도 때릴 수가 없다는 뜻에서 이 중은 이렇게 말했던 거랍니다.
"당신은 나를 때릴 수 없다"에서 (나)는 몸이 아니라 본성의 (참나)를 뜻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마조는 이 중의 수준을 알아보고 그냥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갔다는 뜻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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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설명)
많은 분들이 저의 이야기들이 새로운 것들이 많아서 신선하고 배울 점들이 많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셨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사실은 새로운 내용들이 아니라 경전에 이미 다 나와 있는 내용들인데 그동안 후대 사람들이 못 알아차려서 그렇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글을 보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면서 하는 공부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경허스님도 여기에 대해서 말씀하시길 지금 사람들은 절반만 알고 있다고 표현하셨던 것인데요.
저는 솔직히 지금 사람들은 절반이 아니라 4/1만 알고 있다고 보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지금 사람들은 사성제 중 고성제만 말하고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방불교도 그러하고요.
제 경우는 육성으로 남아있는 이름난 분들의 법문을 엄청 많이 들어보았어도 그 어디에도 고성제 알아차림 내용만 있었지 집성제부터의 알아차림 방법에 대한 내용들은 없었답니다?
특히 집성제와 멸성제는 고성제와 어떻게 연결이 되고 서로 간에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었고요?
그래서 매번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혹시 제가 이 부분에 관한 자료들을 아직 못 본 경우 일 수도 있으니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집성제와 멸성제에 관한 방법을 자세히 기록해 둔 자료가 있거나 설명한 자료가 있으면 저에게도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중이고요.
그래서 남방 불교 쪽 큰스님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보고는 있는데요.
그들도 역시 고성제에 관한 알아차림만 하고 있었답니다.
저는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거든요.
저 사람이 어디서 헤매고 있는지를요.
그래서 지금도 경전을 보고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그대로 따라 해보고 충분히 익힌 후에 다른 분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고요.
기왕이면 옛 분들이 하셨던 기록들이 남아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있어야지요?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사성제를 설하셨는데 지금 사람들은 고성제만 말을 하고 있고 집성제와 멸성제는 말을 하고 있지 않은 체 바로 도성제를 말하면서 보시바라밀을 하라느니 인욕바라밀을 하라느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가 빠져있다는 것이고요.
아무튼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몸 안에서 벌어지는 것들인 오온 즉 육근으로 이루어진 여러 가지 기능들의 감각이나 감성 들을..
특히 마음에 관계되는 것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고 있고 어떤 결과들을 나타내고 있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사실은 조견오온 방법도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그렇지 실제로 해보면 아주 단순하고 쉽답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따라 하면서 몸 안에서 벌어지는 것들이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고
어떤 결과를 내고 있는지 등을 여러분도 제가 알려드리는 대로 그대로 따라 하면서 부처님 제자들처럼 서로 호흡을 맞추면서 따라 해 보십시오.
그리고 잘 안되는 부분들은 질문을 주셔야 저도 알아듣고 다른 표현으로 설명해 줄 수가 있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겠어요?
부처님 이야기가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여러분들도 직접 따라 하시면서 확인해 보셔야 잘 되든 안되든 질문이 있어도 있을 것 아니겠어요?
안 그러면 저의 글을 한번 보고 잊어버릴 테니까요.
불교는 글을 보면서 하는 공부가 아니랍니다.
마음을 보면서 하는 공부라 그렇습니다. (※ 매우 중요)
제 경우도 이렇게 해서 빨리 된 경우였고요.
아무튼 지금 이런 내용은 부처님이 대념처경에서 방편으로 다 알려주신 내용들인데요.
한문으로 표현하면 조견오온(照見五蘊)이라 표현한답니다.
제 경우는 처음에는 이런 내용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나중에 알고 보니까 조사선으로 이것을 해결한 경우였는데요.
나중에 경전을 보니까 훨씬 더 쉬운 방법들이 많았답니다.
그중에 하나가 조견오온(照見五蘊) 방법이었고요.
그래서 오늘은 여기에 대해서 다시 복습 차원에서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제 표현력이 다소 부족할 수 있으니 이해가 안 가시는 감각적인 부분들이 있으시면 바로 질문을 주셔야 제가 알 수가 있답니다.^^
♡
[조견오온]이란 오온을 돌이켜본다는 뜻인데요.
제 경우도 [조견오온]과 [색불이공 공불이색]을 따라 해 보다가 대박이 터진 경우랍니다.
조견오온에서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는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오온/생각 포함)과 마음을 분리해서 볼 줄(관찰)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키포인트)
그렇지 않으면 처음 하시는 분들은 많이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의식이 밖으로만 향해 계셨기 때문에 한 번도 나의 오온과 마음을 자세히 관찰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헷갈리시는 겁니다.
그래서 나의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나는 대로 마음이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니고 있는 것이고요.
(이 부분도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관찰 대상임)
관찰을 못하고 있으면 몸(오온/생각 포함)에 끌려다니는 노예가 될 수박에 없답니다.
최소한 내가 지금 왜 화를 내고 있고 즐거워하는지 정도는 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앞으로 여러분들이 몸(오온/생각 포함)이 아닌 아주 여여하고 평온한 본래 마음을 찾아서 쓰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뭔들 할 수가 있을까요?
나를 모르면 마음이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게 되는데요?
그러나 조견오온만 제대로 알면 최소한 앞으로는 이런 일들은 없으실 겁니다.^^
왜냐하면 원인(집성제)을 알게 될 테니까요.^^~
그러려면 먼저 부처님 말씀대로 알아차림이 확립이 되어 있으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림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떤 상항에서도 오온의 반응들을 알아차리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견오온의 핵심)
그래야 달마와 혜가처럼 동시에 마음도 함게 보면서
"어?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는데요?"
가 된답니다.
그래서 팔정도 중 정견(正見/알아차림)을 제일 앞에 둔 것이고요.
이 말은 정견(正見/정확히 보는 알아차림)이 안 되어 있으면 그 어떠한 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눈앞에 가져다 놔도 정확 알아차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리지를 못하면 아무리 부처님이라 해도 방법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알아차림을 줄곧 하라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마음이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몸(오온/생각 포함)이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몸(오온/생각 포함)은 무상한 것이구나" 하는 것까지만 정확히 알면 다음부터는 절대로 밖에 것에 휘둘리지 않게 된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엔 누가 무상한 것에 휘둘리겠습니까?^^
모르니까 휘둘리는 것이지요.
(지금 이 무상 부분을 정확히 보고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함 그래야 멸제가 쉬워지기 때문임)
그러려면 [조견오온]을 하면서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비교 관찰해 보셔야 한답니다.
여러분들 자신이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잘 관찰해 보시면 마음이 몸(오온/생각 포함)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실 겁니다.
몸이 가니까 마음도 따라가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누가 내 몸을 때리거나 꼬집으면 순간 마음에서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잖아요?
이것이 몸의 반응을 통해 마음이 따라가는 경우입니다.
반대로 내 마음에 원수로 여기고 있는 사람이 내 눈앞에 지나가고 있거나 말을 걸면은 심장이 떨리거나 육근(근육)이 꿈틀거리거나 신경이 예민해 지거나 생각이 많아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것이 내 마음의 알아차림을 통해 몸(오온/생각 포함)이 반응을 하는 경우입니다.
마음에서 몸(오온/생각 포함)으로 전의되는 경우이지요.
반대로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마음으로 전의되는 경우도 그렇고요.
이렇게 몸(오온/생각 포함)과 마음은 세트로 움직인답니다.
이것을 분리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에 것은 몸(원인)이 반응을 하니까 마음에 화가 나는 등의 영향을 주고 있는 경우이고,
뒤에 것은 마음에 그동만 뿌리내린(원수/원인) 것들 때문에 몸에서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이고요.
이러한 마음들이 종류에 따라 우리들 마음에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뿌리내려서 모여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것 저것은 나쁜 것 하면서 말이지요.
(안이비설신의)를 통해 들어오는 것들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몸(오온/생각 포함)은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대로 마음에 비치다 보니까 내 마음이 그런 줄 알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모일:집(集) 자를 써서 집성제(集聖諦)라 하는 것이고요.
이렇게 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모여서 뿌리박혀 있는 모양들을 선문에서는 찰간(幢竿)이다 [깃대]다 하는 것이고요.
이러한 것들이 원인이 되어 화가 나든 즐겁든 하는 것이고요.
저것은 맛있는 것, 저런 사람은 나쁜 사람, 저런 소리는 좋은 소리 하면서 말이지요.
이런 것들이 내 마음에 뿌리박혀 있다 보니까 이런 것들이 내게로 다가오면 몸이 먼저 알고 반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에 침이 고이든, 심장이 떨리든, 신경이 예민해 지든 말이지요.
쉽게 말해 일반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니까?
몸이 가면 마음도 따라서 가고 반대로 마음이 가면 몸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누가 내 몸을 때리거나 꼬집으면 마음에 화가 나거나
반대로 마음에 안 드는 놈이 보이면 쌍욕을 하거나 말을 툭툭 던지면서 하게 되고요.
일반 사람들은 마음이 반응을 하니까 몸이 끌려가고 반대로 몸이 반응을 하니까 마음도 끌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몸은 몸이고 마음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내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과 마음을 잘 관찰해 보시면 마음 때문이 아니라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나는 것들 때문에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고요. (※ 핵심)
그리고 여기까지만 확실히 알아차려도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이고요.^^👍🏻 (진실)
그리고 [대념처경] 속 내용들이 비유만 다를 뿐이지 다 같은 내용들이랍니다.
예를 들면 시체를 보거나, 시체가 섞어가는 모습을 보거나, 시체에 구덕이들이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거나, 시체 해골 위에 반쯤 벗겨져 있는 머리가죽을 보거나 했을 때 가장 먼저 반응을 하는 것이 몸(오온/생각 포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이 그대로 거울과 같은 마음에 비추어지다 보니까 일반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분간하지 못하니까 마음이 그런 줄 알고 마음을 움직여서 몸까지 움직이게 해서 업을 쌓고 있다는 것이고요.
이런 수행 방법으로 하신 가장 대표적인 분이 자장율사의 [고골관]이고요.
생각해 보세요?
밥상 위에 진짜 사람 해골을 올려놓고 앉아서 보고 있다고요?
그러면 제일 먼저 반응을 하는 것이 오싹하면서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들 아니겠어요?
일반 사람들은 이것이 그대로 마음에 비추어지다 보니까 "무섭다" "더럽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자세히 관찰해 보시면 혜가처럼..
"어?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는데요?"
"어? 마음은 아무렇지도 않네?"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화선도 마찬가지이고요.
화두도 처음에 들면 온몸이 쑤시고 몸에서 별의별 반응들이 다 일어나잖아요?
번뇌 망상은 말할 것도 없고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화두만 보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꾸준히 해도 숙달이 되면 마음은 고요해진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몸이 적응을 해서 마음이 고요해진 것이지 본성 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몸이 고요하면 마음도 고요하니까요.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이것을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뜻으로 [무기공]이라 하셨던 것이고요.
그래서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요즘 말로 하면 착각하지 말라 하셨던 거랍니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내용들을 제가 비록 출가자는 아니지만 많은 수행자분들에게 알려주시고요.
기왕이면 다 같이 그 자리로 가면 좋잖아요?
경허스님 말씀대로 절반만 알고(4/1) 수행을 하면 절대로 깨달을 수 없답니다.
간화선으로 하시되 마음도 같이 관찰해 봐야지요?
어떻게 불교는 마음을 깨닫는 것인데 화두만 보고 깨달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손가락(화두)과 달(마음) 이야기도 나온 것이고요.
♡
그럼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 실제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에..
[화가 났다] [즐겁다] [슬프다] [두렵다] [괴롭다] [고통스럽다] [두렵다] 등등..
이 외에도
[욕망] [욕구] [집착] [애착] [서두르다] [쫓기다] 등등..
무엇이든 좋습니다.
무엇이든 이러한 것들이 일어날 났을 때 바로 몸(오온/생각 포함)을 관찰해 보시면 반드시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이미 반응을 하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 집중 관찰 대상)
예를 들면 화를 내고 있다면 몸(오온/생각 포함) 이 지랄발광을 하고 있을 것이고,
욕망과 욕구 등이 일어나면 몸(오온/생각 포함) 안을 살펴보시면 반드시 심장이나 가슴이나 육근(근육)이나 감성, 감정 등이 꿈틀대고 있을 겁니다.
심하면 꿈틀대고 있는 것을 넘어서 지랄발광을 하고 있을 것이고요.
[고성제]에 해당하는 이러한 것들을 완전히 알아차릴 수 있는 알아차림의 확립(숙달)이 되어 있어야 왜 그런지를 알 수 있는 [집성제]로 넘어갈 수 있답니다.
쉽게 말해 특히 자극적인 일이나 것들을 보거나 듣거나(안이비설신의를 통해) 하게 되면 반드시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있을 것이니 알아차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대로 마음에 비추어지다 보니까 마음도 떨리고 두렵고 괴롭고 고통스러워 보인다는 것이고요.
그러나 마음을 잘 잘 펴보시면 마음은 고요한데 몸이 그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이지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핵심)
이것을 한문으로 조견오온(照見五蘊법)이라 하는 것이고요.
이렇게 [고성제/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알아차림이 확립(숙달)이 되면 다음은 [집성제] 알아차림을 하셔야 하는데요?
집성제는 아주 쉽게 표현하면 이런 거랍니다.
내 마음에서 화가 나든, 즐겁든, 혜가처럼 괴롭든?
모든 사람들은 [안이비설신의] 등을 통해 뭐든지 내게로(안으로) 접수가 되면 이러한 것들이 일어난다는 것이고?
눈이나 귀를 통해 저놈이? 또는 저것이? 또는 저 소리?(욕하는 소리) 하는 식으로 접수가 되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기도 모르게 종류에 따라 수많은 기준들이 뿌리박혀 모여있어서 그 기준에 맞으면 좋아하고 안 맞으면 싫어하면서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일:집(集) 자를 써서 [집성제]라 하는 것이고요.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기준이 되어 저놈은 나쁜 놈 좋은 놈 하는 것이고, 저것은 좋은 것 나쁜 것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원인이 되어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나게 되고 이렇게 일어난 몸(오온/생각 포함)에 작용들이 그대로 마음에 비치다 보니까 마음도 그런 줄 알고 마음을 움직여서 행동으로 옮겨서 업을 쌓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계속해서 반복한다고 해서 [윤회]라 하는 것이고 이어진다고 해서 [십이연기법]이라 한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끊어 내려면 위에서 나열한 이러한 무명들을 일단은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고요.
알아차리지도 못하는데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실제로 그런지 안 그런지는 몸(오온/생각 포함)과 마음을 분리해서 관찰하면 금방 알 수가 있다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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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고제) 이러한 것들이(집제) 내 마음에 뿌리박혀 있는 모양을 선문(禪門)에서는 찰간(幢竿)이라 하는 것이고 깃발을 매다는 깃대로 비유한 것이랍니다.
이러한 기준들이 내 마음에 뿌리박혀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러한 기준들 때문에 저것은 좋은 것 나쁜 것 하면서 분별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또 원인이 되어 우리들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것이고요.
이러한 분별심 때문에, 기준들 때문에, 그 기준에 맞으면 즐거워하고 안 맞으면 화를 내거나 골을 내면서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러한 현상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돌고 또 돌고 있다는 뜻에서 십이 연기법이다, 윤회다, 생사(生死)다, 바퀴(輪/륜)이다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나고 반응하는 것들 때문에 내 마음도 그렇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를 제공하는 원인은 밖에서 오는 것 같지만 주된 범인은 몸(오온/생각 포함)이라는 것이고요.
예를 들면 누가 나에게 욕을 했다 그러면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절대로 화가 나지 않는답니다.
"아? 저 시끼가?"
하는 순간 몸에서 화가 나고 몸에서 화를 내면 거울과 같은 마음도 그렇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 저 시끼가?" 할 때에
이때 몸(오온/생각 포함)을 잘 관찰해 보시면 100% 몸(오온/생각 포함) 이 지랄발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답니다.
이것이 그대로 마음에 비치다 보니까 마음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고요.
이러한 현상들을 관찰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 (※ 조견오온의 핵심)
그러면 왜 옛 어른들이 몸(오온/생각 포함)이 공(空) 하면 모든 것이 공하다고 한 이유를 아시게 된답니다.
그러면 왜 혜가가?
"어?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는데요?"
"어? 마음은 아주 멀쩡한데요?"
하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 (진실)
이러한 알아차림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보십시오.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알아차림을 확립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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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고 [멸성제]인데요.
멸성제는 무상의 도리만 알면 게임은 끝나는 거랍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나요?
우주도 자전을 하면서 늘 변하고 있는데요.
지구도 늘 변하고 있고 인연이 다하면 지구도 달처럼 죽어서 흩어질 것인데요.
위에서 말한 몸(오온/생각도 포함)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몸(오온/생각 포함)도 항상 무상한 것이니까요.
대념처경에서는 늙어가는 모습으로 예를 든 것뿐이랍니다.
떨리던 심장도 변하고,
두근거리던 가슴도 변하고
예민한 신경이나 감정, 감성도 곧 변하고
생각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한다는 이치만 잘 인지하고 있으면 무상하다는 이치만 잘 알면 집착이나 애착이나 모든 착(着)들은 의지할 곳을 잃고 소멸된다는 것이 부처님 말씀이랍니다.
당연하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누가 곧 변하고 없어질 것에 집착을 하고 애착을 하겠어요?
특히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은 그때뿐인 것을요?
쉽게 말해 몸(오온/생각 포함)이 조용하면 마음도 조용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이것을 너무 힘들어하니까 방편으로 만들어 놓으신 것이긴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엄청 쉽고 빠르게 소멸을 시킬 수 있었답니다.
왜냐하면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이 마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고? 이러한 영향들이 마음에는 하등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만 알면 바로 그 자리가 본성 자리일 테니까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
참고로 제 경우를 샘플로 예로 들면
(제 경우는 무엇이든 마음에서 일어나면 자동으로 몸(오온/생각 포함)을 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답니다.👍🏻
반대로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무언가가 일어나면 마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마음을 관찰해 보기도 하고요👍🏻)
이것이 왜 중요하냐 하면
"어? 마음이 아니었고 몸(오온/생각 포함) 이 문제였네?"
가 되기 때문입니다.
몸은 곧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집착을 쉽게 끊쓸수 있는 것이고요.
누가 무상한 것을 들고 있겠습니까?
반대로 보고 있으니까 욕심을 내고 집착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처님 때에는 몇천 명씩 깨닫게 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왜냐하면 얼마든지 앞에 사람들을 모이게 해서 사성제 순서대로 따라 하게 하면 되니까요.
이렇게 하면 "아? 본성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답니다.
물론 증득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 말입니다.
증득은 마치 큰 항아리 속(마음) 물이 밑창이 빠지듯이 내려앉아서 마음에 모든 것들이 버려져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주리반다가나 흑지범지처럼 끊임없이 마음을 비우고 버리셔야 한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예전에 많이 했었지만 지금은 본성을 알아차리는 것에 집중을 하고 있으니 가까운 날짜에 다시 업그레이드해서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해가 잘 안 가시는 부분이 있으시면 복사를 해서 보내주시면 다른 표현으로 다시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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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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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질문을 받았었는데요.^^
너무 많다 보니까 올려야 할 글들이 이제 자꾸 순서가 밀리게 되네요.^^
이번 내용은 지난 7월 5일에 저번에 질문 주셨던 분의 내용인데요.
함게 공유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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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법문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생시에 조견이 자동
으로되는데 꿈에서 는
내의도와는 다르게
자유롭지 못하네요
더욱더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건강 하시고 즐거운 나날
보내십시요
~
(답변)
아, 안녕하셨지요.😁🙏🏻
그러셨군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해보십시오.👍🏻
너무 집중하려고 애쓰지도 말고요.
너무 잘 하려고 하거나 집중을 하려고 하면 그것 자체가 본성을 보는데 장애가 될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잘하려는 것도 집착이니까요.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이를 일러
"하는 바 없이 하라"
"무심으로 하라"
했던 것인데요.
이 말이 맞답니다.
저도 여러 번 시험해 본 것이고요.
제 경우는 당시에는 이쪽으로는 너무 몰랐기 때문에 얼떨결에 마음을 먼저 털어내고 한참 후에야
"지금 보고 있는 바로 그 자리?"
라는 법문을 듣고 그대로 따라 했더니
"아..? 이건 가 보다?"
했는데요.
왜 "이건 가 보다?" 했느냐 하면 처음에는 확신이 안 섰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중국에 있을 때라 어디 가서 물어볼 곳도 없었고요.
나중에 어느 큰 스님에게 이 말을 했더니 한국에 들어와서 물어봤어도 대답해 줄 사람이 없었을 거라 하더라고요?
아무튼 그때 처음에는 솔직히 제 경우는 0.1초도 안 걸렸답니다.
그냥 지금 보고 있는 그 자리를 보자마자 아? 이건가? 했으니까요.
그렇게 며칠을 아무리 보아도 아주 맑고 투명한 그것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이거구나!" 하고 확신을 했답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을 보고 느낄수 있었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제 경우는 먼저 마음을 털어낸 후라 마음이나 머리가 엄청 깨끗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구름 한 점 없는 마음 상태에서 그 어떤 생각도 없는 상태에서 지금 이 순간을 보았기 때문에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수행을 통해 이런 상태로 먼저 만들어야 쉽게 본성을 알아차릴 수 있답니다.
제 경우는 "눈으로 눈을 보라"는 표현으로도 설명하고 있는데요.
눈으로 눈을 보듯이 보아도 느낄 수 있답니다.
그러면 나만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을 느낄 수 있답니다.
그래서 온몸에 힘을 빼시고 어깨의 힘도 빼시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자연스럽고 편하게
지금 보고 있는 그 자리를 보시든?
현재 이 순간을 보시든?
의식이 깨어서 보시든?
화두든, 위파사나든, 조사선이든 해보십시오.
요새 저는 예로부터 남방 불교에서 내려오는 가르침들을 찾아보고 있는데요.
중국에는 선사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남방에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국에 못지않게 남방의 옛 어른들도 좋은 가르침들이 많거든요.
그중에 하나를 같이 공유해 보겠습니다.
지금 이 스님의 말이 이것을 알고 이야기고 있는지 아니면 남방 불교에서 배운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용은 맞는 말이랍니다.
아무쪼록 장마와 무더위에 건강관리 잘 하시고 꼭 성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동영상>
제목 : 집중하면 왜 마음을 볼 수 없는가? : 웃따마 시리 스님 마하보디 선원 법문 중
https://youtu.be/5NqSkQnvYCE?si=9Lk6izYfxu3mpvK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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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행자 내용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다섯 분을 위해 신설된 유마경(維摩經) 내용이랍니다. ♡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 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 보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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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수달다의 바른 보시 마지막 회
(화면 왼쪽 하단 숫자)
1:40:06~
상호를 갖추고 불국토를 장식하며 사람들을 성숙케 함으로써 곧바로 깨달음의 바탕이 되는 복덕을 이룩하게 되고,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고려하여 각기 적절하게 법을 설함으로써 곧바로 앎이라는 바탕을 이룩하게 되며, 일체의 법 가운데에는 정작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없다는 깊은 도리를 깨달음으로써 지혜라는 바탕을 이룩하게 되고, 모든 번뇌와 장애와 삿됨을 떨쳐냄으로써 곧바로 일체의 선근이라는 바탕을 이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체지를 알고 선행을 쌓음으로써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적절한 길을 곧바로 터득하게 됩니다.
선남자시여, 이 모두가 바로 법을 보시하는 모임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임을 주재하는 보살이야말로 참으로 보시를 베푸는 이요, 최상의 보시를 베푸는 이이며, 신과 인간들의 공양을 받아 마땅한 분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거사의 이 같은 말을 듣고 무리 가운데에 있는 2백 명의 바라문이 그 자리에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 대해 크게 발심했습니다.
저 역시 마음이 홀가분해지면서 뜨거운 감동이 벅차올라 저 고매하신 분의 발에 머리 조아려 진심으로 예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목에 두르고 있던 값비싼 진주 목걸이를 풀어 받아주기를 청하였건만 그분은 거듭 그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저는 부디 이것을 받아서 누구에게든 다시 베풀어주십사고 거듭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그분은 목걸이를 받더니 그 자리에서 두 줄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그 모임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고 있던 가난뱅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난승(難僧)여래에게 바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훌륭한 신통력으로 그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양염(陽炎)이라는 불국토와 그곳의 주재자인 난승여래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진주 목걸이가 난승여래의 머리 위에서 반듯한 벽과 네 기중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진주 누각의 형태로 서 있는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신통력을 모두 보여 주고 난 다음 그분은 말했습니다.
‘시주로써 보시를 베푸는 사람은 그 대상이 누구든 반드시 여래에게 직접 보시를 올린다는 생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길거리의 모든 거지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복전(福田)이라 생각하고 나중에 좋은 과보를 받으리라는 기대와는 상관없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시를 베푼다면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완벽하게 법을 보시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신통력과 설법에 감동한 가난한 이들은 그 자리에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 대해 크게 발심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기에 저는 저 고매하신 분의 병문안을 엄두조차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 보살들은 이와 같이 유마와 자신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여쭈면서 한사코 병문안 가기를 주저하였습니다.
~1: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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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오늘은 바른 보시(布施)에 관한 마지막 내용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법화경 다음으로 유마경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는데요.
그리고 무조건 따라 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답니다.
솔직히 남들에게 내 것을 나누어 주거나, 무료로 봉사하거나, 베프는 마음(보시)은 말이 쉽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가 않지요.
저도 그랬었고요.^^
그러나 작은 것이라도 마음을 나누어 보는 습관을 가져보십시오.
그리고 아무리 거지라 해도 두 손으로 다만 얼마라도 적선을 하시고요.
그러면 비록 깨닫지는 못했어도 그 속에서 여러 가지 마음의 변화들이 일어난답니다.
특히 집안에 안 쓰는 물건을 가지고 있거나 같은 종류의 물건은 두 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면 나머지는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시고요.
그러면 집안도 한결 청결해지고 마음도 한결 청결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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