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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기 때마다 극복하게 해준 마법의 힘 수출, 그 마법이 풀리고 있다는 경고
경제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K-콘텐츠 등 ‘신 주력 상품’ 육성해야[스페셜 리포트]
수출은 한국 현대사에서 마법과 같은 힘을 발휘했다. 1953년 6·25전쟁이 끝난 후 한국에 남겨진 것은 폐허가 된 국토와 사람뿐이었다. 1960년대까지 가난과 배고픔이 지배했지만 1차 베이비부머들이 태어났다. 이는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이 됐다. 이들이 산업 전선에 쏟아져 나가는 순간부터 수출이라는 마법의 힘이 작동한다.
1960년대 수출은 한국의 생존 수단이었다. 소변·은행잎·다람쥐·쥐가죽 등 팔 수 있는 것은 다 내다 팔아 벌어 온 외화로 한국 사회는 연명했다. 정부는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수출을 독려했다. 1970년대 유신 체제가 들어선 이후 수출 드라이브를 가속화했다. 독재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수출에 올인했다.
오일쇼크의 위기도 수출로 넘어섰다. 1973년대 중반 오일쇼크가 터졌다. 수출이 줄어들 위기에 처하자 정부와 기업은 돈이 몰리는 중동으로 눈을 돌렸다. 중동에서 수주가 잇달으면서 오일쇼크의 위기를 넘겼다. 1977년 사상 처음 100억 달러 수출을 돌파했다. 이 이벤트는 국민의 축제가 될 정도였다.
이후 중공업·자동차·전자 등 새로운 수출 산업을 육성한 것은 다가올 대규모 위기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줬다. 산업화 이후 최초의 대규모 위기인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도 수출로 넘어섰다. 국민들은 당장 달러로 교환할 수 있는 금반지를 팔아 외화 부족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탰다. 기업은 망했지만 남아 있던 공장들이 다시 가동되며 수출 전진 기지 역할을 했다. 수출은 정상화됐고 이를 통해 들어온 달러를 모아 IMF 차관을 상환했다. 외환 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한 나라로 기록됐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발 금융 위기에 한국이 크게 흔들리지 않은 것도 수출 덕분이었다. 정부는 “환율은 국방력”이라며 과감히 외환 시장에 개입했고 이를 통해 대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포스코 등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급속히 늘어났고 다른 기업들도 성장하는 중국 시장을 수출 무대 삼아 규모를 키웠다.
2020년과 2021년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수출이었다. 전자제품·자동차뿐만 아니라 바이오 의약품 등이 위기 극복의 앞줄에 섰다. 그리고 K팝·드라마·영화·웹툰 등 K-콘텐츠가 새로운 강력한 수출 상품으로 부상하며 수출 전선을 강화했다. 그 결과 2021년 연간 총수출액은 6445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그만큼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수입도 많을 수밖에 없다. 원자재가 없는 나라이니 자재를 사다 뭔가를 만들어 팔아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무역 의존도는 높다. 2021년 기준 69.58%에 달한다. 중국(34.13%)이나 미국(20.4%), 일본(25.33%) 등의 2~3배에 달한다. 무역 의존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입과 수출의 비율로 계산한다. 전형적인 ‘수출 주도형 경제 시스템’이다.
최근 문제가 생겼다. ‘수출을 통한 위기 극복과 성장’이라는 신화가 깨질 위기에 봉착했다. 2022년 11월 기준 무역 적자 규모는 426억 달러로, 올 들어 8개월 연속 적자 행진이다. 적자가 나도 수출이 계속 늘면 그래도 덜 불안할 것 같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수출도 줄고 있다. 지난 10월 전년 대비 5.7% 감소한 데 이어 11월 14%로 두 자릿수로 감소했다. 주력인 반도체를 포함해 15대 주요 수출 품목 가운데 11개 품목의 수출이 줄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세계에 갑작스레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덮치자 한국의 수출이 휘청거리고 있다.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열풍과 정부의 못 미더운 대처는 한국의 수출 신화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대표적인 수출 품목들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봤다.
다람쥐부터 오줌까지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던’ 1950~1960년대
대한민국 국기를 달고 해외로 향한 첫 수출선은 1948년 조선우선회사 소속의 ‘앵도호’로 기록돼 있다. 부산항을 떠나 홍콩으로 향한 이 배에는 해삼·마른오징어·사과·인삼 등이 잔뜩 실려 있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지만 살길을 찾아야 했고 그 답이 수출이었다. 당시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은 텅스텐·철광석과 같은 광물과 쌀·김 등의 농산물이었다. 누에고치에서 뽑아내 비단으로 가공되기 전의 실을 일컫는 생사도 인기 품목이었다.
수출 주도의 경제 시스템이 공고해지기 시작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1962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정부 주도의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본격화됐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수출을 늘려 외화를 벌어 오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마음으로 온 국민이 매달리던 시기였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력이 있는 수출 상품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섬유·의류·합판·가발·신발과 같은 경공업 중심의 수출이 이뤄졌다.
1960년대 대표적 효자 수출 품목인 가발 공장. 사진=연합뉴스
당시 한국 수출을 먹여 살린 효자 품목 가운데는 이색 상품도 많았다. 1950년대부터 1960년 말까지 일본과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다람쥐가 그중 하나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설모와 달리 한국 다람쥐는 유독 귀여운 외모로 애완동물로 인기를 끌었다. 1969년까지 일본으로 수출된 다람쥐만 약 50만 마리 정도였다고 한다. 벨기에 등에서도 다람쥐가 인기를 얻으며 1970년대까지 약 30만 마리가 유럽으로 팔려 나갔다.
동네마다 찾아다니던 엿장수가 “머리카락 파세요!”를 외쳤던 가발 산업 또한 1960년대 후반 효자 품목이었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 흑발이 인기를 모으며 가발 수요가 늘어났고 경쟁력 있는 수출 상품을 찾기 위해 정부에서 보낸 조사단이 이와 같은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움직인 결과였다. 특히 한국 가발은 할리우드 영화 산업이 성장하는 시기와 맞물려 미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려 나갔다. 1970년대는 ‘오줌’이 효자 품목 노릇을 하기도 했다. 당시 주요 수출 제약 제품인 유로키나아제다. 혈관 속 혈액 응고를 막는 성분으로 뇌졸중 치료제의 주원료인데 녹십자 등에서 유로키나아제를 만들기 위해 소변 수집을 시행했다. 전국에서 다량 수거한 소변은 화학 정제 과정을 거쳐 kg당 2000달러에 파는 고부가 가치 제약 수출 상품으로 재탄생했다.
당시 주요 수출 품목 가운데는 사람도 있었다.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독일로 파견된 간호사와 광부들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 가는 아이들의 숫자도 빠르게 늘었다. 한 해 600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됐고 이 숫자는 1980년대 중반 연 6000명을 넘어서며 ‘아기 수출국’이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동물부터 신체 일부까지 그야말로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파는 시기였다.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수출 주도형 경제 시스템’ 공고해진 1970~1980년대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며 한국 경제 역시 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당시에도 한국은 수출을 통해 이와 같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기름값이 오르면서 큰돈을 벌게 된 산유국들이 당시 새롭게 인프라 등을 건설하게 됐는데 한국이 이 기회를 잡은 것이다. 1973년부터 시작해 1980년대 중반까지 정점을 찍은 ‘중동 건설 붐’이다. 1975년 기준 해외 진출 한국인의 30%가 중동에 파견됐는데 1980년에는 그 비율이 80%까지 증가했을 정도다. 중동 특수는 한국 경제에 산업 자본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자동차·반도체 등 한국 경제의 수출 산업이 ‘고부가 가치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된 것이다.
1970년대 이후 ‘한국 수출’을 얘기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종합상사다. 1970년대 초 정부의 수출 정책 일환으로 도입됐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은 1차 오일쇼크였다. 당시 상사맨들은 커다란 여행 가방에 양말 등의 견본품을 잔뜩 담은 채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사막에 난로를 팔고 북극에 에어컨을 판다’고 했다. 대한민국 수출의 첨병이었던 종합상사 직원들이 세계를 누비며 얻은 정보력은 국가 경제에도 큰 경쟁력이 됐다. 이들은 단순한 수출 대행의 역할을 넘어 금융·위험 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해외 자원 개발, 신시장 개척, 플랜트 수출 등 고위험·고수익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등 ‘수출 강국 대한민국’의 근간을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5년 당시 한국의 수출에서 종합상사의 비율은 10%였는데 1980년대 30%를 넘겼고 1999년 50%를 넘어섰다. 단적인 예로 1995년 한국 수출 기업의 10위 중 7개가 삼성물산·현대종합상사·대우인터내셔널과 같은 종합상사였다.
70년대중반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이 건설현장에 나와 공사진척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1970년대 후반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에 큰 변화가 생겼다. 중화학 공업의 육성으로 경공업 제품 중심에서 기계·선박·철강 등 중화학 제품이 수출 품목의 40~50%를 차지할 만큼 비율이 높아졌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중화학 공업 제품의 수출 비율이 50~60%에 달할 만큼 크게 증가했다. 이 시기 현대그룹은 노르웨이·그리스 등에 선박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조선·기계류 외에 특히 전자·전기·자동차 등의 수출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삼성전자 등을 중심으로 한 한국 전자업계의 수출은 1980년대 초반 20억 달러 규모였는데 1989년에는 180억 달러까지 늘어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반도체·자동차 등 수출 품목 세대 교체, 최첨단 기술력으로 승부 한 1990년대 이후
1970년대부터 1980년대 한국 경제는 수출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한다. 수출은 해마다 40%씩 증가했고 연평균 경제성장률 역시 10%를 넘어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때다. 세계가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에 주목했고 ‘한강의 기적’을 외쳤다. 하지만 1990년대 한국은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이한다. 임금이 올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당시 재벌들의 문어발식 경영으로 선택과 집중에 실패하며 한국 수출 상품 또한 경쟁력을 잃었다. 무역 적자가 쌓이기 시작했고 1997년 IMF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위기에 한국 경제를 살려 낸 것은 또다시 ‘수출’이었다. 자동차·반도체·컴퓨터·휴대전화와 같은 수출 품목의 ‘세대교체’를 이뤄 내며 선택과 집중에 성공한 것이다.
1990년대 주력 수출 상품으로 올라선 자동차의 첫 해외 수출 장면.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첫 자동차 수출이 시작된 것은 1976년이다. 현대자동차가 중남미 에콰도르에 포니 5대를 수출했다. 이후 1980년대 자동차는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으로 올라서게 된다. 1988년 처음으로 자동차 생산 100만 대를 넘어선 이후 1990년대에는 독자 기술 개발 단계에 들어가며 국제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게 된다. 2021년 기준 한국은 자동차 생산 전 세계 5위를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 왕국’의 서막이 열린 것은 1980년대 무렵이다. 당시 반도체 강자는 미국과 일본이었다. 급성장하는 일본을 견제한 미국의 통상 압력이 강해졌고 두 나라의 치열한 반도체 전쟁은 1986년 ‘반도체 협정’을 맺으며 일본의 패배로 결론이 났다. 일본이 자국 시장의 최소 20%를 외국 기업에 양보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후 일본 반도체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이는 한국에 기회가 됐다. 반도체는 1977년 한국 수출 주력 품목 9위에 오른 이후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1992년 처음으로 수출 1위 품목으로 자리 잡게 된다. 2000년대 들어 세계 경제의 회복으로 반도체·휴대전화와 같은 최첨단 정보기술(IT) 제품과 자동차 부문의 수출 호조는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2004년 수출 2000억 달러 돌파에 이어 2008년 4000억 달러를 넘겼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같은 시련에도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 가치 상품을 앞세우며 ‘수출 강국’으로 도약했다. 2011년 12월 5일 세계에서 아홉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나라가 됐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또다시 위기 앞에 선 한국 수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다시 한 번 위기 앞에 서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2월 2일 발표한 ‘11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 무역 적자는 426억 달러로 나타났다. 무역 적자가 400억 달러를 넘은 것은 1956년 무역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기존 연간 무역 적자 최대치는 외환 위기 직전인 1996년 기록한 206억2000만 달러다.
무역 수지가 악화된 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등으로 인해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원 수입 가격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 하지만 수입과 관련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영향 외에 ‘수출 부문의 둔화’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난다.
11월 수출액(잠정치)은 519억1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4%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었던 2020년 11월 이후 올해 9월까지 23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해 왔던 수출이 지난 10월 5.7% 감소한 데 이어 2개월 연속 감소 추세로 돌아선 것이다. 15대 주요 수출 품목 가운데 전년 대비 증가세를 보인 것은 자동차·자동차 부품·석유 제품·2차전지 등 4개 품목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자동차는 전년 대비 31% 증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 수출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다. 전년 대비 29.8% 감소했다. 반도체 수출액은 4개월째 감소 추세다. 지난해 수출 호실적에 따른 기저 효과가 작용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등으로 인해 IT 기기 등 전방 산업의 수요 자체가 둔화된 영향이 크다. 특히 반도체 수요가 감소한 것은 최근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과도 연관이 있다. 중국은 스마트폰과 같은 IT 기기의 최대 소비 시장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봉쇄 정책이 지속되며 소비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의 공장들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탈출 시도로 인한 혼란까지 더해지고 있어 부품 공급망 등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점점 격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그로 인해 가속화되고 있는 ‘경제 블록화’ 현상 또한 향후 반도체 수출 등에 험로를 예상하게 하는 요인이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수출 품목은 반도체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한국 최대의 교역국이다. 11월 기준 대중 수출은 무려 25.5% 감소한 113억8000만 달러다. 대중 수출은 12월까지 6개월째 감소 추세다. 중국의 봉쇄 정책이 장기화되고 문이 완전히 닫힌 상황에서 한국의 수출 또한 피해가 막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중국에 장기간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되면서 12월 7일 사실상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단시간 내에 대중 수출의 회복을 기대하기에는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집단 면역 상태에 이르러 일상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대중 수출이 감소한 이유를 보다 근본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중국의 기술 발전에 따라 예전과 비교해 한국 제품을 찾는 이들이 줄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처도 중국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지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함께 아세안 지역으로의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더욱 큰 우려를 낳고 있다. 11월 아세안 지역으로의 수출은 전년 대비 13.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장 엔진 꺼뜨리지 않으려면, 수출 상품 ‘세대 교체’에 달렸다
‘반도체’와 ‘중국’이라는 한국 수출의 가장 기둥 두 개가 모두 흔들리면서 이미 한국 경제에는 암울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내년 1%대 초반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인 2%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12월 1일 중소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올해 상당 폭의 무역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경제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고 발언했다. 얼마 전까지 “외환 보유액이 충분해 한국 경제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큰소리 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를 지닌 한국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경제 위기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심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봉쇄 정책 장기화 등으로 인한 ‘외부적 요인’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다. 국제 정치 질서의 변화가 커지고 있는 시기에 특히 정부의 대외 정책이 위기 극복을 위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2월 5일 ‘본격적인 수출과 내수 동반 침체의 시작’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향후 세계 경제 불황과 교역 시장의 수요 위축이 현실화하면 한국 수출 경기의 침체 국면 진입이 불가피하다”고 예측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수출 경기가 침체하고 내수 활력이 크게 약화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경기 하강 속도가 빨라지면서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향후 경제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불황 극복’에 둬야 한다”며 “특히 한국 경제의 주된 성장 동력인 수출 경기 급랭을 막기 위한 민·관의 적극적인 해외 시장 공략과 대응 여력이 취약한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 된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프랑스 파리에 문을 연 팝업 매장에 입장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관객들. 사진=연합뉴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한국 상장사의 70% 정도가 수출 기업인 만큼 수출 감소는 상장사들의 이익 전망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며 “하지만 순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위기 이후의 기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한국의 수출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 한국은 위기 때마다 ‘새로운 수출 상품’을 찾아 경제 성장의 동력을 삼아 왔다.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기에도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인 ‘수출’에 또다시 희망을 걸어 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 위기의 시기 때 늘 그래 왔듯이 지금이 바로 한국의 수출을 책임질 수 있는 ‘새로운 주력 상품’을 발굴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원전·방산·K-콘텐츠 등이 새로운 주력 상품 후보로 부각되고 있다.
이 가운데 K-콘텐츠는 ‘오징어 게임’과 ‘BTS’ 등을 필두로 빠르게 시장을 넓혀 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K-콘텐츠의 연간 매출액은 135억8000만 달러 규모다. 수출 규모로만 따지면 아직은 한국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콘텐츠 산업은 문화를 바탕으로 국가 브랜드 홍보에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콘텐츠 1억 달러 수출 시 소비재 등 콘텐츠 관련 산업의 1억8000만 달러 수출 증가가 이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재 수출 견인을 포함한 생산 유발 효과는 5억1000만 달러, 취업 유발 효과는 2892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첫댓글 즐거운휴일되세여.
어제 김장해서 오늘 정리해야 해서 농막 생활하고 있어요
지기님
건강하세요
네
따사로운 주말이네요
농막생활도재미가있죵.
일이 있는땐 농막이 편해요 출퇴근 안해도 되닌까요
걱정이야요
지기님 오늘도
펑안한오후되시고
건강하세요
글치요 내년에는 이자가 5%대라고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