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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2: 32. 성령을 거역하면 33. 열매로 나무를 안다
마 12: 32. 성령을 거역하면 -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
오늘날 은사 운동이나 거짓된 신비주의는 예수께서 보이신 증표를 가지지 않는다. 그 운동은 교리적 교훈적 정통성이 없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사람을 높이고 거룩함과 절제가 없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실 때도 자신을 높이지 않으셨다. 그는 오늘날 자신을 높이는 세속적 신비주의자들과 완전히 다르시다. 성경은 거짓된 신비주의에 대해서 조심하라고 교훈한다.
1] 또 누구든지 말로
'모독', 곧 '블라스페미아'는 의지적 범죄로서 특별히 '말'에 의한 성령이 가르침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말'이란 인간 내면을 외부로 표출(表出)시키는 통로로서 '말에 의한 모독'은, 곧 전인격적 모독을 암시한다(24절).
2]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인자'라는 칭호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이를 막 3: 28의 평행구와 연관시켜 복수 개념('인자들')으로 읽음으로써 단순히 사람들을 지시하는 말로 이해한다.
그러나 마태가 일반적으로 사사한 바대로(8: 20) 성육신(Incarnation)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Origen).
인자를 거역하는 것과 성령을 거역하는 것의 차이점에 대한 견해.
(1) 인자의 성령보다
덜 중요하다.
(2) 전자는
세례받기 이전과 관련된 문제이고, 후자는 세례받은 이후에 관련된 문제이다.
(3) 전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람을 후자는 그리스도인 예언자들의 권위를 부인한다.
(4) 전자는
예수의 인성을 후자는 예수의 신성을 가리킨다.
(5) 스텐달(Stendahl)과 보링(M.E. Boring)의 견해로
인자를 거역하는 자들을 불신앙인들로서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성령을 거역하는 자들은 오순절 사건 이후에 성령강림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로서 후에 배교(背敎)하거나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하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자들로서 이들은 결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
(6) 전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는 복음의 진리를 거부하거나 거스리는 것을, 후자는 예수가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것과 같은 놀라운 사건들(치유, 금식, 부활하심 등등)이나 성령의 내적인 감동이나 회개에 역사가 분명히 하나님 능력 안에서 행해지는 것임을 충분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완강하게 성령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해석이 정당하다면 인자와 성령의 차이는 부수적인(relatively incidental) 것에 해당한다.
요컨대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예수 자신의 주장들을 거역하는 셈이 된다. 실로 '인자를 거역하는 데'서 전진하여 '성령을 거역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 죄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성령을 거역하는 일은 종말론적인 범죄로서 영원한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 최고, 최후의 죄가 된다.
3]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카타)
일반적인 의미로서 무엇을 '반대한다.'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는 성령의 제 사역과 그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전면적 부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말'을 통한 모독 행위는 이 거역 중에 한 부분에 속한다.
4]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이 말에 대한 여러 견해들이 있다.
(1) 이 말을 단지
관용적 표현으로 취급하여 결단코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Plummer).
(2) '세상'(*, 헬라어 '아이온')은
'세대'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기에 '이 세상'을 '이 세대', 즉 구약의 유대인 세대(율법 시대)로, '오는 세상'은 '오는 세대', 즉 신약의 그리스도인 세대(은혜 시대)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Clarke).
(3) 현존 세상과 재림으로 이뤄질
미래의 영원한 세계라 이해한다(Calvin).
(4) 유대인들은
전 역사를 메시아 이전과 이후 세계로 양분하여 생각하고 있다(에스라드마 2서 5: 47,50).
(5) 로마 가톨릭에서는
'오는 세상에서의 사하심'이라는 말을 통해서 이 '오는 세상'을 현 세상과 마지막 세상 사이의 중간 기간으로 이해함으로써 연옥(purgatory)설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용서받지 못하고, 즉 회개치 않고 죽은 불신앙인도 세상 끝 날에 용서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강림이 그분의 미래적 강림(*, 파루시아)의 기초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미래에 다가오는 세상의 역사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하신 것은 성령 모독의 죄를 범한 사람은 영원히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위치, 즉 마귀들과 같이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음을 의미한다.
마 12: 33. 열매로 나무를 안다 -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
나무와 그 열매는 같이 간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히고 나쁜 나무에서 나쁜 열매가 맺힌다. 우리는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
사람도 그렇다. 우리는 사람의 행위를 보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말은 사람의 중요한 행위이다. 우리는 사람의 말을 보고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악한 비난을 내뱉는 것은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고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일 뿐이다.
1]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열매에 의한 나무 판단의 교훈은 7: 17-18에서 본 바 있다.
본문을 이중적 구조로 이해하여 첫 번째 등장하는 나무와 열매를 성령을 힘입은 그리스도 자신과 그의 치유에 의한 선한 결과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등장하는 나무와 열매를 스스로 악히기(나무) 때문에 성령을 모독하는 말(열매)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바리새인들의 행각(行脚)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Alford).
나무는 필연적 인과(因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좋으면 둘 다 좋고 나쁘면 둘 다 나쁠 수밖에 없다.
귀신을 쫓아내고 정의를 외치는 예수의 열매(fruit)는 근본 나무가 선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너무도 분명한 예수의 열매를 부인하지 못하였으니까 대신 예수의 나무를 비방했는데, 그들의 허구성(虛構性)이 이 논리로 격파당한 것이다.
예수는 근본과 결과를 모두 선한 교사이신 동시에 자신의 실체를 정확히 소개, 변호할 수 있는 능력의 교사이기도 하셨다.
2] 용서받지 못할 죄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실 수 없는 죄가 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죄인가? 본문은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1) 용서받을 수 있는 죄.
① 사람의 모든 죄와 모독은 용서받을 수 있다.
주님이 말씀하신 모독은 하나님 혹은 인간을 적대시하는 불순한 언어, 즉 명예훼손, 푸념, 욕설 등의 보편적인 죄를 의미한다. 사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 롬 6: 23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다시 말하면 사람의 죄와 모든 악한 모독은 그 결국이 멸망에 이르고야 만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범한 인간은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 요 3: 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막 10: 45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누구든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한다면 인간의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주님의 가르침과 용서에 대한 베드로의 질문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하신 주님의 대답은 대인관계에서도 끝없는 용서의 길이 열려 있음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② 말로 인자를 거역하는 죄도 용서받을 수 있다.
말로라도 주님을 거역한다는 사실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사도 바울은 회심 이전에 신자들에 대해 무자비한 박해를 가한 죄인이었다.
* 행 9: 1-2 –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 행 22: 4 -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 행 26: 9-11 –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 고전 15: 9 -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 엡 3: 8 -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 빌 3: 6 -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따라서 그는 자신을 스스로 '비방자', '핍박자', '폭행자' 였다고 고백하였다.
* 딤전 1: 13 -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또한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했다.
* 딤전 1: 15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그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 이것은 그가 분명히 이전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말로 인자를 거역하기까지 한 죄를 포함한 모든 죄에 있어서 그것이 무지와 오해, 그리고 연약함에서 오는 순수한 인간의 실수일 경우에는 그 어떤 죄라도 용서받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회개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범죄의 대가는 반드시 치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하한 죄일지라도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
①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는 행위다.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이루어 놓으신 구속 사역을 각 개인에게 적용시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그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우리의 구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사역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의 적용을 본인이 거부한다는 것은 바로 영원한 사망을 의미한다.
구원은 온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외면하고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행위, 바로 이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커다란 죄다.
이 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하되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용서를 받지 못하는 죄임을 주님께서는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마 12: 32)
그러므로 모든 죄 가운데 예수를 믿지 않는 죄가 가장 흉악하고 무서운 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함과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
② 타인의 믿음을 방해하는 행위다.
타인의 믿음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는 천국 문앞에 버티고 서서 자기도 들어가지 아니하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이 이러한 악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무섭게 책망하셨다.
* 마 23: 13-16 –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도다. 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 도다.
이들은 자신만 복음에 대하여 거부하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도 영향력을 미쳐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자기는 물론 남까지도 멸망의 길로 인도하여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 역시 사함을 얻지 못하는 중죄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③ 그러나 마음을 돌이켜 주님을 영접하고 복음을 믿으면 모든 죄는 용서받고 구원의 축복을 얻을 수 있다.
용서받지 못할 죄란 성령의 역사, 즉 인류를 구원시키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개인에게 적용시키는 하나님의 수고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일을 말한다.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복음을 거부하는 일은 분명히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마음을 돌이켜 자신의 지난날을 회개하면서 주님을 구주로 모시고 복음을 믿는다면 그는 용서를 받게 되고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죄와 구원, 그리고 사망과 영생의 분기점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를 영접하여 그의 자녀가 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를 거부, 배척하여 사망과 어둠의 자녀가 될 것인가는 인간의 선택이다.
우리는 이 점을 명백히 알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놀라운 구원의 축복을 누리시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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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의 모든 죄와 모독은 용서받을 수 있다.
💖보좌의 능력과 축복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모든 죄와 모독은 용서받을 수 있다.
설교 감사합니다.
비난하거나 반대하거나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