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이별
박연숙
“마지막으로 고인에게 인사하세요.”
목사님의 말씀에 친구가 하얀 국화 송이를 남편의 관 위에 내려놓았다. 가족 친척들이 모두 헌화를 하고 나도 한 송이를 살포시 놓았다. 관위로 흙을 덮기 시작했다. 조용한 흐느낌들 사이로
“아빠,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어. 우리 거기서 만나!”
라고 외치는 딸의 애절한 울음이 문상객들의 마음에 파편이 되어 들어와 아프게 박힌다.
고등학교 동창 여섯 명이 수십 년 째 일 년에 두 번 모임을 가지고 있다. 각지에 흩어져 있어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항상 마음에 두고 그리워하는 친구들이다. 꿈 많고 예쁘던 여고생들이 이제는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되고 하나 둘 배우자를 떠나보내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 중 대구에 거주하는 친구가 세 명인데 셋은 수시로 만나고 더 가깝게 지낸다. 지금 힘들게 남편을 떠나보내고 있는 친구를 보니 여러 가지 생각으로 심경이 복잡하다.
친구의 남편은 명문학교 출신의 엘리트이다. 퇴직 후 여러 가지 일로 상실감이 크셨는지 우울증이 왔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해서 바깥출입은 전혀 하시지 않으셨다. 과거에 억매여서 현재와 혼돈을 종종 하셨다. 의사가 혼자는 두지 말라고 해서 친구가 24시간을 계속 함께 하고 주시해야하니 사생활도 없고 감옥이 따로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부부간에도 가끔 만나던 사이인지라 남편이 집에만 있으면 더 나빠진다고 여행을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다. 작년 7월에 가지 않으려는 분을 억지로 모시고 두 부부가 다낭엘 갔다. 다낭은 일정이 여유롭고 코스도 무난해서 노약자에게도 비교적 쉬운 여행지이다. 첫날은 처음 소풍을 가는 어린아이처럼 설레어 하셨다. 다리가 휘청거려 걸음이 불안정하고 체력이 달리셔서 힘들어 하셨지만 의외로 굉장히 즐거워하셨다. 평소엔 길을 걸을 때 혼자 앞서서 가던 분이 친구랑 손을 잡고 다니고 하트를 날리며 사진도 찍으셨다. 가벼운 농담도 하시고 안색이 밝으셨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다음 여행 일정을 빨리 정하라고 재촉도 하셨다.
여행을 계기로 바깥출입도 하시며 닫았던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열어 차도가 있다고 친구가 엄청 좋아했다. 아들 딸 손주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평소에 싫어하는 영화 관람도 친구의 뜻을 따라 입소문난 것은 거의 다 보았다고 했다. 옷을 사러가서 이 가게 저 가게 돌아다녀도 별말 않고 따라 다닌다고 했다. 친지들에게 안부전화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 또 여행가냐고 친구에게 물어보라고 해서 식사도 잘하시고 약도 꼬박꼬박 드시고 매일 걷기도 열심히 하면 친구에게 말하겠다고 했단다.
1월 초순경,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집에서 쓰러지셔서 뇌사 상태가 되어 응급실에 계시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올해 날씨는 별나게도 추웠다. 친구가 따뜻한 봄에라도 가시도록 해달라고 의사선생님께 말씀 드렸다. 생명의 경각을 다투는 환자도 제일 늦게까지 살아있는 기능이 귀라고 한다. 친구는 의식도 없는 남편에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요.’
‘친구ㅇㅇ이가 왔어요.’
‘ 당신 빨리 일어나라고 기도하네.’
‘ 얼른 일어나서 여행 가야지.’
눈물이 났다. 기분전환을 해주려고 시내로 나왔다. 평소 조용한 친구인데 가슴이 허한지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되풀이했다. 친구와 밥을 같이 먹고 차를 마시며 넋두리를 들어주는 것 밖에는 내가 할 일이 없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여행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사실은 다낭에 갔을 때 시장구경을 하는 일정이 있었다. 힘이 드신다고 집결지 옆 벤치에 앉아 있을 테니 우리끼리 다녀오라고 하셨다. 가이드에게 부탁을 하고 갔다 오니 사람이 없어졌다. 혼비백산하여 남편과 나, 친구, 가이드 두 사람이 화장실부터 시작해서 근방을 샅샅히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나 현지 가이드들끼리 연락을 주고받아 다른 팀의 차를 타고 이동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찾았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찾았으니 망정이지 못 찾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식은땀이 흘렀다. 패키지라 일정도 두 시간 정도 늦어져 일행들 에게도 죄송했다. 그런 일이 있고 보니 쉽게 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친구의 남편은 한 달여 뒤, 2월의 아주 추운 날 하늘나라로 가셨다. 차에서 내려 5분 정도 평편한 길을 걸으면 되고 주변 지형이 오목해서 찬바람은 막아 주고 햇볕이 아주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누우셨다.
친구의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 친구야 마지막 이별인데 오늘은 실컷 울어라. 그리고 내일부터는 울지 말고 씩씩하게 살자.”
돌아오는 차안에서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의 위로와 진정한 격려가 꼭 잡은 손으로 전해짐을 느낀다.
2018. 04, 01
첫댓글 마음이 찡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인생은 언젠가는 한번, 모든 사람들이 격어야할 운명인 것 같습니다. 친구와의 한층더
돈독한 우정으로 밝은 앞날을 열어 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친구 남편의 장례식에 가서 친구를 위로해 주셨군요! 요즈음은 오래 사는데 일찍 돌아가셔서 안타깝습니다. 가끔 친구와 만나서 말동무나 되어 주세요. 잘 읽었습니다.
옛 친구의 우정과 감동어린 글 입니디. 계속 좋은 관계로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하필 오늘 선생님께서 이 글을 올렸을까? 가슴이 피멍이 들도록 아픈 초상을 치루었습니다. 하나 뿐인 여동생이 경대의대를 장학생으로 나올 만큼 유능한 의사 딸이 금요일에 죽어 오늘 장례를 쳤답니다.45 살 너무도 아까운 나이 경대의대 교수인 남편, 둘 다 의사이면서 자기병은 왜 몰랐는지 전이성 골수암 말기까지 가도록 그렇게 몰랐을까? 발병한지 두 달 열흘만에 간 이질녀가 아까워 죽겠습니다. 모든 검사 결과를 본인이 판독을 하고 삶을 포기한 질녀가 성금요일낮 1시반에 죽어 부활날 장례를 치루었네요,하나 뿐인 동생 어미 잃은 외손자 둘을 안고 우는 모습 가슴이 터질것 같아 컴을 열어보니 여기에도 이별의 아픔이 있네요.
여고시절 만나 긴 세월 함께 우정을 나누시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슬픔과 감동이 배어있는 가슴 아린 글 잘 읽었습니다.
귀한 친구분의 가슴 아팠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가슴이 아프네요. 그런데 읽다보니 그 얘기가 꼭 남의 얘기 같이만 생각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건강할 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즐겁게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이별은 슬픈 것이지만 남의 일로 치부하게 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 주변의 일처럼 안타가움이 느껴집니다.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따스합니다. 수고했습니다.
평소에 글도 잘 쓰시지만 이번 친구의 남편 장례식과 외국여행을 통한 잔잔한 소회를 적은글이 가장 감동을 줍니다. 수필가로 경지에 도달하신것 같습니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시기 바랍니다.
최근 들어 가끔씩 친구의 부모님이라거나 친구의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게 됩니다. 어느 분의 소천이든 영면의 이별은 가슴 아프고 슬픈 일입니다. 글을 읽고 있는 객관적 독자의 입장에서도 가슴이 아픈데 당자자께서는 얼마나 막막하고 가슴아플지요. 그래도 좋은 친구의 우정이 큰 힘이 되어 드릴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