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썼을지도 모를 식기에 / 이문숙
그가 죽었다
비 오는 바깥으로 화분들을 내놓는대
사물들은 냉혹하다
아무것도 추억하지 않는다
그의 무거운 머리를 받쳐주던
의자, 그의 손때가 묻어 있을
쌓아올린 책들, 때로는 내동댕이치고 싶었을
재떨이, 사체 같은 담배꽁초
텅 빈 그것들은 어는날 조용히 치워진다
우리는, 식당에서 그가 썼을지도 모를 식기에
밥을 타먹고, 타먹으면서 죽음을 잊는다
식기는 끊임없이 달그락거린다
모든 추억은 부정된다
오는 비에 나무들은 젖고, 꺽꺽거리는
까치들은 옥상 위에서 단단히 벽을 쫀다
식당에서 버린 밤찌꺼리를 먹고 크는
개의 외눈박이 눈이 많없이 터진다
사인(死因)은 없다 사인은 질문되면서 사라진다
창밖으로 오던 비가 슬그머니 멈추듯
아무것도 깨우지 못하는, 이유 없이 설렁설렁
왔다 가는 봄, 삼월, 봄에 사람들은
죽으러 절벽에 간다 바닥이 시커멓게
반질거리는 서해 바다에도
간다 꿈의 꿈, 꾸기 위해, 꾸지
못한 사람들은 옥루몽, 버려진 누각으로
소풍간다
개살구꽃 흐드러진
카페 게시글
┌………┃추☆천☆시┃
그가 썼을지도 모를 식기에 / 이문숙
하늬바람
추천 1
조회 563
26.07.02 09:38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