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작품해설]
고향에 돌아왔지만 고향은 이미 그리워하던 옛날의 그 고향이 아님을 깨닫고 슬픔에 잠기는 고향 상실감을 노래하고 있는 정지용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해방 직후 유행가로 만들어져 널리 애창되기도 했던 이 시는, 후일 정지용이 월북 작가로 묶여진 관계로 독자들에게 잊혀져 있다가, 노래와 함께 최근에 다시 빛을 보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의 특징은 방임형 어미와 부정 종지법에서 드러난다. ‘고향에 돌아와도 – 고향은 아니러뇨’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등과 같이 방임형 종속적 연결 어미는 부정 종지법과 서로 호응되면서 상실의 비애 또는 좌절의 아픔을 선명하게 부각시켜 준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처럼 고향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심정이 드러나게 된다. 따뜻한 곳, 그립고 평화스러운 곳으로서의 고향은 다만 추억 속에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다. 게다가 현실 또한 안주할 수 없는 곳이므로 시적 화자의 미애와 좌절을 더욱 고조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일제 강점하의 고통 속에서는 그 어디를 가도 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로의 회상을 통해서만 정지용의 고향은 살아날 뿐이다. 따라서 정지용의 고향은 일제의 강점과 수탈로 인해 고통 받는 현실 속에서 그로 하여금 인간성 회복의 소망을 일깨워 주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특히 이 시는 구조적으로 첫 연과 끝 연에서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를 살리면서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의 표현에 의해 수미상관(首尾相關)의 수법으로 시상을 점층적으로 전개하여 고향 상실의 서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고향은 이미 고향이 아니건만 하늘만은 그대로인, 자연과 인간사의 대비를 통해 고향 상실의 허망함을 노래하고 있는 이 부분은, 두보의 시 「춘망(春望)」에서의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나라는 파괴되어도 산과 강은 남아 있고 / 봄이 성 안에 풀과 나무만 무성하구나)의 구절을 연상하게 해 준다.
[작가소개]
정지용(鄭芝溶)
1903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 휘문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 『카톨릭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 『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1950년 납북,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