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신들의 전성시대
노병철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은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이 알아서 할 문제이고 난 요즘 나온 영화를 보면서 다른 생각을 많이 해 본다. 호메로스가 쓴 작품은 두 개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이다. 가방끈이 조금 긴 사람들은 ‘오딧세이’라는 영어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오디세이아’라고 말한다. 난 발음조차 안 되는 단어를 어떻게 외우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어릴 적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으면서 제일 짜증이 났던 것이 내용의 비현실적이며 복잡한 구조가 안 그래도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에 버그가 생기게 했고 서양 이름 외우는데 젬병인 내가 그들의 신 이름을 외우는 데에도 지쳤다. 지금도 박카스나 제우스, 헤라같이 짧은 이름을 가진 신들만 대충 엮고 있을 따름이다. 아직도 유명한 서양 영화배우 이름을 못 외워 가족에게 타박받는다. 박카스라고 했더니 디오니소스라고 이야기해야 한단다.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왜 그리스말과 로마말을 다 알아야 하나?
난 어릴 적 삼국지나 수호지, 대망 같은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리스·로마신화 운운하는 사람에게 은근슬쩍 물어본다. 같은 인물인 조운이나 조자룡이 헷갈리면 삼국지를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고 오호대장군의 활약상을 모르면 삼국지 근처도 못 가본 사람이다. 수호지도 마찬가지다. 양산박 주인공 송강을 비롯한 108 호걸들이 모여드는 이야기에 사흘 밤낮을 지새웠다. 거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이들 영웅 이야기는 몇 번 읽어봐도 지루하지 않다.
‘일리아스’엔 아킬레우스가 나오고 ‘오딧세이’에는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전개 방식은 조금 많이 황당하고 헷갈리게 한다. 약간의 반항기가 있던 나는 그리스·로마신화를 꼭 읽으라는 선생님의 강권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며 읽은 기억이 난다. 삼국지나 수호지가 서양 잡것들 이야기보다 훨씬 재미가 있는데도 무슨 흰 피부에 노랑머리인 서양인들의 신화에 환장한 것처럼 사대 정신에 물들어 서양 고전을 읽지 않으면 고상한 인간 축에 속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취급됐었다.
‘일리아스’와 ‘오딧세이’ 이야기는 지금은 튀르키예라 부르는 터키에서 벌어진 트로이 전쟁의 트로이 목마만 생각날 뿐이다. 백제의 계백 장군 같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싸움 정도만 기억에 남을까, 마치 삼장법사가 손오공 데리고 다니며 온갖 괴물들을 다 만난다는 이야기보다 더 유치한 오딧세이는 솔직히 내 입맛엔 맞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 이야기가 나오기에 딸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하늘의 제우스, 지하의 하데스같이, 동양에서는 ‘삼장도’ 안에 표현되고 있는 천장보살, 지지보살, 지장보살이 있어 하늘과 땅과 지하 세계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바다는 없잖아. 바다의 신 포세이돈 같은 멋진 신이 왜 우리에겐 없지?
”없긴 왜 없어 엄청난 힘을 가진 우리의 바다신 ‘용왕’이 있잖아.“
”아....시시해 뭔 케케묵은 곰팡내가 자꾸 나는 것 같아.“
왜 동양 신들은 유럽 신에 대비해 자꾸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걸까? ”오딧세이 영화 봤나“라는 질문에 뭔가 미안한 감을 가지며 ”곧 봐야지“라고 답하는 사람들 심리가 참으로 안타깝다.
첫댓글 아 참 재미있고 유익도 한 글을 또 읽게 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항상.
아이 회사에서 가족축제를 한다네요.
멀리 제주의 딸네도 초대되었으니
모였을 때 '오딧세이'함께 관람 해 보자고 제안 해 보려합니다. 넷플릭스는 잘 보면서 극장가기 제 제안은 묵살 당하기 일쑨데 아들내외는 제 말이면 거진 다 들어주니 요청해보렵니다. 그리스로마 이야기는 아가들용도 어렵습디다. 뭔 신이 그리 많고 이름도 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