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흥사(慶興寺.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모골길 196-55(산전리 806))
경흥사(慶興寺)는 1637년(인조 15)에 창건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동학산(動鶴山)[603m] 기슭에 위치해 있다.
경흥사는 659년(무열왕 6)에 혜공화상(惠空和尙)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근거가 희박하며 1637년에 창건되었다.
1990년 10월 20일 경흥사 법당 해체 중 상량 도리 중앙부에서 한지(韓紙)로 만든 봉투 모양의 통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는 상량문 3건이 들어 있었다.
상량문은 ‘영좌 경산 남면 동학산 경흥사 삼창기(嶺左 慶山 南面 動鶴山 慶興寺 三創記)’, ‘숭정2년 정축6월일 경흥사 신창기(崇禎二年 丁丑六月日 慶興寺 新創記)’, ‘강희58년 기해2월일 법당 중수 이시창내증(康熙五十八年 己亥二月日 法堂 重修 而始創乃曾)’ 등 3개인데, 이 중 가장 빠른 신창기가 1637년에 작성된 것이다. 다만, 신창기의 ‘숭정 2년 정축’은 ‘숭덕(崇德) 2년 정축’의 오기이다. 따라서 경흥사는 1637년에 창건되어 1644년에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慶山慶興寺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을 봉안하였으며, 1719년(숙종 45)에 중창하고 1897년(광무 1)에 삼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퇴경당전서(退耕堂全書)』에는 김사숙(金士淑)에 의해 삼창되었다고 전한다.
1970년대에 대웅전[현 명부전]에 봉안되었던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개금불사(改金佛事) 하였으며, 1990년에 재윤(在閏)이 대웅전을 해체·복원하고 요사 1동을 보수하였다. 이때 새로 지은 대웅전이 1993년에 완공되어 현재의 명부전에 있던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대웅전으로 이전 및 봉안하였다.
1996년에 대웅전, 명부전, 요사 등 건물 5동을 단청하였으며, 대웅전에 봉안된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개금하였다.
경흥사에는 1,000여 명의 신도가 활동 중이며, 지역 포교에 힘쓰고 있다.
경흥사의 당우로는 대웅전(大雄殿)·명부전(冥府殿)·자미전(紫微殿)·독성전(獨聖殿)·산령각(山靈閣)·강학당(講學堂)·심우당(尋牛堂)·범종각·요사·종무소 등이 있는데, 중심 불전은 대웅전과 명부전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보물인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인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慶山 慶興寺所藏須彌壇部材)가 유존하고 있으며, 이 수미단에 석가모니불상이 주불로 지장보살상과 관세음보살상이 협시로 봉안되어 있다.
자미전과 독성전은 대웅전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 건물을 반으로 나누어 각각 1칸씩 사용하고 있다.
산령각은 대웅전 뒤편 자미전·독성전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데,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씩인 맞배지붕 구조이다.
강학당은 공부하는 공간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이며 대웅전 앞 명부전과 나란히 위치한다.
이 밖에도 승려들의 수행 공간인 심우당과 종각에 비해 종이 너무 커서 종각 안에 2개의 고주를 세워 종을 매달아 놓은 범종각,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 사찰의 업무 공간인 종무소, 6기의 조선 시대 종형 부도가 있는 부도전 등이 있다.
경흥사는 지정문화재로 보물 1점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점을 보유하고 있다. 보물 제1750호인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아미타여래불상이 주불로 좌우에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협시로 봉안되었다.
1970년대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개금불사 때 발견된 복장기(腹藏記)의 조성기문(造成記文)에 의하면, 1644년(인조 22)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존불은 결가부좌한 아미타불상으로 두발은 나발(螺髮)이고 둥그스름한 작은 육계(肉髻)가 있으며, 귀는 짧고 경직된 느낌을 주고 있으나 이목구비와 삼도(三道)를 갖춘 모양이 온화함을 주고 있다.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모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양쪽으로 내려진 머리카락은 두 귀를 감싸면서 어깨 위로 드리웠을 뿐 수식은 없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인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는 1644년에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봉안할 때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미단은 초월적인 수미산을 표현한 것으로, 경흥사에 남아 있는 일부의 수미단은 명부전이 대웅전으로 사용될 당시의 것이다.
수미단 전면은 가로 350㎝, 높이 20㎝이며, 좌우 측면은 120㎝이다.
일반적인 수미단의 구조나 크기로 볼 때 현존하는 부재는 원 수미단의 일부에 불과하다. 겨우 한 단 정도 남아있지만 수미단의 구성과 조각 수준이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한편, 부도전에는 조선 시대 부도 6기가 있는데, 1722년(경종 2)에 조성된 지월당혜휘대사(智月堂慧輝大師) 부도와 탑비, 해운당치흠대사(海雲堂致欽大師) 부도, 금구당선각대사(琴龜堂禪覺大師) 부도 등 3기는 주인이 확인된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慶山 慶興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보물. 경상북도 경산시 모골길 196-55 (남천면, 경흥사))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석가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복장발원문과 대좌 묵서명을 통해 사찰의 창건연기는 물론 1644년이라는 정확한 불상의 조성시기와 명확한 조성주체, 불상을 제작한 제작자 등을 알 수 있어 17세기 불상연구의 기준이 되는 자료이다.
특히 이 불상을 통해 17세기 대표적인 조각승인 청허(靑虛)가 전라도 금산사를 근거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는 17세기 초반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걸쳐 크게 활약한 조각승이다.
조각적인 경향에서도 양감이 절제된 단엄하면서도 고요한 상호, 당당한 신체비례, 강직한 직선위주의 선묘, 주름표현 등에서 1640년대 청헌(靑憲)이나 청허의 작품과 양식적으로 상통하고 있다.
이 삼존상은 17세기 중엽 경의 양식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고, 조각적, 종교적 완성도도 비교적 높을 뿐만 아니라 조각승 청허의 조각세계를 연대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출처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산전리 경흥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慶山慶興寺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은 경흥사 경내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이다.
조성 발원문에 따르면, 1635년부터 선승들이 동학산(動學山)[603m] 남쪽 기슭에 새로운 사찰을 창건하고자 하였고, 1644년(인조 22) 영규(靈圭)가 경흥사를 중건하였다고 한다. 같은 해 수화원 청허(淸虛)를 비롯하여 영색(英賾)·현욱(玄旭)·정혜(淨惠)·나흠(懶欽)·신웅(信雄)·영이(榮伊) 등 7명의 조각승이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제작하였다.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12년 2월 22일 보물로 승격되었다. 2014년 9월 1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에서 해지되었다.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좌상이 협시하고 있는 삼존불이다.
석가여래좌상은 높이 146㎝, 무릎 폭 98.3㎝, 좌협시보살상은 높이 135㎝, 무릎 폭 86.2㎝, 우협시보살상은 높이 133.5㎝, 무릎 폭 86.5㎝이다.
석가여래좌상은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은 변형 편단우견(偏袒右肩) 형식의 대의(大衣)에 항마촉지인을 결하였으며, 왼쪽 손의 엄지와 중지를 구부리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다.
두발은 나발(螺髮)이며 둥글고 작은 육계(肉髻)가 있다. 귀는 짧고 경직되어 보이나 이목구비와 삼도(三道)를 갖춘 모습은 온화한 느낌을 준다.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상은 모두 보관을 썼으며, 양쪽으로 내린 머리카락은 두 귀를 감싸며 어깨 위로 드리운다. 1970년대와 1996년에 개금하였다.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등신대(等身大)의 규격에 단정하면서 위엄 있는 모습이다. 석가여래좌상과 협시보살상은 전체적인 신체 비례 등이 매우 비슷하며 넓은 어깨와 무릎, 방형 얼굴, 작은 이목구비, 꽃잎 모양으로 접힌 승각기, 간결한 옷 주름 등의 특징을 보인다.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17세기 중엽의 양식과 특징을 반영하고 있고, 조각적·종교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또한 불상을 제작한 청허의 조각 세계를 연대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청허는 17세기 초엽 원오(元悟)와 각민(覺敏)의 차화승으로서 충청도, 전라도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불상의 조각 기술을 배웠다. 이후 1640년(인조 18) 거창 심우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제작에 수화승으로 등장하며 1644년(인조 22)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제작하고, 1645년(인조 23) 상주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을 제작하는 등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석가여래좌상은 높이 146㎝, 무릎 폭 98.3㎝, 좌협시보살상은 높이 135㎝, 무릎 폭 86.2㎝, 우협시보살상은 높이 133.5㎝, 무릎 폭 86.5㎝이다.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慶山 慶興寺 所藏 須彌壇 部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경상북도 경산시 모골길 196-55 (남천면))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산전리 경흥사 명부전에 있는 조선 후기 불단.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慶山慶興寺所藏須彌壇部材)는 불상을 봉안하는 조선 후기 불단佛壇)으로 초월적 세계인 수미산을 표현하고 있으며 조각 수법이 뛰어나다. 현재 일부가 남아 있다.
경흥사는 1637년(인조 15)에 창건되었고, 1644년 청허(淸虛) 등 7명의 조각승이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慶山慶興寺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을 제작하여 대웅전[현재의 명부전(冥府殿)]에 봉안하였는데, 이때 수미단도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는 경흥사 명부전에 위치하고 있다.
명부전 중앙 벽면 뒤에 붙여서 목재로 한 단을 쌓고 다시 그 위에 들여 한 단의 수미단을 두고 삼존불상을 봉안하였다.
명부전은 경흥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으로 현재의 대웅전이 건립되기 전까지 중심 불전이었다.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는 명부전이 대웅전으로 사용될 당시의 수미단 일부가 남은 것이다. 남아 있는 수미단의 크기는 길이 350㎝, 너비 120㎝, 높이 20㎝이다. 수미단의 전면은 4개의 석재조각판으로 이어져 있으며, 양쪽 측면에 석재조각판을 하나씩 부착해 놓았다.
양쪽 모서리는 작은 나무기둥을 반으로 나누어 조각한 것을 각진 부분에 부착하여 이음새를 매끄럽게 하였다.
수미단에 조각된 소재를 보면 게·물고기·개구리·도롱뇽 등의 동물과 연꽃·모란을 비롯한 식물, 용과 같은 상상의 동물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색감은 덧칠한 흔적이 없어 본래의 색이 잘 나타난다.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는 2009년 8월 31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5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삼존불좌상을 봉안하는 불단으로 쓰이고 있다.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는 17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반적인 수미단의 구조나 규모로 보아 원래 수미단의 일부에 불과하다. 비록 일부만 남아 있지만 수미단의 조각 기법이나 조각 면의 구성과 배치가 우수하고, 채색 또한 비교적 잘 남아 있기 때문에 경산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慶山環城寺大雄殿須彌壇)이나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銀海寺百興庵極樂殿須彌壇)과 같이 높은 수준의 불교 공예품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이중투각기법을 사용하여 조각한 기술은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17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수미단(須彌壇)은 현재 온전한 형태가 아니라 잔존 부재(部材)가 경흥사 명부전 수미단의 일부로 삽입되어 있는 상태이다.
일반적인 수미단의 구조나 규모로 볼 때 현존 부재는 원 수미단의 1/5 혹은 그 이하의 양으로 추정된다.
조각의 주요 소재로는 게, 물고기, 개구리, 도롱뇽 등의 동물들, 연꽃, 모란을 비롯한 식물들, 그리고 용과 기린 등 상상의 짐승들이 골고루 등장하고 있다.
경흥사 수미단 잔존 부재는 비록 잔존하는 양이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그 조각기법이나 솜씨, 조각면의 구성과 배치에 있어 매우 우수하고, 채색 또한 비교적 잘 남아 있어 높은 수준의 불교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출처 : 문화재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