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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토후막 원문보기 글쓴이: 눈산
[작품따라 맛따라] 꼬들꼬들 겨울에 더 맛있는 생선모듬회 | ||
# 강영환의 詩 '아버지 젓가락' | ||
부산일보 2008/12/11일자 034면 서비스시간: 16:27:25 | ||
'남해 창틈으로 배가 들어왔다 천천히 / 바다 바람에 실려 와 / 상 위에 가득 부려놓은 도다리는 / 봄이 좋다고 야단들이지만 / 보릿고개가 높아 숨이 차는 젓가락이 / 살점을 들었다 놓았다 여윈 빈 몸에 / 상위를 걷는 발자국 소리만 요란했다' (강영환의 시 '아버지 젓가락' 전문) 강영환 시인을 만났다. '지리산의 시인' '산복도로의 시인'. 그를 부르는 수식어들이다. 그만큼 그의 고향 지리산과 서민의 삶을 상징하는 산복도로를 천착한 작품들이 많다는 뜻이겠다. 부산 민예총을 설립하여 초대회장을 지냈고, 요즘은 문예지 '남부의 시' 복간을 준비 하느라 여념이 없는 왕성한 열정의 시인이다. 초량 부산국토관리청 맞은편 부근의 '용궁횟집'. 강 시인의 30년 단골집에서 '아버지 젓가락'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 "아버지의 빈 젓가락질은 가없는 사랑입니다. 자식들이 올망졸망 맛있게 먹는 모습에, 젓가락이 가다가 멈추고 또 가다가 멈춥니다. 그저 밥상 위를 '탁탁' 치는 빈 젓가락 소리만 요란하죠. 오랜만의 성찬에도 아버지의 젓가락은 여윈 빈 몸입니다. 그저 먹을거리 풍성한 봄을 기다리는 가족 사랑의 상징이죠." 새로운 갑자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아버지의 '빈 젓가락'의 깊은 뜻을 새삼 헤아리게 된다는 요즘의 강 시인이다. 강 시인의 학교 동료이자 30년 지기인 박병길씨와 자리를 같이 한다. 그는 강 시인을 '원칙과 기준의 시인'이라고 평한다. 원칙에 어긋나는 것을 싫어하고 기준 속에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부산 민예총을 무리 없이 이끌었던 것도 그 '원칙과 기준'이 분명했기 때문인 것도 같다. 오랜만의 오붓한 술자리라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간다. 그 사이 봄을 기다리는 가자미, 넙치회 모듬차림이 나온다. 가리비 구이, 생굴, 미역국, 호박전, 생미역, 배추생김치 등 맛깔스러운 곁들이 음식도 상을 채운다. 하나하나가 신선하고 먹음직스럽다. 우선 넙치 날개살 한 점 맛본다. 아련하게 깊은 고소함이 밀려온다. 원래 넙치는 찬바람이 불면 맛있지만 그 고소함이 특별하다. 살이 꼬들꼬들 탄력이 있으면서도 감칠맛이 풍부하다. 이 집의 30년 근속 주방장에 의하면 회를 장만한 뒤 1시간여 숙성을 시키기 때문이란다. 가자미회는 봄을 기다리는 맛이다. 아직 채 익지는 않았지만 봄의 풍성함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봄맛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가리비 구이를 먹는다. 짭조름한 육즙에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긴다. 쫄깃쫄깃 씹히는 조갯살이 달큼하면서도 고숩다. 미역국 한 술 떠먹어 본다. 국물이 간간하면서 시원하다. 푸들푸들한 미역의 식감을 잘 살렸다. 생굴도 살이 올라 통통하게 보기 좋다. 맛도 올라 기름지고 그윽하다. 몇 순배의 술잔이 돌자 매운탕이 들어온다. 붉게 끓어대는 매운탕이 마치 바다의 낙조 같다. 뚝배기 안에서 놀이 붉게 타고 있는 형국이다. 떠먹어본다. 국물이 걸쭉하면서 진하다. 그리고 뒤끝에 시원한 맛이 돈다. 거섶도 양념이 배어 씹을 만하다. 한겨울 봄을 기다리며 모랫바닥에 엎드려 있는 도다리. 상에 올라온 도다리를 보면서 '삶의 봄'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젓가락. 젓가락질 요란한 밥상 앞에서 빈 젓가락 슬그머니 내려놓는 부모의 마음, 감히 자식은 헤아릴 수 있을까?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