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정지용
선뜻! 뜨인 눈에 하난 차는 영창
달이 이제 밀물처럼 밀려오다.
미욱한 잠과 베개를 벗어나
부르는 이 없이 물려 나가다.
한밤에 홀로 보는 나의 마당은
호수같이 둥긋이 차고 넘치노나
쪼그리고 앉은 한 옆에 흰 돌도
이마가 유달리 함초롬 고와라
연연턴 녹음(綠陰), 수묵색(水墨色)으로 짙은데
한창때 곤한 잠인 양 숨소리 설키도다.
비둘기는 무엇이 궁거워 구구 우느뇨
오동나무 꽃이야 못 견디게 향그립다.
[어휘풀이]
-영창(映窓) : 방을 밝게 하기 위하여 방과 마루 사이에 낸 두 쪽의 미닫이
-미욱한 : 미욱하다. 어리석고 미련하다. 여기서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함.
-함초롬 : 함초롬하다. 가지런하고 곱다.
-연연터 : 연연(娟娟)하다. 빛이 엷고 곱다.
-궁거워 : 궁겁다. 궁금하다.
[작품해설]
이 시는 시인 자신에 의해 전반부 2연과 후반부 4연의 두 단락으로 나뉘어져 있다. 전반부는 누워 있던 시적 화자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까지의 과정, 후반부는 달밤의 정경을 그리고 있다. 휘영청 밝게 영창을 통해 ‘밀물처럼 밀려오’는 달빛에 잠이 깬 화자는 ‘미욱한 잠과 베개를 벗어나’ ‘부르는 이 없’어도 달빛을 좇아 밖으로 나간다. 달빛은 마당에 ‘호수같이 둥긋이 차고 넘’치고, 밝은 달빛에 ‘쪼그리고 앉은 한옆에 흰 돌도’ 곱게 빛난다. 그것을 ‘이마가 유달리 함초롬 고와라’ 라고 의인화하여 표현함으로써 친근감이 넘친다. 빛이 엷고 녹음(綠陰)은 달그림자에 수묵색으로 짙게 보인다. 밤은 지극히 고요하여 누군가의 곤하게 자는 숨소리가 화자의 귓가에 거칠게 들린다. 이때 구구하는 비둘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오동나무 꽃이 몹시 향기롭다.
이렇게 이 시는 달빛의 풍성함(3연 – 시각적 이미지), 달빛의 밝고 차분함(4연-시각적 이미지), 달빛의 고요함(5연 –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등의 달밤의 정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시상을 6연에서 비둘기 울음소리(청각적 이미지)와 오동나무 꽃향기(후각적 이미지)로 마무리함으로써 달밤에 느끼는 화자의 정취를 더욱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절제된 언어구사와 감각적 이미지의 사용이 매끄럽게 조화되어 정지용 시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작가소개]
정지용(鄭芝溶)
1903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 휘문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 『카톨릭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 『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1950년 납북,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