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유혹, ‘복권’으로 본 세상
사회심리학자들은 로또나 카지노에서 대박을 터뜨린 사람들이 불행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다. 텍사스공대 게리 바이어 교수는 그 원인에 대해서 “갑자기 돈을 번 사람들은 제대로 쓸 줄 모르고, 돈을 다 써버린 뒤에 그걸 대신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 춘천의 한 공무원이 400억 원이 넘는 로또에 당첨되었다. 그는 복권구입 심부름을 한 동료에게 1억5,000만원을 사례비로 주었고, 근무하던 직장 직원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거액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그가 ‘타워팰리스’라는 고급아파트에 산다는 소문 등이 돌았다. 하지만 얼마 뒤 남루한 옷차림으로 허름한 술집을 전전하고 다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면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에 휩싸이는 경우가 더 많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이후 법정에 서거나,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사람들의 사연이 전해지기도 한다.
3년 전 복권 1등에 당첨돼 27억 원을 손에 쥔 한 부부, 지금은 완전히 갈라섰으며 당첨금을 두고 서로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 부인은 법정구속까지 당했다. 또 중국여성과 국제결혼을 한 남성, 로또 2등 당첨금 3,800만원을 모두 날렸다. 그는 중국인 부인과 처가에 속아 돈을 모두 빼앗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남성은 잃게 된 돈보다 사랑했던 아내에 대한 배신감에 분노하고 있다. 또 다른 40대 김 모씨, 2007년 4월에 도박판에서 만난 6명과 판돈으로 사서 나눠가진 로또로 뜻밖에 1등 당첨의 행운을 얻었다. 당시 당첨되면 절반은 당첨자가 갖고 나머지는 똑같이 나누기로 약속했으나, 신용불량자였던 김씨는 형의 명의로 당첨금을 받아 혼자 챙겨 버렸다. 2007년 말에 이를 알아 챈 도박판 동료들에 의해 횡령혐의로 고소당했고 결국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캐나다에 사는 로레인 테이칫은 2004년 동료들과 함께 구입한 로또가 약 73억 원(575만 달러)의 1등에 당첨됐으나, 혼자 당첨금을 가로챘다는 의심과 함께 집단 따돌림에 시달려야 했다. 1년여에 걸친 경찰조사 끝에 로또를 판매한 편의점 주인의 소행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돈도 되찾았으나, 로레인은 그 동안 쌓인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암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또 미국의 로즈바카이사(87)와 테레사(84)의 이야기는 우애가 좋았던 80살이 넘은 자매끼리의 싸움이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평소 여행을 같이 다니며 복권을 구입해 왔던 이 자매는 6억 원(50만 달러)의 잭팟을 터뜨렸는데 당첨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결국 그들은 나란히 법정에까지 서게 됐고 재판소에서도 몸싸움까지 벌였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위의 딱한 이야기들과는 달리 훈훈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회자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복권에 당첨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7월 1,120만 달러의 복권에 당첨된 캐나다의 한 70대 부부가 당첨금 전액을 단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주변을 위해 모두 써버려 화제가 되고 있다. 앨런 라지(75)와 바이올렛 라지(78) 부부는 당첨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논의하면서 목록을 작성하니 무려 두 페이지에 달했다고 한다. 우선 가족들에게 일부를 나눠준 다음에 기부할 곳을 선정 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지역 소방서, 교회, 묘지, 적십자사, 구세군, 캐나다의 도시인 투루로와 할리팩스에 있는 병원, 암과 알츠하이머, 당뇨병을 치료하는 기관 등이 포함돼있다. 투루로와 할리팩스에 있는 병원은 바이올렛이 암 치료를 해온 곳이었다.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바이올렛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쉬움도 전혀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온타리오 주에서 30년간 살았던 이 부부는 1974년 결혼 이후 줄곧 검소한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엘렌은 용접공으로 바이올렛은 미용실과 초콜릿 공장에서 일했으며 은퇴하면서 노바스코샤에 정착했다. 앨런은 "우리는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백만장자는 아니지만 서로에게 편안한 존재"라면서 평소에도 ‘큰돈은 큰 골칫거리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7월14일 복권 `대박`이 터졌을 때 모두 남에게 주기로 쉽게 합의했다고 말했다. 바이올렛은 내셔널 포스트 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단 1%도 우리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우리는 내 건강을 되찾는데 신경을 쓰기에도 바빴다. 그래야 무언가를 할 에너지를 얻게 된다. 돈은 우리의 건강이나 행복을 대신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요즘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는 현실의 복잡하고 불가능한 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법이 복권 당첨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절박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복권을 구입하기도 하고, 별 기대 없이 습관적으로 사기도 한다. 복권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부러워하며 듣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복권에 의해 인생이 파괴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복권의 메커니즘을 잘 살펴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푼돈이 어느 한 사람의 목돈으로 한 순간에 탈바꿈하는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욕망이 어느 한 특정인에게 행복이나 불행의 두 얼굴로 나타나는 것이다.
흔히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살아생전에 비행기 추락 사고를 두 번 당할 확률과 비슷하다고 한다. 불가능에 가까운 그런 확률에 기대어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복권을 사고 있다. 차라리 그 돈만큼의 정성으로 불우한 이웃에게 기부하자는 주장을 펼치기에는 일확천금의 유혹이 강렬하고, 복권당첨이 가져다 줄 행복의 약속은 너무나 달콤하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사회구조 안에서 사행심을 조장하는 복권판매가 주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그 복권으로 인해 막대한 수입이 주정부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고 하니 모두들 열심히 사고 있는 복권이 또 다른 기발한 형태의 자발적인 세금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복권 당첨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불행 속으로 떨어진 사람들도 있지만, 당첨금으로 주위 사람들을 도와주는 등 선행을 통해 평소 가지고 있던 신념을 견고하게 확인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니 복권으로 인해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는 당첨되는 그 순간까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절박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망으로, 또는 무심코 남은 잔돈으로 복권 한 두 장을 사기 전에 자신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