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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제정안 운명의 날이 밝았다. 민주당 주도로 법사위를 건너뛰고 본회의에 직회부된 간호법이 27일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지난 13일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우려한 김진표 국회의장이 상정을 미뤘지만, 야당은 이번에는 꼭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반발하고 있다. 의석수를 내세워 법안을 밀어붙인다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거라고 엄포를 놨다. 평행선을 달리는 간호법. 하지만 1년 전 여야의 '입장'은 지금과는 달랐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간호법 제정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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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윤 의원(국민의힘) "니가 이야기하니까 내가 이야기하는 것 아니야!"
김원이 의원(더불어민주당) "지금, '니'라고 하셨나요?"
싸움이 나고 말았다. 소위원장 김성주(더불어민주당)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강기윤 의원님 조금 참으세요."
위원장의 '경고'에 강 의원은 '니' 대신 '씨'를 붙였다.
"김원이 씨가"
김 의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원이 위원이라고 얘기해 주세요. 기왕 쓰는 거. 왜 그렇게 나오세요?"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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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부터 딱 1년 전인 2022년 4월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 오전 10시에 시작된 소위에 상정된 법안은 총 60개. 이 중 의원들과 복지부 2차관 등 정부 인사들이 중점적으로 논의한 법안은 단연 '간호법'이었다.
강기윤 의원은 간호법 제정안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현재 법안은 껍데기"라고 평했다.
강 의원의 말을 듣던 소위원장 김성주가 발끈했다.
"아니 그러니까 흥분하지 마시고 얘기하시라고. 그동안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주장해 오시다가 왜 갑자기 오늘은 신중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1년 전만 해도 여야를 막론하고 간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컸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코로나 대응에 기여가 컸던 간호사들의 처우와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무르익던 참이었다.
김미애 의원(국민의힘) "이것을 우리는 절대 반대하지 않습니다. 할 거에요 간호법을."
정부측 참석자인 보건복지부 2차관 류근혁은 법안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간호사의 '업무범위'에 대해 정부 의견을 보탰다. '의사의 지도' 부분을 빼자는 일부 의원들의 의견이 있었지만, 복지부측에서는 '의사 등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치료의 보조'가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리고 열흘 뒤인 2022년 5월 9일 다시 열린 법안심사소회의에서 정부측 의견대로 간호법 제10조 '간호사의 업무'를 정의내린 간호법 제정안이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여기까지가 딱 1년 전의 이야기. 하지만 1년 뒤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여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정부까지 간호법에 대해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조규홍 복지부장관은 "간호법 제정에 회의를 느낀다"며 제정안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간호법을 별도로 논의하는 것보다는 의료법 체계 내에서 논의를 하는 게 간호사가 원하는 것을 빨리 해결할 수 있다"며 "곧 발표할 간호 인력 지원 대책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간호법제정추진범국민운동본부가 26일 열린 '간호법 국회 통과 촉구 수요 한마당'에서 300명의 국회의원을 향해 여야 합의로 마련된 간호법 국회 통과를 요청했다. 대한간호협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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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간호법 표결을 이틀 앞둔 지난 25일 간호사 근무 환경 개선방향을 담은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돌볼 수 있도록 인력을 늘리고, 간호인력 수급위원회'를 통해 간호대 입학정원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간호법 원안이 아닌 중재안에 힘을 쏟고 있는 정부여당이 지원 대책으로 간호사 달래기에 나선 모양새지만, 간호단체는 '원안통과'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간호사단체측은 '지역사회' 문구가 빠진 정부여당의 중재안을 절대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본회의 전날인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수요 한마당 시위에 나선 2만여명의 간호법제정추진범국민운동본부는 "1951년에 제정된 의료법은 세월이 흐르며 다양해진 간호업무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한다"며 "간호사는 보호자 역할부터 인턴 전공의 업무까지 1인 3역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간호법 제정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등 13개 의료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다음 달 총파업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26일 대한치과의사협회 홍수연 부회장이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저지를 위한 릴레이 1인시위의 피켓을 들고 있다. 보건복지의료연대 제공 |
여야는 지난 12일에 이어 26일에도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했지만 본회의 처리 안건을 합의하지 못했다.
야당은 상정이 계속 미뤄진 만큼, 이번엔 간호법을 꼭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저로선 국민 다수가 요구하고 국회 다수가 요청한 사안이 많은 만큼 더 이상 미루는 게 오히려 국회가 일을 못하게 발목 잡거나 국민 갈등을 더 확장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며 "제 임기를 마치면서 복잡하지만 결단 있게 정리할 일은 정리하면서 국회가 더 협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옳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본회의 의사 일정과 관련해 김 의장, 박 원내대표와 논의했다"며 "아직 완전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고 본회의 전까지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당은 야당이 간호법 등 쟁점법안 처리를 밀어붙인다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방침이다. 국민의힘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이 숫자의 힘으로 간호법과 방송법을 밀어붙인다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