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왕 대소는 주몽의 형이면서 서기 22년 대무신왕의 정복군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가는 것은 서기 22년이면 주몽이 사망한 시기는 기원전 19년이니 40년이라는 시차가 납니다.
뭐 형이 동생보다 40년 이후에 사망하는 거야 그럴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실제 그러한 경우는 동생이 특별히 병에 걸려 젊은나이에 일찍 사망한 경우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문제입니다.
거기다가 대소의 구체적인 출생연대가 나와있지는 않지만 주몽이 기원전 58년생이고 금와왕의 아들이 여럿일것이라고 본고 그중에 주몽의 연령상 서열이 한참 아래라고 본다면 대소가 주몽보다 10살이상연상일 가능성도 큽니다.
만일 주몽이 금와왕의 아들중 연령상 2~3번째 순위라고 한다면 대소는 아무리 늦어도 주몽보다 2~5살은 많다는 것인데 그렇게 잡아도 대소의 출생시기는 기원전 65~60년정도는 잡아야 합니다.
이렇게 보아도 대소는 80이 넘어서 사망했다는 것인데 그것도 일반 자연사가 아닌 전사라는 것이 이상합니다.
단순히 기록으로만 보아도 전사한 시기가 최소 80대이고 많으면 90대도 될수 있는데 이런 노인네가 어떻게 전장에 나갔다는 것인지?
그렇기에 제가 생각하건데 22년 대무신왕 정복군에 의해 전사한 부여왕은 대소자신이 아닌 대소의 아들이거나 손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정확히 추측하자면 대소의 손자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한세대의 길이가 지금보다 짧았고 수명도 짧았기에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할것입니다.
대소의 손자라고 하면 그 시기에 30대 정도연령층이 가장 적합합니다.
첫댓글 강감찬은 948년 출생으로 1018년 상원수가 되어 거란을 무찔렀습니다. 당시 장군의 나이는 71이였습니다. 그리고 장수왕이 친히 백제를 정복했을 때의 나이가 82였습니다.
단순히 나이만을 가지고 부여왕이 대소가 아닌 대소의 손자라는 보는 것은 조금 무리가 아닐까요?! 고구려의 명림답부는 사서에 기록에 의하면 100세가 넘은 나이에 대장군으로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저는 주몽보다 대소가 나이가 어릴 것이라고 봅니다. 주몽은 암살이 확실해보입니다. 그렇다면 대소의 나이는 삼십대 중후반 정도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별 문제 없네요
이도형님의 주장은 삼국사기 기록을 전면부정하는 것인데 근거가 없는것 같군요...^^
대소가 형이라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없습니다. 주몽이 죽었을 때 대소의 나이가 삼십대 중후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대소는 무휼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삼국사기를 부정한다고 무조건 잘못됬다고 보는건 옳지 않다고 생각되네요 일제가 우리나라 고서를 20만권이나 불태웠다는데 그책중에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뒤집을만한 역사서가 있었을지 누가 압니까?
일본이 우리 역사서 이십만권 태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고대사서가 아닙니다. 월남망국사, 서사건국지 같은 민족의식을 강조하는 사서입니다. 고대사서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