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토반
강 문 석
일행이 타고 달리는 벤츠 승합차의 속도 지시계가 시속 190킬로미터를 넘어 200킬로미터 쪽으로 올라갈 무렵 조수석에서 운전자에게 말했다.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아우토반을 한 번 달려보면 어떨까?” 차량의 주행속도가 무제한이라는 아우토반. 하지만 독일의 고속도로에도 제한속도는 존재한다. 구간마다 우리나라처럼 제한속도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보름 동안 하루도 멈추지 않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유심히 살핀 가장 높은 제한속도는 시속 120킬로미터였다. 같은 도로를 달리는데도 독일 본토 사람과 외국인의 속도제한이 다른 것은 외국인은 이곳 지형에 익숙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1929년 쾰른과 본 구간에 처음 착공하여 3년 만에 개통한 세계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인 아우토반. 하지만 아우토반은 어느 특정지역 도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모든 고속도로에 다 들어있다. 그래서 구간별로 무제한속도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여행객 8명이라면 소집단인데 공교롭게도 자동차에 관한 한 전문가와 마니아가 함께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문가가 있어서 든든했다. 전문가란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차의 구조나 기능에 관한 공학적 기술로는 단연 국내 일인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차를 해외시장에 알리는데도 큰 몫을 했다.
그러고 자동차뿐 아니라 방산용 전차와 철도차량을 생산하는 분야까지 10년 넘게 대기업 CEO를 맡았었다. 그 덕분에 문외한인 나까지도 그 분야의 국제행사에 몇 차례 옵서버로 참석하여 지켜보았고 그의 실력을 믿기에 하는 말이다. 그날은 무슨 일로 그가 빠져서 우린 차가 얼마나 속도를 낼 수 있는가와 과속에서 차체의 흔들림을 보느라 가속페달을 한껏 밟아본 것이다. 만약 차를 세밀하게 잘 아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그렇게 달리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오토바이까지도 자주 등장하는 독일의 고속도로는 세계에서 도로망으로선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와 외견상 별반 다를 게 없다.
2개의 도로가 양쪽으로 갈라지며 도로중앙에 5미터 폭의 분리대를 설치하고 가장자리에 1미터 폭의 갓길을 둔 것까지도 우리와 비슷했다. 굳이 차이점을 들라면 대형차량을 빼곤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민영화와 함께 통행료 징수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그러고 잘사는 나라 독일이 고속도로상의 흠집을 마치 우리의 가난한 시절 구멍 난 옷에 헝겊을 오려붙이듯 그렇게 땜질로 보수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검절약정신이 몸에 밴 유럽의 중심국가 독일이 우러러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한 정신이 만들어낸 독일병정을 손가락질하는 우리 자신들을 이제 다시 돌아보며 제대로 평가해야 할 것 같다.
도로를 달리는 차량은 하나같이 깨끗했다. 우리나라처럼 대국에서 날아오는 황사먼지가 없는 것도 이유겠지만 부지런한 국민성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마치 기름을 발라놓은 듯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컨테이너 차량의 육중한 철제 적재함은 딱 한 대를 발견했다. 나머진 전부 상업광고를 새긴 비닐로 덮어서 시각적이나 정서적으로도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위험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사흘이 멀다 하고 보복운전으로 끔찍한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나라의 운전자들은 교도소에 잡아 가두기 전 독일의 아우토반을 먼저 견학시키면 어떨까 싶다. 1차선을 달리던 차량은 뒤에 따라붙는 차량이 있으면 무조건 비켜준다.
우리처럼 운전대 잡고 비상등으로 감사를 표시하는 난센스도 발견할 수 없다. 비상등 용도는 그러한데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자동차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나라이다 보니 수출용 신차를 가득 싣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송차량은 시시각각으로 눈에 띈다. 철도차량에 실은 수출용 차량도 띄엄띄엄 목격되는데 적재한 길이는 끝도 없었다. 여행일정 절반을 소화하고 있을 무렵 우리가 빌린 승합차의 계기판에 이해할 수 없는 시그널이 떴다. 자동모드로 달리면서 조작을 하지 않았는데도 순간순간 수동모드로 바뀌는 것이었다. 컴퓨터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세계 자동차기술의 자존심 벤츠 차량이다 보니 실망감은 더욱 컸다.
불안하여 다시 동종의 신차로 바꿨지만 허사였다. 여행 이틀을 남기고 프리드릭스하펜공항까지 찾아가 인수한 차량은 시동을 걸고 5분 후 똑같은 현상을 보였다. 자기들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타고 다닌다는 렌터카회사 직원의 말이 코미디로 들렸다. 불시 수동모드로 바뀌는 현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여행지를 돌면서 농담처럼 차량 마니아인 처남에게 "이번 기회에 독일에서 다른 것 살 것 없고 벤츠 한 대씩만 사가지고 가자"고 자주 말하면서 시시닥거렸다. 그런데 그 말이 쑥 들어가고 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국산차량을 자동차의 나라 독일의 고속도로상이나 휴게소 주차장에서 만나는 것은 감동이었다.
마치 오래 떠나있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르노삼성이나 쌍용차는 보이질 않고 현대기아차 뿐이었지만 그랬다. 자동차 생산능력과 나라의 자존심까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배기가스 문제로 한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힌 독일 차 폭스바겐이 여전히 유럽에선 강세다. 이제 자동차산업도 혼다나 미쓰비시 크라이슬러만 독자경영을 고수하고 나머진 최하 2개에서 최고 7개 회사까지 인수 합병하여 법인이름을 다시 붙였다. 폭스바겐이 든 유럽 최대의 자동차회사 VAG엔 아우디와 스코다 세아트 벤틀리 부가티 람보르기니 같은 명차들이 다 들어있다. 우리가 묵은 네덜란드 숙소에서 가까운 대형 아웃렛 매장을 찾았다.
우리처럼 해외에서 찾은 여행객들을 포함하여 엄청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단층으로 앉힌 매장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 매장 복판쯤 분수까지 있는 쉼터 목 좋은 곳에 미국산 전기차 테슬라 2대가 전시되어 있었다. 유럽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시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차의 외형은 품격이 느껴졌다. 보닛 속이 텅 비어 기형처럼 느껴지는데 턱없이 높은 가격에도 차량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많았다. 공항면세점보다도 더 다양한 물건을 싸게 판다는 아웃렛 매장에다 새로 나온 차량을 전시한 제작사의 세일즈 전략이 돋보였다. 그래도 여행을 마치면서 우리가 빌렸던 2대의 벤츠승합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주행 중 불시에 수동모드로 바뀌는 결함이 발견되긴 했지만 이역만리 코리아에서 찾은 일행에게 묵묵히 독일의 명승지와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스위스 룩셈부르크 리히터슈타인까지 두루 도는 5천 킬로미터를 무사하게 뛰어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속도위반으로 인한 범칙금 통지서는 연이어 날아들 것이고 그땐 혹사시킨 승합차도 다시 떠오를 것이다. 애써 좋은 추억만 간직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으며 루프트한자 트랩을 밟았다. 프랑크푸르트 서쪽하늘이 서서히 붉어질 무렵 항공기는 유럽대륙의 중심을 박차고 창공을 향해 힘차게 솟아 올랐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유럽투어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