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1900명 검거… “정부 무대책” 30대 피해자 글 남기고 숨져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눈물]
주택 2700채 소유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보증금 120억 가로챈 혐의 구속
경찰 “171명 구속… 배후수사 주력”
윤석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전세 사기를 ‘악덕 범죄’로 규정하고 철저한 단속을 주문하자 경찰 수사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7월부터 이달 2일까지 전세 사기 관련자 약 1900명을 검거하고 171명을 구속했다. 이 밖에도 사건 378건에 대해 1568명을 수사하며 범행을 공모한 공인중개사와 컨설팅업체 등 배후 세력을 밝혀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세 사기 피의자들에 대한 재판도 속속 시작되고 있다. 빌라 수백 채를 사들이면서 최소 7명의 ‘빌라왕’을 내세워 세입자들의 전세 보증금 80억3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부동산 컨설팅업체 대표 신모 씨(37)에 대한 첫 재판은 지난달 24일 열렸다. 대규모 전세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첫 사례다. 신 씨는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에 신축 빌라와 오피스텔 등 240여 채를 사들여 전세 사기를 저지르다 2021년 제주에서 사망한 40대 빌라왕 정모 씨의 배후로 조사됐다.
신 씨와 비슷한 방식으로 빌라 3493채를 사들여 ‘빌라의 신’이라고 불렸던 권모 씨는 지난해 10월 구속 기소됐다. 지난해 1∼7월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주택 2700여 채를 보유해 ‘미추홀구 건축왕’이라고 불렸던 A 씨(62)는 120억 원대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달 20일 구속됐다.
경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 하락과 전세 사기에 대한 우려로 빌라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어 피해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경우 전국적으로 불거졌던 전세 사기 피해로 세입자에게 반환되지 않은 전세금은 지난해 1조1726억 원에 달했다. 전년도 5799억 원의 2배 이상으로 증가한 수치다. 올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갈수록 늘어나는 피해자들은 대부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속만 태우는 실정이다. 일부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인천 미추홀경찰서 등에 따르면 ‘미추홀구 건축왕’ A 씨에게 전세 사기를 당했던 30대 피해 남성이 지난달 28일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피해자는 2021년 10월 보증금 7000만 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소액임차인은 전셋집이 경매 등으로 넘어간 경우 우선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소액’의 기준이 6500만 원이어서 500만 원 차이로 해당되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는 보증금을 전혀 돌려받지 못한 채 살던 빌라가 경매에 넘어갔다. 정부는 은행권을 통해 피해자들의 전세대출 기간을 연장해 주겠다고 밝혔지만 피해자는 기한 연장도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등을 찾아가 대책을 호소하던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제대로 된 대책이 없다”며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전세 사기 피해자모임 대표 배소현 씨(28)는 “반환보증에 가입하지 않은 분들이나 계약 만기가 안 된 분들에게는 길어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며 “전세 사기 피해 구제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관심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기욱 기자, 송정현 채널A 기자, 인천=공승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