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와 나이 터울이 4~5세씩 나는 아이 셋이 공유하는 232㎡ 크기의 아파트. 다소 촌스럽고 진부하게 느껴지던 기존 인테리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은주 실장에 의해 심플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가족 구성원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공간마다 각기 다른 마일드한 톤의 컬러를 사용하고 맞춤 가구를 적절히 배치해 둘러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했던 집이다.
에디터 신혜원 | 포토그래퍼 문성진
거실과 연결되는 그레이 컬러와 산뜻한 스카이블루 컬러의 글라스 패널이 돋보이는 부엌 겸 다이닝룸. 디자이너는 이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레이아웃만 10번 정도 바꿀 만큼 신경을 많이 쓴 곳이라고 소개했다. 그 결과 깔끔한 살림 솜씨를 지닌 집주인의 성향을 잘 반영해 수납은 보이는 수납이 아닌 철저히 감추는 수납법을 선택했고 동선을 줄이는 등 사용하기에도 편리한 공간으로 완성시켰다. 특히 집주인은 워낙 많은 그릇과 소품을 갖고 있어 부엌에도 충분한 수납공간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부엌 곳곳에 수납장을 만들어 두었다.
그중 왼쪽 하이글로시 도장된 빌트인 장은 두 칸은 수납장으로, 그 외 부분은 빌트인 냉장고와 냉동고, 김치냉장고다. 이 장에 가려진 뒤쪽 부분은 소형 가전을 수납,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했고, 수전이 설치된 벽면 일부도 수납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싱크대 상부장과 하부장은 물론 아일랜드 아랫부분, 아일랜드와 ㄱ자로 연결되는 가구 모두 수납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나 정수기, 세탁기 등 보기 좋지 않은 전자제품은 모두 부엌과 연결되는 다용도실에 설치했다. 식탁은 아일랜드에 연결되도록 맞춤 제작한 것이며 인출식으로 40cm 정도 확장도 가능하다.
한참 유행 지난 체리 우드 컬러의 마감재나 부담스러운 대리석 아트월과 대리석으로 된 클래식한 기둥이 있는 집이라면 아무리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아파트라 해도 리노베이션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아이가 여럿 있는 집인 경우에는 아이들의 취향을 반영한 방을 하나씩 마련해주어야 하니 리노베이션을 할 때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이 집이 바로 그런 경우다. 지어진 지 2년 정도 되는 아파트로 이사를 계획하면서 집주인은 자신의 취향과 트렌드와는 영 거리가 먼 이 집을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이 차이가 4~5세씩 나는 딸 둘과 아들 하나가 있어 방 4개는 부부 침실과 세 아이의 방으로 꾸며야 했다.
이 집의 리노베이션을 맡은 정은주 실장은 전반적으로 심플하고 깔끔한 인상을 주면서도 차가워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집주인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고 한다. 마이너스 몰딩 처리와 벽지가 아닌 페인팅 마감을 선택해 미니멀한 공간이 되도록 했고 마일드한 컬러의 페인트를 선택해 작지 않은 평형이지만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했다.
페인트 컬러를 무채색이 아닌 따뜻하고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것으로 선택해 편안한 인상을 주면서 방마다 다른 컬러를 시공해 방 주인의 취향이 드러날 수 있도록 했다. 가벽과 빌트인 가구를 이용해 공간에 리듬감을 주었고 집 안 곳곳에 수납을 위한 숨은 공간을 마련하는 등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집주인 모두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집이다.
세련된 그레이 컬러가 돋보이는 거실. 대리석 아트월과 기둥, 체리목 컬러의 창틀과 바닥을 갖고 있던 기존 거실의 모습은 완벽히 자취를 감췄다. 아트월이 있던 부분은 대리석을 모두 떼어내고 빌트인 책장을 맞춤 제작해 넣었고 창틀도 그레이 컬러로 덧입혀 한결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리고 두 면 가득 창이 있어 채광과 환기에는 더없이 좋았지만 오피스처럼 딱딱하고 휑한 느낌이 있어 한쪽에 가벽을 세워 이를 보완했다.
이 가벽은 거실을 좀더 리듬감 있는 구조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이 부분에 손님 접대를 위한 기다란 식탁을 두어 자연스럽게 거실과 섹션 구분 역할도 한다. 천장은 전체적으로 천고를 조금 높였고 천장 가장자리에만 패널을 덧대 단조로움을 피하면서 안쪽에 조명을 설치해 간접조명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벽면 한쪽을 가득 메운 빌트인 책장은 기존에 갖고 있는 TV나 AV기기, 책과 CD 사이즈에 맞게 맞춤 제작한 것으로 벽면 컬러와 연결되는 그레이 컬러와 바닥재와 어울리는 내추럴한 우드 슬라이딩 도어, 글라스 마감한 하늘색 서랍을 매치해 디자인과 기능을 모두 겸비했다. 전반적으로 밝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거실은 중앙의 다크한 컬러 소파와 테이블이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그레이와 스카이블루 컬러, 포인트 컬러로 레드 컬러를 사용한 부부 침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서재를 따로 마련할 공간이 없어 부부 침실에 서재를 겸할 수 있도록 했다. 침대는 이전에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두었고 벽면에 침대 스커트와 같은 컬러의 패브릭으로 커버링한 패널을 설치해 헤드보드 역할을 하도록 했다. 빌트인 AV장을 비롯해 책상과 책꽂이, 수납함 등은 모두 맞춤 제작한 것으로 예쁘게 감추는 수납이 가능한 디자인과 넉넉한 수납공간이 특징이다. 특히 책상 옆 서랍장은 한정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담긴 것으로 위로 올려 열면 화장대로 사용할 수 있다.
블루를 포인트 컬러로 사용한 개구쟁이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들 방이다. 이 집에서 가장 작은 방에 꾸몄기 때문에 수납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방 곳곳에 수납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책꽂이 옆면 벽에는 화이트 보드를 겸하는 수납장을 만들어 설치했고 창 아래와 옆쪽 벽에도 수납공간을 만드는 등 알차게 수납한 것이 눈에 띈다. 방이 좁기 때문에 침대는 우드 패널 위에 매트리스가 올려져 있는 낮은 것을 두었다고 한다. 책상은 ㄱ자 형태로 넓게 맞춤 제작한 것을 두어 활동적인 남자아이의 성향을 반영했다.
현관에 들어서서 양 옆으로 길게 난 복도 왼쪽 부분은 고등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 두 딸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이곳은 거실, 부부 침실, 아들 방과는 완벽히 분리된 공간. 기존에 가족실로 만들어져 있던 공간을 리노베이션해 두 딸이 거실 겸 서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같은 존에 두 딸의 방이 위치한다.
방 문을 모두 슬라이딩 도어로 바꾸어 문을 열어두면 작은 거실 공간과 연결되어 보인다. 연한 그린 컬러로 페인팅한 큰딸 방은 책상과 책꽂이를 모두 맞춤 제작해 넣었고 침대 헤드 뒤쪽에는 붙박이 형태의 화장대를 마련해주었다. 반면 연한 옐로 컬러의 작은딸 방은 좀더 화사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다. 큰딸 방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베란다 확장면의 바닥을 한 단 올려 여기에 화장대와 서랍장 등을 두어 별도의 공간처럼 보이도록 했다. 이 방의 조명이나 가구는 대부분 이전에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두 딸의 거실 겸 서재로 사용하는 공간 역시 테이블이나 의자, 천장 조명과 플로어 스탠드 등 이전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리폼하거나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집을 리노베이션한다고 해서 그동안 살아온 흔적을 깔끔히 없애고 새것으로 치장하기보다는 오래 사용한 것일수록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충분히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게 정은주 실장의 생각이다.
인테리어 디자인 및 시공
e-DESIGN(정은주 실장 010-5412-5735)
1 나란히 위치하는 두 딸의 방. 한쪽은 그린, 다른 한쪽은 옐로 컬러의 친환경 페인트로 시공해 거실에서 두 방을 바라볼 때 흥미로운 컬러 매치와 방 주인들의 취향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컬러는 모두 두 딸이 각자 좋아하는 컬러를 고른 것으로 아이 방을 꾸밀 때에는 부모의 취향만 고집하지 말고 아이들의 의견도 수렴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2 이 집에서는 대부분의 문을 슬라이딩 도어로 교체했다. 슬라이딩 도어는 공간 효율성 면에서도 좋고 딸 방에서처럼 단순한 문 역할 외에 욕실 공간을 가리는 스크린 역할도 한다.
3 자라나는 아이의 방에는 수납공간을 기존에 갖고 있는 수납량 이상으로 여유 있게 만들어놓아야 한다. 책과 자잘한 짐이 급속히 늘기 때문. 수납장뿐 아니라 벽면에 설치한 선반 역시 훌륭한 수납 도구가 된다. 선반은 비워도, 채워도 보기에도 좋고 쓸모 있는 아이템이다.
4 부드러운 크림 컬러의 타일과 우드 소재의 수납장을 넣어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욕실. 수납장 역시 모두 맞춤 제작한 것으로 사진에 보여지는 부분 외에도 세면대 맞은편으로 큼직한 수납장을 설치해 욕실에서도 넉넉한 수납이 가능하다.
5 이 집에서는 기다란 복도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현관에서 딸 방 쪽으로 가는 복도, 나머지 하나는 거실에서 부부 침실 쪽으로 가는 복도다. 디자이너는 무의미할 수 있는 기다란 복도 중간에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공간을 확실히 나누어 가족 구성원 사이에도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짜임새 있는 공간이 되도록 했을 뿐 아니라 보다 리듬감 있는 공간 구성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신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