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와 나란히 세상을 뜨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1977∼1982년 네덜란드 총리를 역임한 드리스 판아흐트가 93세 일기로 별세했다고 dpa 통신이 9일(현지시간) 현지 매체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판아흐트 전 총리는 지난 5일 자택에서 부인 외제니와 함께 숨을 거뒀다. AP 통신은 둘이 나란히 손을 나란히 잡고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동갑내기인 판아흐트 전 총리 부부는 70년을 함께 살았으며,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dpa 통신은 전했다. 네덜란드에서는 특정 조건에서 안락사를 선택하는 게 합법이다.
1999년 이스라엘을 방문한 뒤 팔레스타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고인이 '권리 포럼'이란 연구소를 설립했는데 권리 포럼은 성명을 내고 동부 네이메겐에서 조촐한 장례식을 치른 뒤 안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성명을 통해 70년을 해로한 부인 외제지니 판아흐트를 고인이 평소에 늘 '우리 소녀'라고 부르며 아끼고 사랑했다고 전했다. 네이메겐은 둘이 처음 만나 사랑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변호사 출신인 판아흐트 전 총리는 2019년 팔레스타인 관련 강연 중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기독민주당(CDU) 소속으로 1970년대 초반 정계에 입문했다. 총리 취임 직전까지는 법무장관을 역임했다. 총리 퇴임 이후에도 당원 신분을 유지하다가 2021년엔 기독민주당의 이스라엘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탈당했다.
마르크 뤼터 총리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판아흐트 전 총리가 "분극화 시대에 네덜란드 정치에 색채와 실체를 부여했다"고 조의를 표했다.
고인은 지독한 사이클광이기도 했다. 2019년 낙상한 뒤 다시는 사이클 안장에 앉지 못했다. 세 자녀가 유족으로 남았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뇌, 심장 계통의 불치병 환자 중에 신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 면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이 지속되는 환자에 대해 안락사를 허용한다. 약물을 의사가 투여하는 방식과 함께, 의사가 공급한 약을 불치병 환자가 직접 투약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2022년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를 택한 사람은 8720명이다.
동반 안락사는 네덜란드에서도 드문 사례이지만 최근 들어 늘어나는 추세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동반 안락사 사례가 보고된 2020년에는 26명(13쌍)이 동반자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 이듬해에는 32명(16쌍), 2022년에는 58명(29쌍)이 동반 안락사를 택했다. 지금까지 안락사를 택한 이들은 9000명에 이른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다만 동반 안락사를 요청하는 경우에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지속되고, 불치병이며 환자가 오랫동안 죽음에 대한 의사를 밝혀왔는지 등 여섯 가지 엄격한 요건을 전문가가 검토해 안락사를 실시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이런 조건에 부합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동반 안락사는 흔치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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