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탐 크루즈가 그의 연인 페넬로페 크루즈와 방한했다. 바닐라 스카이라는 이름의 영화를
가지고.. 그는 이번 영화를 제리 맥과이어의 카메론 크로우 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기고 원작의 감
독인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에게 각본을 맡겼다. 최대한 원작을 살리면서 카메론 크로우 특유의
헐리웃 스타일로 변형시키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거기에 미션 임파서블2의 제작자로 나섰던
탐 크루즈가 제작을 맡으면서 헐리웃의 보기 편한 영화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더욱 짙어졌다.
그런데 의문점 한가지.. 그는 왜 이 영화를 리메이크 했을까? 단순히 원작의 영화가 너무 좋아서?
97년 제작된 영화를 굳이 헐리웃 스타일로 바꾸려 드는 이유는?
원작과 리메이크 작의 제목을 비교해 보자. [오픈 유어 아이즈]와 [바닐라 스카이].. 영화는 원작
리메이크작 구분 없이 처음과 끝장면은 동일하다. "눈을 떠라"라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이것은 영
화의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현실과 꿈, 환상을 구분짓기 위한 하나의 주문이다. 원작
에서는 그것을 살리기 위해 제목을 [오픈 유어 아이즈]로 한 반면 탐 크루즈는 [바닐라 스카이]라
고 바꾸었다. 리메이크작을 보면 원작에는 나오지도 않는 바닐라 스카이라는 그림이 한 폭 등장
한다. 이것은 마지막에 탐 크루즈가 하늘을 날며 현실로 돌아오는 것과 관련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그리 큰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솔직히 이 제목을 듣는 순간 그 누구라
도 탐 크루즈가 새 연인 페넬로페 크루즈와 함께 달콤한 로맨스 영화를 찍었구나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그러한 관객의 기대를 노린 상업적 수단이자 리메이크작에서 사랑을 주로 다루고 있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제 내용으로 들어가자. 솔직히 원작과 비교하여 리메이크작은 왜 굳이 돈을 들여가며 다시 만들
어야 했나.. 할 만큼 원작의 재해석이 가미되어 있지 않다. 다만 좀더 보기 쉬운 헐리우드 스타일로
변했다는 점과 영화 내에서의 초점의 변화만이 다를 뿐이다.
남자 주인공을 비교해 보자. 원작에서 주인공은 돈 많은 바람둥이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의 재산
의 배경이나 성격에 치중하기 보단 하나의 설정으로서 임무를 다한다. 그에 반해 리메이크작에선
주인공이 재벌의 아들로 그려지며 달콤한 로맨스를 그리는 멋진 남자 답게 자신의 친구나 가볍게
사귀는 여자에게 관대하고 유머 감각이 풍부하다. 소위 헐리우드에서 그리는 백마탄 왕자 스타일
에 가까운 것이다.
여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페넬로페 크루즈의 역을 알아보자. 우습게도 그녀는 원작과 리메이크작
모두 같은 역을 연기했는데 그 이미지의 차이가 크다. 원작에서의 그녀는 처음 주인공과 만나는
장면에서 조금 냉담하다. 그리 자주 웃지도 않고 주인공에게 약간의 경계심을 품고 있다. 그녀와
주인공이 연인처럼 그려지는 것은 서로 그림을 그리는 장면 이후이다. 그런데 리메이크작에선
그녀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유머감각이 있으며 발랄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이 두 명의 캐릭터를 조화시켜 영화 내용을 진행해 보자. 일단 파티 장면.. 유감스럽게도 내가 [바
닐라 스카이]의 앞 장면을 놓친 관계로 앞을 이야기하기란 힘들다. 파티에서 주인공은 여주인공
에게 반한다. 그는 바람둥이 기질이 있지만 그녀에게선 조금 다른 느낌을 받고 접근을 한다. 이 과
정에서 가볍게 사귀던 여자를 만나는데 그는 이 여자를 회피한다. 그녀에게서 벗어날 겸 좋은 핑
계로 접근도 할 겸 여자 주인공에게 도와달라고 하는데 원작에선 거의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이유가 반인 반면에 리메이크작에선 탐 크루즈가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없는데 그녀의 호감을 사
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으로 그려진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가는 달
콤한 사람임을 보이기 위한 것처럼..
그런 주인공에게 여자 주인공은 어느 정도 맞장구를 치지만 결코 그에게 쉽게 맘을 열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에게 먼저 접근했던 주인공의 친구를 신경쓰는 것이다. 그런 친구의 여자에게 접근하
는 주인공을 약간 석연찮게 생각했던 여자.. 그녀는 결국 집까지 주인공을 끌어들이게 되고 그곳
에서 어느 정도 마음을 열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 원작에 반해 리메이크작에선 여자와 주인
공이 처음부터 서로 눈 맞은 것으로 그려진다. 죄책감이란 없고 원작에서 그려지던 약간의 냉소도
없다. 그저 실실 웃으며 탐과 함께 달콤한 로맨스를 그린다.
사고를 겪은 후 주인공은 망가진 얼굴에 절망한다. [바닐라 스카이]를 본 사람들은 탐 크루즈의
잘 생긴 얼굴이 흉칙하게 일그러진 것에 놀랬겠지만 사실 원작의 주인공은 더 심하다. 그나마 탐
크루즈는 자신의 얼굴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는지 반쯤 뭉그러트렸다. 원작의 주인공은
거의 괴물 수준이다. 그런 주인공은 자신의 연인을 찾아간다. 원작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선뜻 따
뜻하게 대해주지 못한다. 그를 회피하는 듯 하며 어쩔 수 없이 만나준다. 그는 그런 여자의 태도가
변했음을 알고 분노하고 괴로워한다. 반면에 바닐라 스카이는 어떤가.. 일그러진 탐 크루즈가 찾
아오자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볼에 키스를 해준다. 서슴없이 만날 것을 약속까지 한다. 다
만 그녀가 그를 조금 석연찮게 생각한다는 것은 친구의 입을 통해서이다. 그녀의 행동이나 말을
보면 전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듯 하다. 다만 탐은 스스로의 모습에 좌절하여 화를 내고
오버를 할 뿐.. 그녀는 나중에 얼굴이 어두워지는데 그것은 탐의 그러한 모습 때문이다. 원작과
달리 더없이 순수하고 착한 천사로 그려진다. 스타는 이미지로 먹고 산다는 것을 탐 크루즈는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녀의 새 연인을 착하기만 한 좋은 여자로 그리기에 힘쓰고 있다.
그의 얼굴을 고칠 수 없다는 사실에 주인공은 더 좌절한다. 돈만 내세워 어떻게든 해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여기서도 헐리우드적 스타일이 드러나는데 원작에서는 의학의 한계를 인정하라
는 식으로 말한다. 의학과 기적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에 반면 리메이크작은? 헐리우드의 영화를
보면 종종 의사나 경찰 등을 무능하게 그린다. 왠지 속터지게 하고 그저 이론에만 충실하며 약간
어리숙한 것이 주인공에게 한 소리 당하면 관객들은 답답함을 해소하게 된다. 리메이크작에서도
그러하다. [바닐라 스카이]의 의사들은 의학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답답한 소리를 해댄다. 여기
에 탐 크루즈는 노발대발 하고 우리는 그 모습에서 약간의 통쾌함을 느낀다.
탐 크루즈는 환상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고치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행복한 시간
을 갖게 된다. 여기서 자신의 얼굴과 망가진 얼굴을 혼동하고 페넬로페 크루즈와 자신을 사랑했
던 여자를 헷갈리게 되는데 여기서 이 주인공을 사랑했던 여자를 그리는데 차이를 드러낸다.
원작에서는 그녀의 이미지는 고독하다. 주인공의 가벼운 사랑 놀음의 희생양이 되어 슬픔에 젖
어 있다. 파티에서 주인공이 페넬로페 크루즈에게 스토커가 있다고 도망쳐야 한다고 할 때 페넬
로페 크루즈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슬프다고 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그녀와 페넬로페 크루즈를
혼동했을 때에 나쁜 이미지라기 보다는 얼굴만 다른 사랑하는 여자로 그려진다. 반면 [바닐라 스
카이]에서 스토커 (카메론 디아즈)는 나쁜 악녀처럼 그려진다. 파티장에서도 슬픔 보다는 분노
와 증오에 차 있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카메론 디아즈로 변한 순간에도 그녀의 얼굴은 사랑하는
사람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반쯤 미쳐버린 악녀의 얼굴이다. 마치 너무도 사랑하는 두 사람을
갈라놓는 싸이코처럼.. 그러한 설정은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이쯤에서 그의 친구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원작에서 그의 친구는 주인공을 질투하면서
도 어쩔 수 없이 비위를 맞추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약간 냉소하면서도 억울함을 꼭 참는다. 사
랑하는 페넬로페 크루즈를 주인공에게 양보(?)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나 뭐든 갖고 있는
주인공에게 컴플렉스를 느끼는 사람이다. 반면 리메이크작에선 조금 더 편한 헐리우드 스타일의
사람이다. 주인공 비위를 잘 맞추고 초반만 보면 컴플렉스를 느끼는 사람이라기 보단 으례 그렇
듯 주위에서 주인공을 돕고 그를 위해 희생하는 보조 역할을 하고 있다. 나중에는 원작의 흐름상
그를 조금 나쁘게 그려버렸지만 이미 캐릭터는 확 바뀌었다. 그래서 환상 속에서 그가 주인공을
내팽겨치는 장면이 그리도 어색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결론 부분.. 리메이크작은 보기 쉬운 스타일로 바뀌어 원작에서 주인공이 진실을 찾아가
는 장면을 단순하게 압축시켜 버렸다. 의사와의 상담도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으며 어둡고 침침
하고 좁은 이미지의 병원은 세련되고 넓으며 환하다. 의사도 그를 이끌기 보다는 단순하게 스토
리 진행을 위한 질문만 던진다. 마지막에 옥상에서 진실을 알고 현실로 돌아가려는 순간 그는
많은 것을 깨닫고 옥상에서 떨어진다. 리메이크 작에선 이러한 원작에 조금 더 살을 붙였는데
주인공이 떨어지기 전에 사랑하는 페넬로페 크루즈를 보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것이다. 비록 환
상이었지만 진실한 사랑을 느꼈다느니 어쩌느니 하며 달콤하게 키스를 하고 찬란한 햇빛을 뒤
로 뛰어내린다. 더불어 행복에 대한 그럴듯한 철학적 질문도 하나 던지면서..
자.. 결론을 이야기 하자. 혹시 [바닐라 스카이]를 본 사람 중에 내가 너무 영화를 비판하는 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그렇다면 원작을 한 번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원작에서 알
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영화 자체 내에서 하나의 작품성을 높이는데 주력하면서 주인공의 상
황과 심리적인 표현, 그리고 진실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에 반해
[바닐라 스카이]는 그런 영화를 좀더 밝고 세련되게 바꾸면서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나 진실을
찾는 과정보다는 그러한 격동 속에서의 사랑에 좀더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한 특성 때문에 원작
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애매모호함만 남았다. 그저 흐름과 아이디어 스토리만 따왔을 뿐 완전히
탐 크루즈와 페넬로페 크루즈의 사랑 이야기인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도 드러나듯 환상과 현실
을 오가며 사랑한 사람.. 비록 그 사이에 나쁜 질투의 악녀가 껴들고 했어도 언제나 착하게 나만을
바라봐 준 사람.. 내가 얼굴이 망가져도 어떠한 실의에 빠져도 옆에 있어준 천사와의 사랑이다.
한마디로 이 [바닐라 스카이]를 평하자면
"탐 크루즈의 헐리우드로 치장한 자신만의 파티"
이다. 얼마 전 그는 니콜 키드먼과 이혼했다. 그에 대한 여러 여론이 있었고 그 중에는 비난적
목소리도 있었다. 동시에 그가 새 연인을 선보이면서 주목을 이끌었고 이혼한지 얼마 안되었는
데 벌써 새 연인과 결혼까지 하기로 한 그에 대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영화가 이 [바닐라 스
카이]가 아닐까.. 그는 이 영화로 많은 관객들에게 보시오.. 나와 이 여자는 이렇게 환상과 현
실을 오가면서도 진실된 사랑을 했소.. 이 여자는 너무도 착한 여자요.. 내가 흉칙하게 변했는데
도 나를 사랑해 주었소.. 우리의 사랑이 너무 아름답지 않소? 이제 그만 우리의 사랑을 축복해
주시오.. 라고 떠드는 것 같다. (그럼 악녀는 니콜 키드먼인가?)
그가 그 동안 헐리우드에서 연기하면서 배운 스타의 이미지에 대한 치밀한 치장이 아닐런지..
[바닐라 스카이]와 [오픈 유어 아이즈]는 확실히 다르다. 난 탐 크루즈가 좋은 영화를 이렇게
바꿔버린 사실에 화가 난다. 극장을 나올 때도 짜증만 났다. 그들의 사랑을 달콤하게만 그린 바
닐라 스카이.. 내가 이 영화에 감사한다면 그 덕에 [오픈 유어 아이즈]라는 멋진 영화를 보게 되
었고 그 덕에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라는 감독을 알게 되었으며 전부터 기대를 하고 있었던
디 아더스(The Others)에 대한 기대가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디 아더스는 알레한드로아메나
바르가 감독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엔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했군..)
원작의 이미지가 퇴색된 리메이크작을 헐리우드 식으로 훌륭히 치장해낸 카메론 크로우 감독과
교묘히 이용한 제작자 탐 크루즈의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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