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 잠실 지하철역 앞에서 출발.
(오늘의 일정) 잠실→구룡령 도착(17:30)→설피 산장 차에 환승→
설피 산장 도착 →저녁 식사→취침.
오늘도 임 부대장이 함께 못해 허전, 그러나 어쩌랴. 건강복구 작업이
우선이지.매번 새벽 출발하다가 한 낮에 출발하니 좀은 익숙치 못하다.
가는 길은 새벽 보다는 차량들이 한결 많아서 주행 속도가 느리다.
날은 맑고 기온은 7-8도 정도.
백운봉: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왼편에 바라보이는 겹 산들 중에서 유난히 눈길을 끄는 끝 봉이 뾰족한 삼각 모양의 산, 그 의연함과 천 년의 신비를 머금은 듯한 자태에 매료됨으로부터 우리 산행의 서막은 올라간다.
14:50 용문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
록 가수 김 수철이 국악 현대화 작업의 희망으로 떠오르게 된 10년 전 이야기, 1980년 프랑스 청소년 영화제, 본선에 오른 ‘탈’의 영화음악
작곡자로 참석, 한 서양 영화인 왈 ‘영화 속에 당신들의 소리가 없다. 당신들의 고유한 음악은 어떤 것이냐?’
충격 충격! 순간 국악에 대한 무식에 얼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이…
그 후 강선영 당시 예총 회장의 소개로 국악계의 중진 박범훈 과의
만남이 있고 그래서 양악기로 국악의 선율과 박자를 절묘하게 풀어 낸
기념비적인 작품“기타산조’가 탄생. 이후로 ‘서편제’ ‘태백산맥’ 등 영화 음악들과 ‘황천길’ 국악곡, 88올림픽 전야제, 월드컵 개막식 음악 등을 내 놓는 등 국악의 현대화 작업을 진행중인 국보(?)적 존재
라는 얘기.
목이 쉰 차 여사, 창 연습이 지나쳐서 목소리가 간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자 창과 시조 얘기를 풀어 놓는다. 알고 지내는 한식 음식점
'용수산’ 주인, 시누이와 올케,어떤 모임에서 두 사람이 시조를 주고
받으면서 부르는데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었고 부러웠다면서 ‘우리는 후배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남겨 주나?’라며 탄식.
‘그저 후진들에게 짐만 되지 않으면 되지요.’ 희철 공의 명 대구가
아니었으면 한 동안 무거웠을 모두의 마음이 가벼워졌다.
커피를 선물로 가져온 대장의 미국 사는 누님이 엊그제 미국 갈 때는
한국 커피를 한 박스 사가지고 갔단다. 이 무슨 아이러니?
한국 인스턴트 커피가 훨씬 입맛에 맞기 때문.
금년 농수산물 수출 1-3위가 무엇인지? 대장의 질문에 그 누구도 정답을 못했다.격세지감. 1)라면. 2)담배. 3)소주. 그러면 왕년의
인삼제품, 활선어, 김은 다 어디 갔나?
바둑 이야기 중에 김 대장이 해외교포 바둑대회에 국내 대표로 출전한
경력을 인정해서 박 공이 코트라 재직 시 중국 높은 사람으로부터 선물 받은 중국 운남산 500년 전부터의 전통 명물 귀한 바둑 알을 넘겨주기로 단안을 내렸다. 무엇이든 진정 가져야 할 주인이 있는 법.
돈이 그렇고, 권력, 명예가 그렇다.
16:54 446번 도로 분기점 통과.
17:02 구룡령(표고 1,060m) 도착.
일주 전에 조침령에서 산행을 마치고 귀경할 때 들렸던 터라 휴게소의
모든 점원들은 구면, 가족이 운영하는 휴게소 같다. 부부와 딸. 그리고 3명의 종업원.
여기에 무쏘를 두고 설피 산장 주인 차를 타고 산장에 가서 촌닭 두
마리 먹고, 자고, 다음 날 아침 5:30시에 기상, 등산 준비, 6:00시
조침령을 출발키로 되어 있다. 산장의 이이락 씨와는 일정에 대해
사전에 대장이 전화로 약속을 해놓았다.
이 다음 산행을 위해 휴게소 주인에게서 통마람골 부근의 정보 수집.
안병돈/ 돌탑 민박/ 033-435-5160, 011 798-8092/ 자동차 보유. 교통
서비스 가능.
17:50 구룡령 출발. 장발의 이씨가 약속 시간 보다 15분 늦게 도착했다. 주위는 완전한 밤, 깜깜하다. 18:50 설피 산장에 도착.
조침령(鳥寖嶺) : 나는 새도 자고 넘는 긴 고개./ 이 씨의 말.
<이 이락 스토리>:
경기 파주 금촌 출신. 고등학교 졸업. 암벽타기 취미→직업. 암벽 타다 부인과 만나 결혼. 딸 둘(7세 12세). 삽살개 1+새끼 6마리. 네팔에
원정, 세르파 생활 1년, 남미 우루과이에서 산행 가이드 생활 6개월.
부부가 산행 시 봐두었던 명당 이곳에 1995년에 이주 정착. 당시 평당
5만원에 땅을 샀고(현 시가 10만원),
현재의 생활에 부부가 모두 만족. 큰 딸은 어리지만 어엿한 점봉산
곰배령 등산 가이드 (대견하고 매우 자랑스러운 듯). 진동초등학교 분교 재학 중. 학생수 13명, 학생 중에는 세 쌍둥이도 있단다.
부부 교사가 가르치고 있고. 진학은 인근 학교에 자가 통학시킬 계획.
<산장에서의 만찬>.
이씨가 네팔과 남미를 다니면서 봐둔 정감 어린 산장을 모델로 해서
두 사람의 인부를 고용하여 3개월간 손수 지은 집이라고 자랑한다.
소요 금액: 2천만원. 본인 말로는 동네 사람들이 산장 지어 놓은 것을
보고 자기네도 지어 달라 해서 세 채를 지어 주었다고 자랑한다.
중심에 벽 난로+굴뚝 겸 지지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에서 서까래를 8면 흙벽에 걸쳐 놓아서 지붕을 만들었다. 바닥은 거칠게 다듬은 나무마루. 통나무를 무 자르듯 숭덩숭덩 잘라 만든 의자들. 손으로 만든, 투박해서 보기 좋은 큰 탁자 둘. 세 개의 창틀 아래턱마다 가지런히 놓인 수많은 약초 술병들 (병당 3 만 양이란 표시가 구석에 서 있었다).
성철 스님의 앞 뒤를 찍은 흑백사진 각 1점이 벽에 걸려 있고 본인의
멋들어진 포즈의 상반신 사진, 그리고 제목이 없는 자작 시 액자 2점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암벽타기 신발. 도구들, 스키화, 설피 들, 스키, 주간지 신문에 소개된 산장 기사 스크랩 판 3점, 고장 난 음향기기,
라디오, 한지로 된 방명록 1권, 이런 것들이 모두 제자리에 놓여져 방안 분위기를 편하게 한다.
자그마한 체구의 안주인이 큰 아연 쟁반에 백숙 토종 닭 두 마리를 담아 내온다. 가정용 소주 3병, 비료 치지 않고 길렀다는 생 배추, 생마늘,
쌈장, 산나물, 소금… 이씨는 한 자리를 딱 차지하고 우리의 캔 맥주를 스스럼없이 마신다.
벽 난로에서는 토막 나무가 이글거리고 술이 오가고 또 이야기도 오고
가며 꽃을 피우니 산장의 분위기와 기분이 무르익어 간다. 희철 공의
마가목주,박 공의 조니워커 위스키가 산 속의 별주로 한 몫을 하고,
산장의 마가목주,소주들이 안주 좋고, 분위기, 공기 좋으니 맛이 제대로 나는 것 같다.
주인이 취해서 조금 맛이 가는 듯 하니까 얼른 안 주인이 와서 조용히
모시고 간다.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사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듯 흥미를 돋구고 즐거움을 준다.
오늘 밤 그들 삶의 한 부분을 들여다 보면서 또 다른 세상 사람들의
삶을 보았다.
감기로 목이 쉰 차 여사는 괴로운 티를 감추고 분위기를 맞추느라고
애쓰는 모습이다. 2개의 방, 경유 보이라 시설이 되어 있어서 방 바닥이 따끈따끈하다
22:00 취침.
2002. 11. 13 (수).
05:00 대장이 방문을 두들기며 ‘기상!’
실내 물이 모두 얼었다. 영하 10도 정도 될 듯 하다. 5시30분에 깨워
달라고 당부했었는데 주인 마님이 어제 밤에 곤했던지 무소식. 닭 죽을 차 여사가 데워 주어서 모두 요기. 배낭 챙기기 등 등산 채비를 끝내고 마당에 나섰는데…
신선해서 더 차갑게 느껴지는 오지의 맑은 공기, 태고의 적막 같은
주변의 고요함, 또 하늘은 어떻고. 아- 저 무수한 별들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 북두칠성이 저기…북극성은 저 끝에… 선명히 흐르는 은하수도
보이고.…
그러다가 그만 말문을 닫는 우리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우주는 태양과 같은 별이 천억 여 개가 모여서 은하계를 만들고 이런 은하계가 또 천억 개가 모여서 전체 우주를 만든다는데… 그 속에 우리의 위치는? 존재는? 티끌보다 미세한 우리, 한 없이 한 없이 겸손해 짐을 느낀다.
하루 밤 새에 친해진 어미 삽살개, 우리를 반기는데…무지한 개가
상팔자 인가? 206,000원 청구, 좀 바가지 성 금액인 듯 했으나 불문하고 지불.
05:57 설피 산장을 주인의 트럭 타고 출발.
06:10 조침령 도착, 오늘의 산행 출발. 찬 바람이 볼을 때린다.
헤드 램프를 밝히고 분명치 않은 산길을 헤쳐 나간다.
06:25 진짜 조침령 통과.
옛 사람들은 이 고개(조침령)를 넘어 쇠나드리에서 가쁜 숨을 돌리곤
하였을 것. 그런데, 군인들이 1986년에 군용 도로를 뚫어 놓고 엉뚱한
곳에 이름하여 조침령이라 하고는 표지석 까지 세워 놓았으니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알 수 밖에… 후세를 위하여 그 내력을 이 진짜 조침령
어느 곳에 기록으로 세워 두면 좋겠다.
06:54 쇠나드리 통과.
오른 편으로 얼마 내려가지 않은 곳에 쇠나드리 동네 불빛이 내려다
보인다. 대간 종주자를 위한 보급지원 지점, 탈출구로서는 최적지.
헤드 램프 빛을 앞세워 산죽 밭과 철쭉 밭을 지났다. 서풍이 차게 불어 모자와 후드로 머리를 가리고 걸어야 했다.
산 넘어 동녘 하늘이 훤해지기 시작하고 하늘의 뭇 별들은 사라져가고
그리고 얼마를 지나서 뒤 돌아 본 산들의 정상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장관을 이룬다. 멀리 조봉(1,182m)을 넘지 못한 해가 드디어 붉은
자태를 산 위에 들어내고.
08:00 네거리 통과.
08:40 안부 네거리 통과. (바람불이 삼거리?)
매섭고 세차진 서풍이 앙상한 참나무 가지들을 울려 놓고 지나간다.
마치 제트 여객기 소음 같은 울음소리.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황량한 바람소리.바람도 산 정상 지나기가 힘들어서 안부(또는 고개)를 찾아 넘어 가는가?
09:05 995봉 도착.
조침령 절개지, 대청봉, 산불 감시초소가 저 멀리 보일 정도로 쾌청한
날씨. 물병의 물은 얼어서 얼음을 깨고 물을 마셔야 했다. 다행히도
추위로 땀을 덜 흘려서 물을 자주 마시지는 않았다. 산 길은 낙엽에
묻혀 무릎까지 빠지면서 걸어야 할 때가 많았다.
09:50 1061m 고지 도착.
10:50 연가리골 샘터 통과. (북부지방 산림청의 안내 표지판이 있다)
11.25 헬리콥터장 도착.
선배 종주자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진드기가 많은 참으로 재미없고
매력이 없는 길고 긴 산행길이라고 했는데 이해가 감직하다. 나뭇잎들이 무성한 여름철,사방은 시계가 가려 무엇 하나 관심을 끌만한 것은 보이지않고, 길은 오르는가 하면 내려가고 또 오르락 내리락 하기를 반복하니 아무리 인내심을 내세우는 산악인들이라 할지라도 짜증 외에는 날 것이 없겠다. 탈출구가 없는 긴 산행길 구간이어서인지 곳곳에 야영 천막을
쳤던 작은 평평한 자리들이 자주 눈에 띈다.
사실, 기나 긴 이 구간 종주를 놓고 어떤 방법을 택할지를 그간 몇 번
토의를 했는데, 하나는 하루 밤을 산에서 야영하면서 종주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출발지에서 한 밤 자고 새벽에 일찍 출발, 무 야영 종주하는 것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무 야영 종주하자는 제안이 채택되어 오늘이 있게 되었다.
12:30 평해 손씨 묘 통과.
앞산(1,152m)줄기 산자락을 구비구비 휘감듯 고개를 넘는 구룡령 길이
구불구불 눈앞에 펼쳐져 내려다 보인다. 목적지와 이어진 길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반복에서 오는 무료함이 힘으로 변한다.
눈앞의 산은 높아 보인다. 그러나, 바로 눈 앞에서 보는 산은 때로는
언덕 같아 보인다. 백두대간 종주에서 가파른 산을 힘들여 오르게 하는 동기는 ‘정상 그 뒤에는 어떤 전망이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기도 하다.
점심은 시간을 따로 내지 않고 잠간 쉬는 동안, 또는 걸으면서 해결
하자는 대장의 제의에 모두 따르기로. 목적지 도착 시간을 고려한
대장의 결정인 것 같다.
12:45 왕승골 삼거리 통과. (북부지방 산림청의 이정표가 있다)
눈 앞의 겹 산들 맨 뒤에 갈전곡봉이 우뚝 서있다. 매서운 바람은
여전한 가운데 잠시 숨 돌리며 여기까지 걸어온 산들의 능선을 뒤 돌아 보니 ‘엄청난 일을 저질러서 해냈구나’ 하는 성취에 따른 만족감이
조금 든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댈 때에는 대원간에 대화도 안 된다.
그저 묵묵히 걸을 뿐.
15:05 갈전곡봉(1,204m) 도착.
산림청의 이정표에는 구룡령까지의 거리를 3.4km, 2시간 소요된다고
쓰여 있다.힘든 오르막 길에서 가슴 가빴던 숨을 돌리고 센 바람 속에서 증명사진을 2장 찍었다.
박 공이 내리막 길을 걸을 때 왼쪽 다리 무릎관절 뒤 근육에 통증이
있다면서‘9시간 짜리 다리’라고 다리 탓을 한다. 무릎관절 보호대
(일명 백두대간)를 다음 종주 때에는 준비해야 하겠다.
15:15 갈전곡봉 출발.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속는 기분으로, 이 봉우리만 넘으면 바로 구룡령 휴게소이겠지 하는 기대감이 망가지는 마음으로 몇 개인지 기억해 내기도 싫은 산들,산들을 두 시간 남짓 넘고 넘으니 더 산이 안
보였다. 그 대신 휴게소가 내려다 보인다. 한 순간, 망망 대해에서
포구에 막 돌아 온 똑딱선 어부들처럼, 종일 황량한 큰 사막을 지나
오아시스에 막 도착한 대상들처럼 노곤한 안도감, 평온함 같은 그런
감정에 젖어 든다.
17:10 구룡령 휴게소 도착.
무쏘 2.9와 휴게소 사람들이 반긴다. 오늘의 종주 총 소요시간: 11시간.
정말 길고도 힘들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