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날새 📢.하나님은 날마다 새 일을 행하신다.아멘
"겨울이 가고 봄이왔어요"라고 말해도 될것같은, 3월 10일, 월요일에 함께 할 하날새가 드리는 성경말씀은 시편 구십 오편, 10절, 11절 말씀입니다.
10절 :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11절 :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아멘
'근심하지 않게 해 드리려면 사랑하면 됩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보겠습니다.
한 번씩 저를 괴롭게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어머니 생전에 어머니의 마음을 힘들게 해드렸던 생각들이 떠오를 때입니다.
어릴 때였습니다. 내가 고집부려도 어머니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밥 안 먹는다. 밥 먹는가 봐라"하고 이불을 덮어쓰고 버틴 적이, 몇 번인지 회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더러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그래 밥먹지 마라 배고파 봐야 알지"하시고는 밥상을 치워버립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나오면 배는 갑자기 더 고파옵니다. 밥 안 먹겠다 한 것이 후회되지만 부엌에 가서 밥을 찾아 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럴 때면 나의 후원 군들이 있습니다. 누나들이었습니다. 누나들이 어머니 몰래 밥과 반찬을 갖고 와서 먹으라고 주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내가 밥 먹은 것을 끝끝내 어머니가 모르게 하여, 아들에게 밥을 굶긴 것이 후회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갖다 준 밥을 어머니 오시기 전에 빨리 먹어치웠습니다.
'이런 일들이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하였구나'하는 후회가 들 때면 마음이 아픕니다. 어머니가 앞에 계시면 용서를 빌고 싶어도 이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어머니와 함께한 세월 동안 수없이 어머니 가슴에 대못도 여러 개 박았습니다. 그게 이제야 대못이었다는 것이 생각나니 후회가 되어 마음이 아픔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들 때문에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요?
시편 구십오 편, 10절 말씀에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하신 말씀을 보게 됩니다. 40일도 아니고, 4개월도 아니고, 40년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근심하셨다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그 세대'라는 말은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세대'라는 말의 '도르'라는 말은, 40년에 국한되는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사는, 한 생애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말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한 생애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없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내 주셨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하여 근심하였습니다.
근심할 것 무엇 있습니까?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창조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버리고 다시 시작하시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노아 때 그렇게 해 보셨습니다. 노아 여덞식구 외에는 물로 심판하여 죽게 하시고, 노아를 통해 다시 시작하였지만 불과 얼마 못 가, 그 노아가 술에 취하여 추태를 부렸던 것을 봅니다.
인간은 매를 맞아도 안되고, 저주로 죽어가는 사람을 눈앞에 보아도 고치지 못하는 타락한 존재일 뿐입니다. 고쳐서 될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새 차를 구입하여 고장이 나게 되면 그때부터 정비 공장을 다니게 됩니다. 한곳을 수리하고 나오면 다음번에는 두 곳 세 곳이 고장이 납니다. 정비 공장은 고장 난 차를 새 차로 만들어 주는 곳이 아닙니다. 폐차될 것을 약간 연장해 줄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때려도 보셨습니다. 어르고 달래도 보셨습니다. 달달한 사탕도 주어보셨습니다. 하나님이 오즉하시면 후회도 하시고 근심도 하셨겠습니까?
그래도 안되는 것을 아셨기에..., 고치면 고쳐질 사람은 없었기에 아예 죄인을 대신할자를 살펴보셨지만 의인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죄없으신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의 죄를 씻어 주시고 덮어주셨습니다. 그 사랑에 완악함이 녹아지게 만들어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로 변하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거듭하여 물으신 것은, '충성하려느냐?', '기도 많이 하겠느냐?'물으신 것이 아니라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사랑을 물었습니다. 사랑은 나를 예수님께로 향하도록 하는 시작이자 모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근심시킬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 살도록 기도합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것은,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됩니다. 부모를 근심케하였다면 사랑하면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근심 시켜 드렸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다 잊으시고 기뻐하십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근심시키는 자가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살도록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