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인터내셔널이 미얀마 가스전 탐사 현장에 설치했던 시추 장비. photo 대우인터내셔널 |
SK네트웍스, 삼성물산, 대우인터내셔널, LG상사, 현대종합상사 등 이른바 5대 종합상사로 불리는 대형사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업계 1위인 SK네트웍스(대표 문덕규)는 계속 매출이 줄고 있다. 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분기에 3.1%, 2분기에 11.7%, 3분기에 7.2%가 줄어들었다. 영업이익도 3분기에는 16% 늘었으나 1분기 -50.7%, 2분기 -8.7%를 기록했다. 특히 2분기에는 당기순손실이 261억7300만원이나 발생해서 적자전환했다.
지난해에도 국내 종합상사들 중 상당수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철강, 석탄 등 원자재 거래량이 줄고 가격마저 하락하면서 어려운 한 해를 보내야만 했다. 업계 1위인 SK네트웍스는 지난해 27조94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위는 25조3259억원의 매출을 올린 삼성물산이었으며, 3위는 17조5711억원의 매출을 올린 대우인터내셔널이 차지했다. 현대종합상사와 대림코퍼레이션, STX도 전년 대비 매출이 감소했다. 반면 GS글로벌과 아이마켓코리아는 두 자릿수 매출 증가율을 보이며 선전해 대조를 보였다.
대우인터내셔널(대표 이동희)은 창사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외형이 줄었다. 지난해 대우인터내셔널의 매출 규모는 17조5711억원으로 2011년 19조4571억원에 비해 9.7% 감소했다. 연간 실적을 기준으로 대우인터내셔널의 매출 규모가 줄어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외형이 감소하면서 영업이익도 1654억원에서 1519억원으로 8.2% 감소했다. 다만 순이익은 비핵심자산 매각 등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48억원 증가한 2155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종합상사(대표 정몽혁)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반토막났다. 현대종합상사의 지난해 매출 규모는 5조4684억원으로 전년 5조4488억원에 비해 196억원(0.4%)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영업이익 규모는 2011년 528억원에서 지난해 288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대우인터내셔널과 현대종합상사의 수익성 악화는 세계 경기침체 영향으로 주요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 데다 엔화가치 하락이 외형과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매출에 비해 극히 낮은 영업이익도 문제다. 최근 3년간 종합상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약 1%. 100만원어치 팔아서 겨우 1만원 버는 셈이다. 이마저도 3분기 들어 0.5%까지 떨어지면서 사실상 남는 것 없는 장사를 해온 셈이 됐다. 벌어놓은 돈이 없다 보니 신규 투자여력도 낮은 편이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오면 종합상사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업종의 하나인 것도 이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조조정의 칼바람도 불고 있다. SK네트웍스는 지난 10~11월 희망퇴직을 받아 상사 부문 인력의 10%에 해당하는 인원을 구조조정했다. 이 회사가 인위적인 인력 감축에 나선 것은 10년 만이다. 이 회사의 전신인 SK글로벌은 2003년 분식회계와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했다.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이유는 전통적 종합상사의 역할이 약화된 가운데 자원개발 등 신사업에서도 고배를 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2010년 9월 브라질 철광석 기업인 MMX의 지분 13.69%를 총 7억달러에 매입한 것이 문제였다.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고 브라질 경제가 휘청대면서 지난 1분기에만 총 19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SK네트웍스는 조직 통폐합을 진행하고 있다. 실적이 부진한 상사 및 자원개발 부문 등을 중심으로 경영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업계 1위 기업의 행보는 파장이 크다. 다른 종합상사들도 SK네트웍스의 구조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물산 상사 부문은 지난해 9월 본사 인력 100여명을 삼성 에버랜드, 호텔신라, 삼성토탈 등의 계열사로 보내기도 했다.
종합상사들이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서다. 본업인 무역업의 경쟁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SK네트웍스를 보면 올 들어 지난 3분기까지 SK네트웍스의 누적 매출액 19조4868억원 가운데 상사 부문은 5조3556억원으로 27.4%에 그쳤다. 상사 부문의 영업이익도 전체 영업이익의 17.1%인 24억여원에 그쳤다. 휴대폰 판매, 주유소 운영, 호텔사업(워커힐) 등 내수 부문이 전체 매출의 4분의 3, 영업이익의 8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상사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글로벌 상품 유통망을 갖추면서 종합상사의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며 “신사업인 자원개발마저 부진해 구조조정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종합상사들은 대기업 계열사로 출범했다. 계열사들의 물건을 수출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것이 종합상사의 수익모델이었다. 정부와 재벌총수들의 외형 키우기 드라이브 때문에 거품이 잔뜩 끼고 있었으나 IMF 외환위기 전까지는 그런 대로 순항하면서 수출역군으로서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1997~1998년 환란 이후 사정이 급변했다. 계열 제조업체들이 경비절감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수출업무를 하기 시작했고 삼성전자나 현대차처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계열사들은 비용뿐만 아니라 효율성 면에서도 더 이상 계열 종합상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내외 영업여건이 악화되면서 종합상사들은 극심한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2000년대 들어 종합상사들은 해외 자원개발 등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 변신을 시도했으나 마구잡이식 투자로 투자금을 까먹는 사태가 잇달아 발생해 요즘 한계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성장전략을 짜느라 영일(寧日)이 없다.
현대종합상사는 지난 9월 30일 중국 칭다오(靑島) 소재 조선소인 청도현대조선 지분을 단돈 1달러에 매각했다. 현대종합상사는 보유 중인 청도현대조선 지분 96.36%의 3분의 2가량인 66.25%를 신규 투자자인 산둥산푸·국청홀딩스 컨소시엄에 넘겼다. 청도현대조선은 현대종합상사가 조선업이 호황이던 2005년 조선사업에 직접 진출해 사업수익을 확보할 목적으로 중국 링산조선소를 인수해 설립한 합작회사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조선업 불황이 겹쳐 이 회사는 자본잠식에 빠졌다. 자본잠식 규모는 2010년 618억원, 2011년 1033억원으로 커졌다.
현대종합상사는 지난 8월 마다가스카르에 위치한 암마토비 니켈광산에서도 손을 뗐다. 현대종합상사는 2010년 8월 한국광물자원공사로부터 암마토비 니켈광산 지분 0.5%를 166억원에 인수했다. 광물자원 분야의 개발을 확대해 사업다각화를 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생산 일정이 지연되면서 수익 창출에 어려움을 겪었고 한국광물자원공사에 지분매각 청구권을 행사해 301억원에 매각했다. 이 광산의 지분 3%를 소유한 삼성물산도 매각 청구권을 행사해 사업에서 철수했다.
SK네트웍스도 구조조정 차원에서 자산매각에 열심이다. 터키의 철강사업 정리, SK증권 보유지분 매각, 1세대 UCC(동영상) 사이트인 ‘풀빵닷컴’ 매각 등 잇따라 자산을 정리했다. 대우인터내셔널도 지난해 교보생명 지분과 중국 산동시멘트법인 지분을 매각했고, 최근엔 부산공장도 태광실업에 넘겼다.
종합상사들의 체질 개선은 회사별로 제각각 진행 중이다. 해외자원개발에 열심인 곳은 대우인터내셔널과 현대종합상사, LG상사가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미얀마 가스전 개발투자가 최근 결실을 거둬들이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지난 6월 미얀마 가스전 상업생산에 들어갔다. 7월부터는 중국 국영회사인 CNPC의 자회사 CNUOC에 가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발견한 3개 미얀마 가스전 가채매장량은 4.5조㎥(원유 환산 시 약 8억배럴)다. 이는 국내 천연가스 소비량의 3년치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14년부터 미얀마 가스전에서 연간 4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이익을 거둬들일 전망이다. 2014년 하반기부터는 셰일가스, 발전소 등 생산직전 단계 중심의 자원개발과 플랜트 분야 투자를 통해 추가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동해 가스전과 미얀마 AD-7광구 시추 탐사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LG상사는 종합에너지 전문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중국 완투고 유연탄 광산의 생산량을 기존 550만t에서 600만t으로 확대한다. 지난 8월에는 보위엔그룹과 베이징에서 석탄화공 플랜트 지분 양수도 계약을 체결하고 국내 기업 중 최초로 해외 석탄화학 분야에 진출했다. 오만 8광구의 원유생산량을 늘릴 계획이고, 호주 동(銅)광산 개발업체 지분 인수 작업도 진행 중이다. GS에너지와 손잡고 STX에너지 인수에도 참여하고 있다. 주익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GS에너지와 LG상사 컨소시엄은 일본 오릭스로부터 STX에너지 지분 62~63%를 5400억원에 매입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주 연구원은 컨소시엄이 STX에너지의 지분을 인수하면 LG상사는 안정적인 유연탄 수요처를 확보하게 되고 GS에너지는 발전사업을 확대하는 데 긍정적일 것으로 평가했다. STX에너지는 국내 최초의 민자 석탄 발전사업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북평화력발전소는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기준 민자 석탄 발전사 중 유일하게 착공됐다.
현대종합상사는 최근 예멘 LNG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2009년 생산을 시작한 예멘 LNG는 생산이 본격화하면서 57억원의 수익이 발생했으며, 올해는 400억원 내외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주가도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현대종합상사 주가는 예멘 LNG 기대감을 재료로 지난 11월 26일부터 12월 5일까지 8거래일 연속 상승하면서 12월 5일에도 3만6600원으로 끝나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권해순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내년 예멘 LNG 개발이익 600억원을 포함해 총 4곳의 자원개발사업에서 확보하게 될 개발이익이 1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라며 “자원개발사업이 본격적인 수확기에 진입하면서 현대상사의 기업 가치도 한 단계 올라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외부인사를 CEO(최고경영자)로 영입하는 결단을 내린 곳도 생겼다. LG상사는 지난 11월 29일 이사회를 열어 지난 6월부터 LG상사 상근고문을 맡아온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을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내정했다. 하영봉 LG상사 대표이사 사장은 고문으로 물러난다. 내년 2월말에 경총 회장 임기가 끝나는 이희범 부회장은 이때까지 경총 회장을 겸직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관을 지내고 경제5단체장을 맡고 있는 거물을 LG상사가 대표이사로 모셔온 것은 그만큼 LG상사가 처한 환경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3분기 LG상사 영업이익은 15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9%나 감소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트레이딩 물량이 줄어든 데다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자원개발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무역과 자원개발의 전문가인 이 회장은 LG상사의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셈이다.
종합상사들은 정부의 해외 자원개발 정책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정부가 발표할 예정인 ‘제5차 해외 자원개발 기본계획’을 통해 국내 업체의 투자 확대가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합상사들의 자원개발사업이 마냥 보랏빛 전망인 것만은 아니다. 뛰어드는 시기도 늦었고 해외자원개발은 일본 종합상사들이 시장을 선점하는 바람에 우리 기업들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다. 미쓰비시상사, 미쓰이물산, 마루베니, 스미토모 등 일본의 대형 종합상사 7개사는 지난해 3월 결산 결과 배당금이 1조엔에 달했다. 대부분 해외 유전·가스전·광산 투자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 종합상사들이 이처럼 막대한 돈을 벌었다는 말은 그만큼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우리 종합상사들이 이 분야에서 돈 벌기 힘들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자원개발사업도 현재로서는 실적하락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석탄과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값은 올 들어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급락했다. SK네트웍스의 경우 브라질 철광석 개발에 나선 지 3년째지만 이번 3분기에는 18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당기순이익도 무려 83%나 줄었다. 대우인터내셔널과 현대종합상사처럼 해외자원개발에서 큰 성과를 거둔 곳도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면 수익성이 악화된다.
업계 1위 SK네트웍스는 선택과 집중을 키워드로 사업 구조조정 중이다. 올 3월 취임한 문덕규 SK네트웍스 대표이사는 취임과 동시에 항공운수, 콘텐츠 제작·유통, 의약품 수출·판매, 신용카드·금융업 등 총 15개 사업목적을 정관에서 삭제했다. ‘돈이 안 되는’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핵심사업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SK네트웍스는 SK텔레콤(휴대폰 판매 대행)과 SK에너지(주유소 운영 대행) 등 계열사 의존도가 높아 다른 종합상사와 비교했을 때 사업구조가 몹시 취약한 편이다. 게다가 해외사업 부실로 인해 자원개발 등 해외사업 비중을 줄일 것으로 예상돼 향후 성장동력이 저하될 것으로 우려된다.
삼성물산(대표 최치훈)은 다른 종합상사와 달리 건설부문의 비중이 커서 상대적으로 종합상사 이미지가 약한 편이다. 삼성물산의 경우는 상사 부문과 건설 부문이 한 회사로 있으면서 한쪽이 업황이 안 좋으면 다른 쪽에서 상쇄하는 식으로 시너지효과를 누렸으나 최근 건설경기가 나빠서 앞으로도 이런 구도가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올 하반기 들어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계속 사들였고 증권가에서는 삼성물산의 삼성엔지니어링 인수설이 나돌고 있어 삼성물산은 향후 큰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종합상사들의 고민은 자전거 타기에 비유할 수 있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전거가 쓰러지듯이 종합상사들은 신규 사업모델을 계속 발굴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신규 사업모델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게 문제다. 해외자원개발만 해도 오랜 세월 동안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하며 성공 가능성도 높지 않은 편이다. 익명을 요구한 종합상사 관계자는 “본업인 무역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종합상사들의 고뇌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