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afe.daum.net/shogun/MB5/5141
https://www.youtube.com/watch?v=6JuqzdIhi0I
사용한 모드는 정난연윤 모드(14세기 동아시아 배경입니다. 영어로는 moon and star 입니다.)
☆설명 : 고려가 중장기병(마갑 기병)을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대표적인 기록이 1104년 2월, 여진족이 정주성에 쳐들어왔을 때 전면 패주의 위기에 몰리고 있을 때 고려의 무장이었던 척준경이 총사령관인 임간에게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중무장한 말을 요구한 기록입니다. "아군이 패배하자 척준경은 임간에게 부탁해 무기와 갑옷 입힌 말을 얻은 다음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 한 명의 목을 베고 아군 포로 두 명을 되찾았다. 그런 뒤 교위(校尉) 준민(俊旻)·덕린(德麟)과 함께 활을 쏘아 각각 한 명씩을 거꾸러뜨리자 적들이 약간 물러났다. 척준경이 퇴각하는데 적 1백 기(騎)가 추격해오자 또 다시 대상(大相) 인점(仁占)과 함께 적장 두 명을 사살했다. 적들이 전진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아군은 무사히 성으로 들어 갈 수 있었으며, 이 공으로 천우위(千牛衛) 녹사참군사(錄事參軍事) 벼슬을 받았다." 『고려사』 권127, 열전40, 반역1 척준경
또한 후삼국 시대에 후백제에서는 갑사라는 철갑으로 중무장한 기병대가 있었는데 이들을 정예병으로 쳤으며 실제로 후백제의 왕이었던 견훤은 한반도에서 마지막으로 철기병을 대규모로 운영한 군주였다고 합니다.
다만 중무장 기병을 정예병으로 치는 것은 고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 고려는 후삼국 통일 이후로도 중기병을 애용하였습니다. 이후에 고려와 거란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귀주대첩에서 고려 중기병들이 궁기병 위주의 거란군의 후방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둔 예가 있지만 향후에 고려가 중장기병을 주력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낮아보입니다.
또한 마갑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학설에서도 예전에 비해 중기병의 비중이 크게 낮아졌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시 체제 상황인 후삼국 시대에는 단기전과 속도전 때문에 기병의 비율이 많았지만, 후삼국이 통일되고 나라가 안정해지고 평화로워지자 보병 체제 위주로 전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