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꽃이 곱기는 하나 향기가 없는 것이 흠」
▶떠날 때는 모란처럼 지고 싶다
꽃도 피었다 지고 태어난 것은 이윽고 죽는다. 그래서 생노병사生老病死가 괴로움이요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쉼 없이 헤매여 구하나 얻지 못하는 고통. 보고 느끼는 것, 생각하고 하는 일, 분별 없이 일어나는 끊임없는 번뇌들이 모두가 고통이다. 그렇다해도 인생이란 유행가 가사처럼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낭만도 있다.
오월은 꽃 지는 계절, 생명을 갖고 태어난 것들은 누구나 한번은 가야할 길인데 어떻게 이승을 하직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까. 내 죽음을 맞이하여 한 송이 꽃이라면 새벽이슬에 그 큰 꽃잎을 여한 없이 뚝 떨궈버리는 모란처럼 지고 싶고, 한줄기 나뭇잎이 된다면 곱게 물들어 가을바람에 미련없이 툭 떨어져 내리는 감잎 같은 낙엽 되어 가고 싶다.
꽃과 낙엽들이 질 때 지지 못하고 끈적하게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참 추해 보인다. 모란과 감잎은 낙화낙엽 되어 지는 모습이 진정 곱다.
사람도 죽음에 임하여 미련도 여한도 없이 고종명考終命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바랄게 무엇인고.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이 또한 지나친 탐욕의 번뇌일까.
목어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어시는데
서역 만리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趙芝薰 詩 「古寺」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북풍한설 인고의 세월을 겪으며 피워낸 봄꽃들. 이제 그들도 다음 생을 기약하며 눈부신 오월의 태양아래 시들어 가는데 졸음에 겨운 상좌아이 잠 들여놓고 우리는 어느 하늘 만리 길로 떠날 것인가. 석양에 노을지듯 모란이 진다.
▶중국왕조시대를 상징한 꽃
홍일점紅一点 한 송이 붉은 꽃. 꽃은 여성이다. 그러나 나무들 중에 매화나무가 여성이라면 소나무는 남성으로 비교되듯이 꽃에도 애잔한 여성적인 꽃이 있는가 하면은 기백 있는 남성적인 꽃이 있다. 동식물을 남․여로 비유할 때 한문으로 수컷 모(本:무)牡 암컷 빈牝자를 써서 암수를 모빈牡牝이라 한다. 모란꽃을 한문말 모단牡丹이라 한 것은 이 꽃나무가 종자를 생산하지만 뿌리번식을 함으로 남성의 형상으로 보아 수컷 모牡, 꽃 빛이 진홍색이어서 붉을 단丹을 붙여 모단牡丹이라 쓰고 목단牧丹이라 불렀고 다시 모란으로 변해 왔다. 그리고 꽃이 아름다우면서 크고 복스러워 부귀화富貴花라 하였다. 모란은 한때 중국왕조시대를 상징하였고 시와 그림, 병풍, 예복, 기와무늬들에까지 수놓아져 대륙을 휩쓸기도 했으나 지금은 중국 나라꽃이 매화로 바뀌어 가고 있다. 자연 속 꽃에도 흥망성쇠가 있음이니 인간세상도 다를 바 없지.
모란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한 키 작은 낙엽활엽수나무로 높이 2m정도 자라면서 굵은 가지를 친다. 잎은 어긋나고 깃털꼴 3장으로 갈라진 겹잎이며 갈라진 각 잎마다 다시 3~5조각으로 얕게 갈라진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기본 보라빛 붉은 꽃이 가지 끝마다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피어난다. 꽃잎 8~16장 꽃받침 5장. 많은 수술이 암술3~6개를 감싸안고 있으며 꽃 지름 20cm에 이른다. 꽃 지고 가을이면 세 갈래로 벌어진 열매를 맺어 익는데 까만 씨가 들어있다. 중국원산인 모란은 「삼국유사」에서 선덕여왕632~647이 공주였을 때 당나라 태종이 모란화 그림 한 점과 씨앗 3되를 함께 보내와서 처음 심게되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이 땅에는 천년전부터 가꾸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선덕여왕이 공주시절 모란화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탐화봉접探花蜂蝶-꽃에는 으례히 벌과 나비가 따르기 마련인데 이 그림에는 벌 나비가 없으니 꽃이 곱기는 하나 향기가 없는 것이 흠이라한 유명한 일화를 비롯하여 모란에 대한 수많은 설화들이 전해오고 있으나 그리 대단하지 않으므로 생략한다.
▶피와 관계되는 부인병의 명약
모란을 비롯해서 꽃 모습들이 비슷하여 이름까지 닮아 혼돈하기 쉬운 식물들을 살펴보자. 「모란:목단․목작약」 「작약:함박꽃」 「목련:목란」 「함박꽃나무:산목련」 이들 모두의 꽃을 통칭하여 함박꽃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모란과 작약은 꽃 모습이 아주 비슷하나 모란은 관목 목본이고 작약은 여러해살이풀 초본식물 중국 원산이다. 목련과 함박나무는 꽃과 나무모습이 함께 닮았으나 목련은 큰 키, 함박은 작은 키나무 외줄기 교목이며 이땅 자생목으로 구별된다.
함박꽃나무를 「목란」이라 한 것은 북한나라꽃이 진달래에서 함박꽃나무로 바뀌면서 그들이 붙여 부르는 이름이다.
모란의 생약이름은 한문으로 모단피牡丹皮, 목단피牧丹皮라 하고 「본초」와 「동의보감」에 기록이 남아있다. 약성은 서늘하고 맛은 맵고 쓰다. 신․비․심포락-심장 바깥을 싸고 있는 막-경에 작용한다. 혈분의 열을 내리고 피를 잘 돌아가게 하며 어혈을 없애고 고름을 빼낸다. 그러므로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혈행장애血行障碍를 주치하며 피와 관계되는 여성에게 좋은 약이다.
약효는 해열․진통․진경․통경․양혈․정혈․소염작용을 한다. 적용질환은 피순환 장애, 혈열로 인한 토혈, 부인병․생리통․경불순 없거나 막힘 고르지 못한 질환, 각종열병, 어린이 경간, 머리․관절․타박증상에 아픔멎이 약들로 쓰인다. 특히 한방에서 골증열骨蒸熱-뼈속에 열이 많아 땀이 나지 않는 증세에 모란뿌리 껍질을, 골증열이 있으면서 땀을 많이 흘리는 증상에는 구기자 뿌리를 쓰고 있다.
그리고 대장균 등에 억균작용을 나타냄으로 항염증과 항알레르기 효능도 있으며 동물실험에서 혈압을 낮추면서 간과 심전도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했다. 「동의보감」내경편에서 「본초」를 인용, 목단피는 월경불통을 주치한다. 달여먹거나 가루 내어 먹어도 좋다.고 단방으로 적혀있다.
모란은 뿌리껍질을 약으로 쓴다. 봄가을에 굴취하여 뿌리 속 목질을 버리고 잘게 썰어 말려서 보관하여 두고 하루 쓰는 양6~12g을 달이거나 가루환을 지어 복용한다. 임산부에게는 금기하는 약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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