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속속 등장, 제비꽃 ①
◀제비꽃 ◼조동진✕장필순 ◼장필순 ◼류(겨울 연가) ◼구본수✕이정권
◀제비꽃에 대하여 ◼강혜정(소프라노)
◀제비꽃 연가 ◼이해인 시
◀제비꽃이 핀 언덕에 ◼김정식 로제리오
◉지난주 춘분(春分)을 지나면서 길어진 낮이 실감 납니다.
저녁 7시가 돼도 날이 어두워지지 않을 만큼 해가 길어졌습니다.
해가 길어지면 숲속의 솔라(Solar)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태양에너지로 삶을 만들어 가는 숲속의 생명들은 하나둘씩 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지난 주말 산책길에인사를 건네는 봄꽃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위로 보면 생강나무 산수유와 개나리와 진달래 같은 꽃들입니다.
허리를 굽혀 아래로 보면 꽃다지와 냉이꽃, 제비꽃, 현호색, 같은 친구들이 눈을 맞추고 인사를 건넵니다.
그런데 대부분 지난해보다 인사가 좀 늦습니다.
짧게는 사흘 또는 나흘, 길게는 일주일 정도 늦습니다.
모두가 햇빛 탓입니다.
◉지난 주말부터 벚꽃 축제가 시작된 진해 군항제도 벚꽃이 10% 정도밖에 피지 않아
벚꽃 없는 벚꽃 축제가 됐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번 주에 열린다는 여의도 벚꽃 축제도 축제가 끝나는 다음날인 다음 달 3일쯤부터 벚꽃이 필 거라고 합니다.
비교적 따뜻한 초봄 날씨에 축제를 앞당겼지만 정작 꽃은 더 늦게 피는 착각 현상이 나타난 셈입니다.
사람들이 착각을 해놓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불평하는 모양이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늦겨울과 초봄에 눈과 비가 잦았습니다. 그래서 날씨는 비교적 포근했지만 봄이 돼서 깨어날 초목들이
햇빛 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일조시간이 부족하니 꽃이 일찍 필 리 없습니다.
여러 생명들이 태양에너지로 충분한 삶을 디자인하지 못해 꽃을 피우는 일이 그만큼 늦어졌습니다.
지난해에는 3월 20일에 만났던 제비꽃도 어제서야 겨우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다 만난 제비꽃 이야기로 이번 주를 시작합니다.
◉제비꽃은 이른 봄에 풀도 아직 나지 않은 메마른 풀밭이나 담장 아래서 연약해 보이는 가련한 모습으로 핍니다.
연약해 보이는 작은 풀꽃이지만 눈과 얼음이 뒤덮인 겨울의 땅에서 가장 먼저 경이로운 생명의 등장을
알리는 강인한 꽃이자 영광스러운 꽃입니다.
제비꽃은 북반구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오랜 세월 인간과 함께 살아온 친숙한 꽃이기도 합니다.
◉제비꽃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가수 조동진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됐습니다. 하지만 제비꽃이 피는 3월 말이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음유시인입니다.
그의 노래에는 소녀가 머리에 꽂은 ‘제비꽃’이 한차례 등장할 뿐이지만 사람들은 노래 자체를 ‘제비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조동진은 서른 여덟살에 ‘제비꽃’을 노래로 만들던 상황을 나중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직 찬바람이 남아 있는 봄바람 속에 흔들리는 제비꽃을 발견하게 되면 반가움과 함께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마치 꿈 많은 젊음이 갖는 절망감을 본 듯해서 더욱 그랬다’ 고 말했습니다.
1991년 그의 시집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를 펴내면서 제비꽃에 대해 설명한 말입니다.
◉조동진은 노래에 등장하는 작은 소녀는 작품 속의 두 여인을 모델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독서광이었던 조동진은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 부슈만과 프랑스의 슈발츠 바르트의
‘고독이라는 이름의 여인’의 혼혈 노예 솔리튜드가 그 모델이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두 여인 모두 절망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세상을 헤쳐간 주인공들입니다.
이 이야기를 한 다음 해 마흔다섯 살의 조동진이 스물아홉 살의 제자 같은 장필순과 듀엣으로 부르는 ‘제비꽃’부터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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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은 이 노래 속에 한 소녀의 성장 과정을 담았습니다.
노래의 연마다 웃음이 등장하지만 웃음의 결은 같지 않습니다. 첫 번째 웃음에는 꿈과 희망이,
두 번째 웃음에 슬픔과 좌절이, 세 번째 웃음에는 달관하는 긍정이 담겼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알고 살아가고 떠나가는 과정이 담겼습니다.
2017년 조동진은 ‘조동진의 꿈의 작업 2017’ 콘서트를 20여 일 남겨두고 지병으로 떠나갑니다.
물론 콘서트는 후배들이 추모의 마음을 담아서 예정대로 진행했습니다.
◉조동진이 떠나간 4년 뒤 50대 후반의 장필순은 스승처럼 여기던 조동진을 추모하며 ‘제비꽃’을 부릅니다.
그녀는 이 노래가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힘이 돼준 노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기타리스트 함춘호의 연주에 맞춰 부르는 그녀의 노래에는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잔잔한 소녀의 감성이 묻어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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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은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지혜와 자손을 널리 퍼뜨리기 위한
의지 등을 보면 결코 연약한 꽃이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제비꽃의 씨앗에 붙어 있는 ‘엘라이오솜’이란 물질을 활용한 생존전략만 봐도 그렇습니다.
젤리 같은 이 물질은 개미가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물질을 먹기 위해 개미는 제비꽃 씨앗을 통째로 제집으로 물고 갑니다.
덕분에 제비꽃 씨앗은 발 없이 멀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씨앗이 그냥 개미집으로 가지고 들어가면 싹을 틔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비꽃은 개미가 필요한 것이 엘라이오솜이지 씨앗이 아니기 때문에 씨앗은 집 밖에다 버릴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비꽃의 전략은 멋지게 성공합니다.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제비꽃을 만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제비꽃의 전략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꿀주머니와 긴 꽃 모양을 이용해 가루받이 파트너를 골라내는 사랑 작전도
멋지게 구사하기도 합니다.
그 꿀주머니가 오랑캐 머리 같다고 해서 ‘오랑캐꽃’이라는 다른 이름도 얻기도 했습니다.
이 꿀주머니를 찾는 곤충 가운데 파트너를 고르기 위한 장치가 바로 긴 꽃입니다.
꿀벌이 찾아와 머리를 내밀면 암술 부분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꽃가루가 꿀벌 머리에 떨어지게 됩니다.
◉조동진의 ‘제비꽃’은 2002년 한류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겨울 연가’에도 들어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첫사랑에 대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와 ‘제비꽃’의 이미지가 잘 맞았던 때문인지
당시 류(RYU)가 커버했던 노래가 컬러링 등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겨울 연가 OST로 들어 보는 류의 ‘제비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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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고 꿀벌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으면 제비꽃은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특수전략을 구사해 열매를 맺고 씨앗을 만들어 내는 일은 계속합니다.
꿀벌이 찾아오지 않으니 꽃을 피우지 않고 수술이 암술에 직접 닿게 하는 자립적인 방법으로 가루받이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꽃을 폐쇄화(閉鎖花)라 부릅니다.
그래서 제비꽃은 벌 나비가 찾아주지 않는 늦가을까지 씨앗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강인함을 갖추고 자손을 번식시키는 이 꽃을 누가 연약한 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남성 듀엣의 ‘제비꽃’을 다시 한번 들어 봅니다.
팬텀싱어 시즌 3에서 ‘연어장인’ 이정권과 베이스 구본수가 호흡을 맞춘 노래입니다.
두 사람 모두 결승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했지만 제비꽃 씨앗처럼 어디에선가 자리를 잡고
묵묵히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갈 음악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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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은 허리를 낮추고 눈을 맞추는 사람에게만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앉은뱅이 꽃이라는 이름도 얻었습니다.
난쟁이꽃, 땅꽃도 그래서 얻은 이름입니다.
그런 제비꽃이 자신을 아는 사람들을 위해 봄마다 꽃을 피워두고 간다는 안도현의 시에 붙인 노래를 들어봅니다.
‘제비꽃에 대하여’, 소프라노 강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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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긍정의 마음으로 제비꽃과 눈을 맞춘 이해인 수녀의 시 ‘제비꽃연가 ’를 만나봅니다.
새소리와 배경음악 Emotional Love Theme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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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시로 만든 노래들을 꾸준히 불러온 가톨릭 성가 가수의 자작곡 ‘제비꽃이 핀 언덕에’를 마무리 노래로 듣습니다.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았던 60대 후반의 김정식입니다.
영세명 로제리오인 그는 가톨릭신자와 대중 앞에서 노래 부르는 일을 오래 이어온 신앙음악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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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는 제비꽃은 무덤가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무덤가에서 제비꽃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나훈아의 노래 ‘테스형’의 가사 속에도 나옵니다.
◉무덤가에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꽃이 할미꽃입니다.
두 꽃이 무덤가에서 자주 보이는 것은 배수가 잘되는 양지바른 곳을 좋아한다는 공동의 특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 주말 제비꽃과 함께 활짝 핀 할미꽃을 만났습니다.
제비꽃도 반가웠지만 할미꽃도 더 반가웠습니다.
◉지난해 먼 고향에 있는 산소에서 몇 뿌리 캐다가 앞마당에 심어둔 할미꽃입니다.
그런데 다른 모양의 할미꽃이 지난주에 모두 활짝 피었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조상님들이 소식을 전하는 것 같아 더더욱 반가웠습니다.
아무래도 봄이 가기 전에 고향 산소를 한 번 다녀올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