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자와 진실하지 못한 자
잠언 25:19, 환난 날에 진실하지 못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찬송가 92장(위에 계신 나의 친구)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지혜자는 환난과 시험의 때에 진실하지 못한 자를 의지하고 자기 편에 끌어 들인 사람은 반드시 큰 낭패와 수치와 손해를 본다고 경고해줍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사람의 인격이 거짓과 사사로운 욕심이 가득차 있는 사람은 위기 때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친구로 삼으면 반드시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의 큰 아들 암논은 황태자가 되기에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다윗의 큰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혜로웁고 진실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 아니하고 자기의 사촌 형제 요나답을 절친한 친구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요나답은 심히 간교한 자였습니다. 그리하여 암논이 배 다른 여동생 다말을 사랑하여 육신의 정욕을 품었음을 알았을 때에 친구로서 그 욕심은 잘못된 것이니 안된다고 말려야 했지만, 도리어 그 욕망을 이루는 꾀를 알려주었습니다. 결국 다말의 친오빠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의 분노로 암논은 압살롬의 종들의 칼에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암논이 살해당할 때에 요나답은 다윗 곁에 있었는데 암논이 죽고 다른 왕자들도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왕과 신하들이 울고 있는 와중에도 요나답은 조금도 마음의 동요 없이 왕에게
“왕이시여 다른 왕자들은 괜찮을 것입니다. 오직 암논만 죽었을 것입니다.”
라고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만일 왕자 암논이 자기와 다말에 대한 잘못된 욕망을 말하였 때에 왕자에게 요나답이 충고하기를, 절대로 그러한 악행을 생각조차 하지 말고 좋은 규수를 얻어 결혼하라고 조언하였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그런 일을 부추기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준 사람이 이제 자기 때문에 칼에 죽게 된 일을 목도하면서도 그렇게 아무 도의적 책임감 없이 냉정하게 다른 왕자는 괜찮고 오직 암논만 죽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양심도 없는 냉혈한인 것을 보여줍니다. 요나답은 가장 위해는 척하는 친구였지만 이기적이고 악하고 자기 욕심만 챙기고 간교한 사람이었고, 그를 친구로 삼은 덕분에 황태자 물망에 올랐던 유력 주자 암논은 그렇게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다윗 왕의 시대에 주변 나라들과 수많은 전쟁을 치를 때에 이스라엘의 승리를 가져온 뛰어난 전술 전략가가 있었으니 길로 사람 아히도벨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제갈량과 같은 뛰어난 지략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제갈량의 도량과 인품은 갖추지 못하고 욕심과 자존심이 강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이 자기의 지략을 펼치는 데에 관심이 다 있었고 그것을 뛰어넘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어느 시점이 되자 그의 마음의 그릇과 본색이 드러나게 되었으니, 그것이 곧 압살롬의 반란 음모였습니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권좌에서 몰아내고 자기가 왕위에 오르려고 음모를 꾸몄을 때에 압살롬이 염두에 두었던 것은 길로 사람 아히도벨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가 아버지 다윗에게 헤브론에 가서 서원한 것을 이루려고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헤브론 성읍 아래쪽 광야 성읍 고향 길로로 낙향한 아히도벨을 포섭하여 반란에 끌어들이려고 했기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아히도벨이 지략이 있고 시세를 읽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그 중심이 진실치 못하였기에 주군 다윗을 배반하고 자기가 압살롬을 왕으로 삼을 때에 자기에게 주어질 막강한 권력을 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전쟁터를 함께 다니며 전술 전략을 논하였던 주군 다윗을 배반하고 그 아들 편에 서서 반역을 꾀하는 악한 일에 앞장서게 된 것입니다. 그는 비록 지략은 뛰어난 사람이었으나 그 마음은 충성치 못한 사람, 진실치 못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너무가 강력하고 급박한 반란의 정국에 목숨을 내걸고 다윗과의 의리를 지킨 진실한 사람들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잇대라는 용병대장은 블레셋에서 얼마 전 다윗을 섬기기 위하여 병사들 6백 명을 거느리고 찾아왔는데, 나라가 완전히 압살롬 편으로 기울어 다윗이 맨발로 예루살렘을 떠나는 상황 속에서 흔들림없이 다윗과 함께 그 고난의 피난길을 따라나섭니다. 잇대는 자기와 자기 병사 6백 명은 비록 도망치는 신세인 다윗이 아무 힘도 없었지만 자기를 받아주고 고용한 다윗을 위한 책임을 지고자 그렇게 신의를 지켰던 것입니다. 후새라는 다윗의 친구도 자기의 목숨을 걸고 다윗의 명령을 받들어 압살롬에게 거짓 항복을 하여 아히도벨이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내 놓는 치명적인 계략을 무너뜨렸습니다. 또한 요단강 동편 땅 마하나임의 거부 소비와 마길과 바르실래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피난 온 다윗을 맞아들여서 자기의 종들과 물품들과 성읍을 내어주고 압살롬의 군대와 맞서 싸웁니다. 그러한 결정은 자기와 온 가족의 생명과 가문 전체의 멸문지화를 초래하는 위험을 불러올 것이지만 그들은 다윗 왕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하여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위하여 모든 것을 헌신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불의한 패륜자 압살롬과 그와 함께한 자들의 도모를 다 무너뜨리고 다윗과 다윗에게 진실한 친구들을 도와 승리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함은 인간 내면의 가장 중요한 아름다운 덕입니다. 그 진실함, 충성됨, 신실함이 없어지면 사람다움이 없어집니다. 아무리 모든 것을 얻고 성공하고 큰 부를 거머쥔다 해도 진실함의 소금이 없다면 맛 없는 소금처럼 결국은 바닥에 버려져 밟힐 따름입니다. 마귀는 진실 없는 거짓과 불충의 원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는 의와 거룩함과 진실함이 그 기초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허리띠는 진실함입니다. 진실함 앞에는 마귀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도 진실함입니다. 요한계시록 19:11 말씀에 이르기를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진실로 항상 무장합시다. 다윗이 시편 51:6 말씀에서 기도하기를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한평생 우리 마음 중심이 진실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진실한 자를 통하여 자기의 일을 행하기 원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 참으로 가장 진실한 주님을 우리의 친구로 삼고, 환난 날에 그를 의지합시다. 그리고 항상 무엇보다 진실하고 충성된 자를 가까이 친구로 삼읍시다. 그렇게 진실한 자를 친구로 삼은 자는 환난 날에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 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친구로 삼은 자는 큰 화를 입게 되고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해가 될 것입니다. 한평생 우리의 내면에 진실함과 충성됨과 신실함을 추구하여 주님께서 마음껏 우리와 함께 동행하며 동역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