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하늘은 맑지는 않고 바람 한 점 없는 찌든 시간이다. 네 시 동작역 4번 출구에서 만나자고 한 지인이 나타나질 않는다. 전화를 하니 길음역이라고 했다. 이십 여분 기다리니 막 출구를 나오고 있다. 며칠 전 국립현충원에서 매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 현충원 음악회에 가기로 약속했다. 음악회는 가끔 시간이 맞으면 갔었지만 작년에는 한 번 올해는 처음이다. 지난해에도 호국영령들을 방문해 인사도 못드렸기에 올해는 꼭 방문해 조국을 위해 몸바친 국가유공자와 애국지사를 방문을 다짐했다. 오늘이다. 잠시 출구에 앉아있는데도 바람 한 점 없는 찌는 날이다. 장로 친구를 만났다. 바로 현충원 정문을 향했다. 들어서니 그래도 둘러싸인 호국원 능선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했다. 내 집안은 호국 영령은 안계신다. 육촌 형님이 베트남전에 청룡부대로 파월하여 살아 귀국하였으나 이삽 여년이 되었을까 오십도 안된 한창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비록 스스로 국가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가끔 들리는 동작동 현충원. 직장에서 또한 맹호부대 전우들과 함께 여러번 다녀 갔다. 현충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일백 여 미터 올라가다가 첫 번째 사병묘역 맨 앞에 잠드신 채명신 장군께 인사를 드렸다. 함께 모시고 근무한 적이 없는 우리군에 산 역사이며 6. 25전쟁, 베트남 전쟁, 주월한국군사령관을 마지막으로 전역하신 삼성 장군이었던 채명신 장군. 맹호전우회 모임에서 선배들과 함께 서울지부장으로 활동하며 선배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필자는 선배들의 소개로 장군을 소개 받았던 지난 7년 전에 살아 계셨을 때 연말이면 인사드리러 두 번 찾아뵈었던 기억이 뚜렸하다. 평소 지병이었던 당뇨와 노환으로 몇 해 전 천국에 부름을 받아 소천하셨다 마지막 인사 드렸던 곳이 현대아산병원에서다. 그토록 사병들을 아끼고 사랑하셨던 장군은 사병들 맨 앞에서 지금도 진두지휘하고 계셨다. 소복한 꽃송이를 안으시고.
잠시 묵상으로 기도를 드리고 바로 사방에 영령들이 잠든 곳을 두리번 거리로 윗쪽으로 향했다. 오 분 가량 오르니 언덕에 이르러 잠시 땀을 식혔다. 동행한 장로 친구와 함께 말이다. 여러명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머무르며 땀을 닦고 있었다. 국가유공자묘역을 지나 자동차도 다니는 둘레길에 들어섰다. 호국의 달 유월도 삼일 만 남아서 그런지 찾은 가족이나 관계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산책 나온 시민 몇 명이 호국원 둘레길을 산책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 박정희 대통령께 인사를 드렸다. 관리인이 나나타나 저녁 여섯시 까지 경내를 둘러 볼 수 있다고 했다. 몇 십 미터 휘어진 길을 따라 내려오며 국장때 사용한 영구차를 잠시 둘러보고 가운데 방향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유명인사 묘역과 장군묘역을 둘러 보고 영내 가운데 자리한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묘소도 둘러 보았다.
이미 저녁 여섯 시가 지났다. 가운데 묘역 사이길로 내려오고 있었다. 강원도 화천전투에서 베트남 전쟁에서 자부동 전투에서 연평도에서 천안함에서 00야전병원에서 영령들은 저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생명을 던져 대한민국을 지키며 산화했다. 쉬엄쉬엄 보폭을 좁게 천천히 현충관 앞에 도착했다. 다리에 피로가 쌓였나 보다. 둘이서 벤취에 걸터 앉아 잠시 쉴 수 있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며 간이 의자와 또한 몇 명은 인접한 묘역을 가볍게 거닐며 이야기를 하며 음악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월 초 인터넷 예약을 하려고 현충원 방에 들어오니 예약이 꽉차 있었다. 호국의 달 추념 음악회라서 그런지 말이다. 예약할 때 문의 하니 입석은 가능하다고 했다. 지인과 함깨 올 예정이니 구두로 예약한 결과가 오늘이었다. (6월 27일 목요일)
먼저 리플렛에 있는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악대대를 소개합니다. "군악" 이라는 용어는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군대 의식과 행진곡 정도의 절제된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음악으로의 열정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를 생각한다면, 군악대는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젊음의 집합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한 군악대 중최고의 기량으로 편성된 우리 군악대대는 1989년 대통령령에 의거 창설되었으며, 외국 정상 국빈 공식 환영식, 정부 관련 주요 행사와 지역사회 문화 활동 등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악대대는 음악을 통하여 대내.외에 국가 위상을 드높히기 위하여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의 경주를 다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라고 적고 있다.
연주자와 국방부 중창단과 관중들이 모두 일어서서 애국가를 제창했다. 그렇다. 가슴이 뭉쿨했다. 언제 애국가를 불러보나. 현충일에 태극기 계양도 하지 않는데..... 학도가, 용진가, 전우여 잘 자라. 6.25 전쟁이 나은 군가 메들리를 중창단은 6.25 전쟁 영상과 함께 힘차게 불렀다. 준위 최광석의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군악대원들이 합주로 굳세어라 금순아, 타향살이,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는 1960년대에 많이 부르고 불렸던 향수의 노래였다. 유명 소프라노 유성녀가 부른 오페라 "밤의 여왕 아리아"는 녹생 원피스를 입은 유성녀의 진가를 보는데 충분하고도 남음이었다. 관중들의 일부 합창은 즐거움과 행복하기에 더없는 아리아였다. 황해도 민여 박연폭포를 부른 구수한 바라튼 가수 유수호는 막걸리를 마시듯 구수했으며, 많이 아는 비제의 오페라 "투우사의 노래"는 노래의 제목처럼 절도있고 튀는 특유의 메로디는 즐거움의 배가였다. 역시 남성의 멜로디는 박력이 제일 먼저였다.
오페레타(메리 위도)중에 나오는 "입술은 침묵하고"는 떠났던 첫사랑과의 사랑을 다시 되찾게 되는 줄거리가 담긴 남안적 작품이라고 소개했는데, 선이 굵은 바라톤 우주호와 소프라노 유성녀의 듀엣을 오랫만에 보고 듣는 퓨전음악처럼 쉽게 감상할 수 있었다. 국방부 뮤지컬팀의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장군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토대로 했는데 군악대원 모두가 자리하고 있는 무대에서 네 명의 배우들이 사형대에 오르기 전 안중군 장군의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데 무대가 마치 흑암으로 빠져들듯한 감정을 표현했으며, 일제가 저지른 갖가지 죄를 폭로하는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를 고발하는 뮤지컬을 발성하는 네 명의 가수들의 목소리는 지금이라도 일제 앞에 달려가서 우리의 자주권을 돌려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기에 나라는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국력. 개인이건 국가건 입에 발린 힘이 아닌 진정한 국력을 길러야 하는 현세다. 2016년 호국의 달 6월 마지막 날의 밤은 깊어간다.
첫댓글 국가와 민족을 위하다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신분들의 죽음앞에서의 음악은
어떤 감흥으로 다가올까? 하는 감상에 젖는 글입니다.
음악은 어떤 형식이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한 감성을 자극하는 형이상학적인 언어입니디
그것을 느끼는 재능은 각각에게 부여된 자질일 거라고 생각하고 그 크기는 자질에 따라 크게도 작게도 느끼겠지만
중요한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순수함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잘 보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망할당 님. 안녕하세요.
호국의 6월을 보내며 몇 해 만에 다녀왔습니다.
사방이 가스에 찬듯 무더위에
맞은편에 남산은 물론 더 북쪽인
수락산 도봉산도 보이질 않더군요.
호국 영령들에게 묵념으로 인사를 올리고
내년을 기약하며 뜻있는 음악도 접하고 왔습니다.
관심주심에 감사에 말씀 드립니다. 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