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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몇몇 일본군이 말레이지아를 비롯한 동남아에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 몇몇은 전쟁이 종결되고 이미 십 여년이 지난 1960년대까지 종전 소식을 모르고 불안에 떨며 숲 속에서 숨어 살았습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 주어도 믿지 않고 집으로 가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결박을 끊어 버리시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화목하게 해 주셨건만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죄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진정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한 평안함을 누리고 있습니까? 전쟁은 이미 끝났습니다
누군가가 이끌어 주기만을 기다리기보다 말씀과 기도의 생활로 평안을 이루라 엡 2:17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눅 8:25)
실상 따지고 보면, 검사해 보고 이치에 맞아서 행동하거나 합리적이어서 행동하는 경우보다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때가 더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자도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그것이 곧 또 하나의 믿음인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믿음들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사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믿는 것들은 불완전하고 유한한 것으로 진정 믿을 만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에 매해서는 너무도 쉽게 믿음을 가지면서, 실로 완전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믿음을 갖기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 중에도 그 믿음이 흔들리고 바르지 못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만날 수도 없고 교제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가장 칭찬하고 기뻐하신 사람들은 돈 많은 부자도 아니요, 지식 많은 사람도 아니요, 권세가도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을 보고 기뻐하셨고 칭찬하셨습니다. 또한 히 11:6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흔히들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라 합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듣고 만져 보아야만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는 것이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보지도 듣지도 만져 보지도 않고 믿는 것이 곧 참 믿음인 것입니다. 성경대로 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입니다.
공기나 전파나 소리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지만 분명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젼이 스위치를 올리고 채널을 맞춰야 들을 수 있고 볼 수가 있듯이 하나님은 영이신 고로 볼 수는 없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다이알을 맞추고 믿음의 스위치를 올리게 될 때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알 수가 있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도 할 수가 있는 것이요, 따라서 그 믿음을 통하여 매일매일 순간순간 그분과 교제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저 자신의 믿음도 심히 부족하고 체험도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하는 사실은 털끝만큼도 의심하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매일 하나님과 교제하고 대화하는 사실을 간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있는 자가 되십시오. 농담이라도 '나는 믿음이 없다'라는 불신앙의 말을 하지 말고 날로 날로 믿음이 크고 굳세어져서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은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맡겨집니다. 믿음이 적으면 적은 일밖에 할 수 없고 믿음이 크면 큰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또 믿음이 큰지 작은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하여 잠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세 가지로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바다의 제비는 폭풍이 불 때만 떠다닌다고 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또 믿음이 크냐 작으냐는 환난과 고통이 닥쳐 올 때에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볼 것 같으면 제자들이 평안할 때는 예수님을 잘 믿는 것 같았으나 광풍이 일어나 거센 물결이 배를 치고 배에 물이 가득 차니까 제자들은 배가 침몰해 죽을까 하여 두려워 떨며 주무시는 예수님을 황급히 깨우면서 하는 말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급했던지 두번씩이나 주여 주여 하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풍랑중에서도 태연히 주무시다 일어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신 뒤에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꾸짖었던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타신 배가 뒤집히겠습니까?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고 태연하고 안심했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은 두려워 떨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큰 시험이 닥쳐 보아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태평 무사할 때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큰지 작은지도 풍파가 일어나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환난, 고통, 시험이 닥쳐와야 비로소 그 믿음이 나타나게 될 뿐만 아니라 없던 믿음이 솟아나게 되기도 하고 약한 믿음이 커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에는 가끔 풍랑이 있는 법이고 풍랑이 있어야 기도도 열심으로 하게 되고 믿음도 점점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보다 성숙하고 올바른 신자가 되려면 어린 아이들이 홍역을 치르듯이 한 고비의 시험을 겪게 됩니다. 믿음이 좀 자라는 것 같을 때에 병이 나거나 사업에 실패를 하거나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때 믿음이 없는 사람은 크게 낙심하여 당장 일어나는 일만 보고서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그럴까? 또는 예수 믿어 보아야 별수 없다고 떨어져 나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하나님을 의뢰하고 간절히 찾습니다. 키에다 곡식을 넣고 까불어 보면 쭉정이는 까불수록 멀리 나가 떨어지지만 알곡은 안으로 바싹바싹 다가 들어오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풍파가 오고 시험이 오면 더욱 잘 믿고 더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께 가까이 하라는 사랑의 신호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The end of self is the beginning of the God)'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 (Man's extremity is God's opportunity)'라는 말도 있습니다. 고로 믿음이 큰 사람은 풍파를 역이용하여 믿음이 자라는 기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약 1:2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고, 또 요 16:33에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환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이 오지만 이기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약 1:12에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했을 때 마르다는 '죽은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라고 했던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절망 속에서도 믿어야 합니다. 믿음 위에 굳게 선 자는 시험을 이기게 되고 그것을 통해 믿음을 하나님께 인정받아 시험이 축복으로 바뀌며 더 크고 영원한 영광에 참여케 되는 것입니다. 이에 시 119:71에서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다'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레이놀드 그린(Reynold W.Green) 목사는 말하기를 '인생에 가장 좋은 일들은 흔히 고난이나 슬픔의 보따리에 싸여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큰 축복을 우리 인생에게 줄 때는 때때로 슬픔이나 고난의 보따리에 싸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환난과 시험이 닥칠 때마다 보다 굳건한 믿음을 하나님 앞에 내보임으로써 예비된 축복을 얻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약 2:15에서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였습니다. 이는 결국 참된 믿음이란 그 행위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만약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그것은 거짓 믿음이 됩니다. 진정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대로 행하는 실천적인 믿음의 열매가 보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회사 사장은 자동차로 회사까지 15분 정도 걸리는 길을 가면서 항상 옆의 빈 자리에 예수님이 앉아 계신 것으로 믿고 친구와 의논하듯이 주님께 회사의 모든 문제를 아뢰이고 의지하면서 출근하곤 했는데, 놀랍게도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고 회사가 크게 발전되어 갔다고 하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노만 빈센트 피일(N.V.Peale) 목사의 말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고 무엇이나 성취하고 승리하는 비결에 대하여 세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첫째는 마음 속에 그림을 그리라 둘째는 기도하라 셋째는 현실화 하라'고 한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 우선 마음 속에 그 실상을 그려 놓고 불타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확신이 오면 그대로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빌 4:13에 보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을 분명하게 믿는 자들은 그 행위와 삶 속에서 믿음대로의 모습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참 믿음이나 큰 믿음이란 것은 물러설 줄 모르고 끝까지 믿고 맡기고 나가는 모습 속에서 증거됩니다. 시험삼아 좀 믿어 보다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부정하고 마는 것은 믿음이 아니요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시험해 보는 죄인 것입니다. 병 낫는 것도 끝까지 믿고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되는 것이지, 속으로는 믿지도 않고 아무리 기도를 받아 보아야 그 병이 낫지 않는 것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은 분명히 내 병을 고쳐주신다. 주님은 내 죄뿐 아니라 내 질병도 담당하셨다는 확신을 가져야 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설사 병이 낫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후에 있을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며 믿음을 변치 않는 것이 바른 믿음인 것입니다. 약 1:6에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했고 막 11:24에도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을 어기고 풀무불에 던지워졌을 때 타죽지 않게 된 것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죽으면 죽었지 우리는 왕의 명령을 들을 수 없다고 하며 변함없는 믿음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믿을 때 믿음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히 11:13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고 했습니다. 믿어 보다가 도중에 그만 두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이냐 아니냐, 큰 믿음이냐 적은 믿음이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끈기있고 변함없는 모습으로 신앙 생활을 하느냐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환난과 시험속에서, 그리고 그 행위를 통해, 또한 끈기있고 변함없는 신앙 생활로 여러분들의 보다 분명하고 큰 믿음을 확증해 보임으로써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
첫댓글 귀하신 말씀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