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일진회(一進會)의 별동대인 무쥬(武中)의 수장(首將)인 미우라(三浦)
를 호출했다.
무쥬는 일진회가 일본 내의 무술 고수들을 초빙하여 별도 구성한 일종의 전문가 집단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인 친일파인 송병준 등이 구성한 일진회(一進會)와는 별개로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민간무술인 그룹을 구성토록 미우라에게 지시하였고 그 결과
이미 30여명 이상의 고수(高手)들이 지난 수년간 조선 땅에서 활동해 오고 있었다.
이 조직은 고종(高宗)31년(1894) 갑오개혁(甲午改革)때부터 주로 조선내의 무술인 제거에
심혈을 기울였고 그 결과 그들이 활동을 개시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1905년경에 이미
한성(漢城)내에서 태껸 고수들과 조선검을 비롯한 어지간한 전통무예의 고수들은
자취조차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무쥬는 그 다음해인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조선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하여 일찌감치 본국인 일본으로 소환당하기까지 한 터였다.
그렇지만 조선 병탄(倂呑)을 서두른 이토 히로부미는 미우라를 다시 살려내어 남아있는
조선 내 무술인의 삭근(削根)을 서두르고 있는 중이었다.
문제는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 다수의 고수들이 의병(義兵)으로, 혹은 아예 산간(山間)
으로 도망쳤거나 또는 중국 땅으로 발걸음을 넘긴 이들이 많아진데 있었다.
지난 몇 해 동안 무쥬의 활동은 그런 여건들 때문에 이토통감이 바라는 만큼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다고 활동을 멈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기예를 가진 자들 가운데서 잠재적으로 반일본활동을 할 우려가 있다고 여겨지는
자가 가려지면 무쥬는 조용히 그들을 처리하였다. 단순히 사고사로 위장하거나 아니면
일본에서 은밀히 수송해온 각종 약품들로 자연사한 것으로 만드는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
그런 활동 가운데서도 이토가 특별히 관심을 가진 부분은 바로 조선민족이 가진
무풍(武風)을 잠재우는 공작이다. 나이를 먹어 가면 갈수록 이 민족을 다스리는데 있어
장기적으로 뿌리를 자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강해지고 있었다.
이토가 미우라에게 말했다. 카랑한 그의 목소리에 평소보다 살기(殺氣)가 진하게 베여
있었다.
“미우라, 자넨 어찌 보나. 조선에서 가장 깊은 뿌리를 가진 검가(劍家)를 어디라고 생각
하는가?”
“통감각하. 조선은 일본과 달라 가문(家門)으로 계승된 검가(劍家)보다는 야초가(野草家)
들이 더 무섭습니다.”
이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미우라가 대답했다. 이토는 미우라의
이런 버릇을 익히 알고 있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말을 계속해보라는 뜻이었다.
“조선은 검객(劍客)이 수법을 전할 때, 은밀히 제자를 구하고 그 제자 또한 가급적
자기의 바탕수를 내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조선의 최고수를
가리기란 몹시 힘들다고 판단됩니다. 그렇지만 지난 수년간 탐문(探問)해본 결과,
윤석생(尹石生)이란 인물이 수십 년 동안 조선 제일검객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 무쥬는
이미 그의 소재(所在)를 파악해둔 상태입니다.”
“그래. 그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미우라의 대답에 약간은 만족한 듯 이토는 가볍게 웃음을 띠며 물었다.
“지난 이십여 년 간 그와 검을 나누어 본 사람이 드뭅니다만, 그 이전의 위세는 대단했다
합니다. 몇 년 전 저희 무쥬의 일곱 명을 희생하며 겨우 제거했던 김창희도 윤석생의 몇
수 아래일 정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호오! 그 정도란 말이지. 그렇지만 뭔가 약점이 있을 것 아닌가. 이번에도 그만한
희생을 치러야 한다면 이건 큰 문제지. 없앨 수 있겠는가? 아참, 형식은 갖추어야 되네.
정식 비무를 한 것으로 하란 말이지. 그만한 사람이라면 조선인의 기(氣)를 꺾는데는
그만이니 말이야. 누굴 보낼 건가, 자네가 직접 갈 건가?”
이토가 이처럼 다그치듯 말하는 것은 그만큼 흥미를 느꼈다는 표시임을 미우라는 잘 알고
있었다. 약간 뜸을 들이듯 고개를 잠시 떨군 채 있던 미우라가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미시마(三島)를 보낼까 합니다.”
“안돼.”
미우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토의 입에서 외마디 답변이 나왔다.
“미시마는 안돼. 아직 어려. 좀더 경험이 필요해”
이토가 아예 외면하듯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의 말투에 진한 우려와
애정이 배여 있었다.
“각하!”
미우라는 이토의 이런 감정을 이해하는 듯 조용하면서도 단호히 이토를 불렀다.
“미시마 이외는 일대일의 비무에서 윤석생을 감당할 검사(劍士)는 없습니다.
게다가 미시마는 젊고 윤석생은 벌써 칠순 노인입니다. 정식 비무를 하더라도 저희에게
승산이 80입니다.”
“80…”
이토는 그 숫자를 천천히 되씹듯 중얼거렸다.
“80이라는 말이지!”
그는 좀처럼 하지 않던 습관인 말을 두서너 번 되씹었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윤석생이 칠순이라 했지. 그럼 미시마와 비무를 하기 전에 다른 몇 사람이 힘을 좀
빼주면 어떻겠나? 자넨 나머지 20에 대한 대책은 있는 건가? 그럴 리 없겠지만
혹 미시마가 진다면 어떡하겠나?”
이토의 말은 왠지 공허하게 들렸다. 그도 이미 미시마라는 카드에 대한 결정에 동의하고서
걱정스러워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 것뿐이었다.
미우라가 결론을 내리듯 나지막이 이토에게 말을 건네었다.
“미시마는 우리 대일본제국의 최고수입니다. 이미 그의 유산검(流散劍)은 적수가
없습니다. 나머지 20의 확률도 최악의 경우 무승부의 경우일 뿐입니다.
이를테면 양패구상일 때를 의미합니다. 미시마의 손에 조선 최고 검객인 윤석생의 목숨이
끊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각하의 기우는 단지 기우일 뿐입니다.”
이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는 한 미시마는 최강임에 틀림없다. 일본에 남아서 보다 높은 경지의 검을
수련하겠다는 그를 설득하여 조선에 데려온 것도 이토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토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 하고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조선 전체의
기세를 확실히 꺾어야한다. 그리고 폭풍처럼 여세를 몰아 조선을 병탄(倂呑)하려는
계획을 빠르게 마무리 지을 때이다.
이토는 복잡한 생각을 간단하고 단순하게 하려는 듯 손을 크게 앞으로 휘저었다.
그가 결정을 내렸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미우라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빙긋 웃고 있었다.
이젠 그의 차례가 된 셈이었다.
3.
술시(戌時)경, 석생은 진솔산 중턱을 오르고 있었다.
오른편 구비를 돌면 예전 절터였던 곳에 열 마장 정도의 공터가 있어 수련 터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주변 소나무 가지에 옷가지를 걸쳐 놓고 나검무(裸劍舞)를 한바탕
추고나면 한 겨울이라도 온몸에 땀이 흥건히 배여 흘러 내렸다.
수련검을 왼손에 들고 석생은 가급적 작은 호보(虎步)로 걸었다. 밤의 산길이라 바닥을
가늠하며 걷기도 해야겠지만 그보다는 다른 짐승들을 깨우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가 수련할 때면 산의 새들이나 토끼, 심지어 멧돼지들까지도 후다닥 피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었다. 석생은 산의 주인인 그들을 경동(警動)시키는 자신에게 우선 주의령을
내린 셈이었다.
일전에는 놀란 멧돼지 암놈이 난데없이 석생을 공격해와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석생이 먼저 눈치를 채어 그 놈을 해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피하지 않고 막무가내
덤벼드는 놈을 제압하려면 부득이 칼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산에서는 종종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생겼다.
석생의 호보는 이미 체술(體術)의 극치에 달해있었다. 일흔 나이의 가벼운 몸뚱아리가
사뿐히 걷는 학(鶴)의 걸음새로 호랑이의 여유로운 발걸음을 디디고 있으니 마치 발아래
겹겹이 두꺼운 천이 두텁게 깔린 듯 미약한 소리조차 잘 나지를 않았던 것이다.
가끔씩 가을의 말라버린 나뭇잎이나 작은 가지들이 밟히는 때에도 툭탁대는 소리보다는
지그시 소리가 눌러지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공터에 도착한 석생은 먼저 진솔산의 신령(神靈)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산(山)을 빌어 자신이 수련을 하는 입장이니 당연히 주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가끔씩은 술과 안주를 가져와 대접하기도 했다. 물론 음식은
산짐승이나 개미, 곤충들이 먹겠지만 그것은 산주인(山主人)이 집안의 다른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라 여겼다.
수련검을 내려놓고 천천히 윗도리를 벗고 아랫도리마저 벗고 나자 석생은 이마에 질끈
동여맨 머리띠만 남은 모습이 되었다. 고개를 숙여 칼을 집어 들었다. 석생은 스승이
남겨주신 칼인 서명(瑞名)은 밀문에 남겨두고 항상 수련검을 가지고 움직였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검(劍)의 진세(眞勢)를 펼칠 때 미세한 차이를 느끼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미약한 것이어서 석생은 오히려 오랜 기간 손에 익은 수련검이 훨씬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진검(眞劍) 비무가 아니라면 수련검이 서명에 미치지 못할
바가 없었다.
격중(擊重)의 본세는 몸과 칼이 하나이게 하는 수법이다.
검(劍)은 정확하고 빠르고 힘 있게 원하는 곳을 장악함에 그 수법의 기본을 둔다.
그런 점에서 격중은 연검(練劍)의 기초이면서도 가장 진의(眞意)를 체득하기 어려운
관문에 속했다.
검이 힘이 있으려면 무게가 생겨야 한다.
검의 장단(長短)이나 검신(劍身)의 폭(幅)이 문제가 아니다. 검이 저 홀로 움직이지
못하는 뜻은 무게를 쥔 자(者)가 그것을 실어야함을 의미한다. 곧 검사(劍士)의 마음의
무게와 놀림이 합치될 때, 검은 무거워지는 것이다.
석생은 흔들림의 검극(劍隙)마저 없이 느린 상하의 직선을 그렸다. 너무 느려 곁의
사람이 지켜보고 있더라도 칼이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여길 정도였다. 분명 검은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검은 윗자리에 섰고, 다시 내려오기를 원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석생의 이마에 땀이 배여 나오기 시작했고 등줄기에 충혈(沖血)이
달아올랐다.
검은 맨 처음의 하단세로 돌아왔다. 진정한 격중의 세(勢)를 느끼려면 이 동작을 종일에
걸쳐하고 또한 일천일을 해야만 한다. 하루에 한 차례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검에는
차갑고 뜨거운 기운이 함께 존재한다. 느림에서 나오는 깊은 무거움은 우리 옛검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했다. 석생은 근기(根氣)가 남달라 격중의 수법에서 많은 심득(心得)을
깨우쳤다.
그의 검을 사람들이 돌처럼 무겁다고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석생은 스승의 그 말, 천일(千日)수련을 충실히 따랐다. 삼년(三年)에 걸쳐 오로지 격중,
이 한 수법에만 골몰하였고 연행(練行)을 마무리 하던 날, 스승의 앞에서 그가 창안한
석룡검(石龍劍)을 초연(初演)했다.
스승은 석생의 검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양수(讓水)할 줄 알아야 하느니!”
스승은 그의 검이 너무 많은 심득을 받아들여 난삽해질 것을 경계하였다. 다기망양(多岐
亡羊)이라. 학문의 길이 다방면으로 가리어져 오히려 진리를 찾기 어렵게 되는 것처럼
스승은 석생에게 다시 둔(鈍)함을 요구했던 것이다. 석생은 결국에는 스승의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지금도 초심(初心)에서 격중의 본세수련을 하루라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격중(擊重)이 무거움을 찾는 수련이라면 은검(隱劍)은 빠름의 극치를 찾는 본세이다.
나의 울두리 내에서 모든 방위각(方位角)을 정하고서 가장 빠른 검(劍)의 각도를 취하는
것이다. 각(角)들에는 수각(守角), 대각(對角)등이 있어 검의 흐름선을 지켜준다.
석생은 늘 격중을 먼저 수련하고 은검으로 넘어갔는데 그 사이 가볍게 겹보 등의 체술을
간간히 섞기도 하였다. 백여 보의 겹보 디딤을 하다가 석생은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산 아래에서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산을 오를 이는 마을 사람 중에는 없다고 판단해보면 이 걸음 소리는 결코 좋은 일이
못되었다. 게다가 한참을 주의를 기울여 듣고 보니 발자국 소리로 미루어 세 사람이었고
걸음새도 가볍기 그지없었다.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온다는 것만으로도 선자불래(善者不來)
임은 분명하였다.
그들이 누군가이기 보다는 선두에 선 자의 발걸음이 무척 날렵함에 신경이 쓰였다.
일정한 보폭, 똑같은 강도의 발 디딤새, 흔들리지 않는 몸, 이것은 고도(高度)의 수련자의
모양새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 밤, 산길에서 이 정도라면…. 석생은 가볍게 긴장하며
몸을 떨쳤다. 밤의 산중에서 만나는 가장 두려운 짐승은 역시 인간뿐이다. 다른 짐승은
밤이 되면 자신들의 터 밭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공격을 않지만,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거나
혹은 아예 목적을 가지고 캄캄한 산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 자들은 분명
의도된 걸음을 보이고 있다고 봐야겠지. 갑자기 괜스레 호승심이 이는 것을 꾹 누르며
숨을 골랐다.
서두르지 않고 옷을 챙겨 입은 석생은 검을 가슴에 품고 공터 위쪽의 소나무 아래에
정좌(正坐)하였다. 어차피 나를 찾아온 자들이라면 기다리기엔 여기가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 분 여가 지나지 않아 공터에는 세 사람이 나타났다.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칼을 가졌고 게다가 일인(日人) 특유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뒤쪽에선 두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사람을 찾는 듯하자 중간의 인물이 가볍게 제지를
했다. 그리고는 품자(品字)를 그리며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석생은 그들의 모습을 쭉 지켜보았다. 이들이 어느 조직에 속해 있다는 사실과 중간에
선 저 사내는 자신에 비해 결코 하수(下手)가 아니라는 판단이 쉽게 들었다. 아마도 그는
여기가 나의 수련터임도 알고 왔을 것이고, 이미 집에도 들러 내가 없음도 확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석생은 이들을 정중히 마중하고픈 마음이 일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무어라 말하기 전에는 먼저 움직이지는 않겠노라 생각하며 석생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