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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지는 내 친구
김 선 구
퇴임 후 좀 더 조용한 삶의 공간을 찾아 경산으로 이사했다. 주위환경이 한적하고, 즐겁게 산책 할 수 있는 장소가 여러 곳 있었다. 그 중 나는 남매지 주변을 걷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남매지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얼마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작은호수이다. 옛날에는 농사를 위한 물 관리용 저수지였던 것이 경산시가 도시화됨에 따라 시민들 휴식처로 탈바꿈 하였다. 호수 주변을 잘 정비하여 산책로를 개설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마다 남매지 주변을 거닌다. 호숫가를 한 바퀴를 걸으면 육 칠 천보가 되니 우선 건강관리에 좋고,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오늘 아침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남매지로 나갔다. 봄철이어서 남매지 물이 더 그득해 보였다. 물 위로 이름 모를 물새들이 유영하며 지나갔다. 한 겨울 얼음 속에서도 떼를 지어 다니며 강인한 모습을 보이던 까만 오리새끼들은 보이지 않고 다른 새들이 자유스럽게 봄을 만끽 하는 것 같다. 오리들은 다른 서식지를 찾아서 이동한 모양이다.
호수를 끼고 왼편으로 한참 걸으니 맞은편 멀리에 보이는 성암산을 마주했다. 성암산은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 자주 올라갔던 산이다. 이제는 오르지 않고 멀리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수려한 모습에 정감을 느낀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똑 같은 산이 호수 속에도 잠겨 있다. 물속에 잠긴 산의 모습은 더 신비롭고 다감하게 보였다. 호수가 산을 품은 모습에 어머니와 같은 인자함을 느끼게 한다.
계속하여 발길을 재촉했다. 호숫가에 드문드문 서있는 버드나무에 끝에 새순들이 꿈틀대었다. 초록색 잎들이 뾰족 뾰족 솟아오르는 모습에서 생명의 약동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반면 저 멀리에는 삐죽 삐죽 솟아있는 나무 등걸모습이 몇 개 보였다. 말라빠진 연꽃 줄기들이다. 지난겨울 죽은 시체마냥 주뼛주뼛 무더기로 서 있더니 거의가 다 물속으로 잠겨 버리고 등걸만 몇 개 남아있다. 이제 새로운 연잎이 올라오도록 주변을 정리하는 모양이다.
지난해는 남매지를 산책하며 연꽃이 자라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봄이 되어 조그만 연잎들이 수면위로 얼굴을 내밀더니 무성하게 성장하여 수면을 덮었다. 성년이 된 연잎들은 수면 위로 솟아오르고 마치 밀짚모자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오목한 모습으로 변했다. 무엇이던 품어 줄 것처럼 넓은 연잎은 비가 내리자 빗방울을 모았다. 그러나 물이 고이자 넘치는 물을 쏟아내 버리고 지탱할 수 있는 양만 품에 안았다. 자애로운 어머니 같지만 품위 있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연잎 위에 얹힌 물방울들이 격조 높은 장신구처럼 아름다웠다.
뿐만 아니라 연은 꽃을 피웠지만 야단스럽지 않았다. 땅위의 초목들은 꽃이 피면 화사하여 온 시야를 앗아갔다. 허지만 연꽃은 무성한 연잎들 사이에 손님이라도 되는 양 소담스러운 모습을 하였다. 연잎들의 향연을 뒤에서 성원해 주는 듯이 한 발짝 물러 서 있는 것이 연꽃의 자세이다. 이윽고 꽃잎이 지고 연밥을 만들더니 연잎들도 하나 둘 갈색으로 변하여 갔다. 잎은 떨어진 자국도 없이 물속으로 잠겨 버리고, 앙상한 줄기만 물위에 주뼛이 남았다. 마치 인생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듯 했다. 금년에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겠지...
남매지 주위를 걷다보면 여러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대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새로운 생각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늘그막에 다정하게 산책하는 부부모습도 보이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뒤뚱 걸음 하는 환자도 있다. “건강이 많이 호전 되었습니다”하고 인사 한마디에 매우 기분 좋은 표정이다. 개를 끌고 가며 사람 대하듯 이것저것 잔소리하며 가는 할머니도 있고, 음악소리 들으며 혼자서 흥을 떨며 걷는 할아버지도 있다. 아마 할머니는 평소 하던 버릇을 못 버려서 개에게 대신 잔소리 하는 것 같고, 할아버지는 할머니 잔소리가 싫어서 음악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모양이다. 그래도 때로는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가 쉼터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은 친구가 필요한 존재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언뜻 고향에 있는 친구를 떠올려 보았다. 나하고 고등학교와 대학을 같이 했던 친구가 있다. 청소년 시절을 같이 보냈으니 가장 의기가 잘 통하는 사이이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도 아니고, 이해타산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좋아 지냈던 사이이다. 성년이 된 후도 변함없이 지내고 있다. 고향집에 일이 생겨 부탁하면 스스럼없이 나서서 처리해 주었다. 무엇이던 안심하고 부탁할 수 있으니 나에게는 진실한 친구이다.
또 한사람 내세울 수 있는 친구는 M시에 살고 있는 K교수이다. 그는 근 30년을 함께한 직장동료이다. 우리는 성격상으로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서로 인격을 존중하는 사이였다. 그 때문에 조화를 잘 이루었는지 모른다. 일찍이 내가 장기간 해외출장을 떠나면서 내 가족들의 안위를 부탁하고 갔었다. 내가 없는 동안 우리 가족들이 처했던 어려운 일들을 잘 처리해 주었다. 내 가족이 지금도 그 고마움을 얘기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말하는 ‘진실한 친구’는 ‘자식과 아내와 재산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 했다. 여기에 빗대어 보면 두 사람 모두 나의 진실한 친구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여기에 나는 또 하나의 친구를 지정하고 싶다. 남매지이다. 가까이서 언제나 나를 반겨주니 어찌 친구가 아니겠는가! 당쟁에 시달렸던 윤선도는 고향에 내려가 수석과 송죽 그리고 달을 벗 심아 지내었다한다. 그렇듯 내 또한 남매지를 친구라 일컫고 싶다.
사람들은 말한다. “친구는 많지만 진실한 친구는 적다”고.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백발이 되도록 사귀어도 그 속을 모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타고 난 속성이니 탓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서로 간에 마음을 열고 믿음을 보여줄 때 친구가 될 수 있다. 또한 마음 속 지니고 있는 아픔을 나누고 기쁨을 베풀어줄 때 진실한 친구라 할 것이다. 남매지는 갖고 있는 것 모두를 숨김없이 보여주고 베풀어 주니 진실한 친구라 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첫댓글 경산에 쉼터 남매지를 거닐면서 연꽃이 자라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셨어 글을 올려주심 너무 감사합니다. 겸손하면서도 고고한 품위를 잃지않는 한발짝 물러선 여인의 모습이라고 받아드려도 될까요? 연꽃예찬에서 나도 연꽃같이 살고싶지만 산책 나온 할머니 모습으로 변해짐을 발견합니다. 자연의 순수함이 그리워 남매지가 있는 경산을 택하심은 이렇게 아름다움을주는 자연을 문우들에게 선물하셨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저도 매년 한 두번은 경산 남매지를 찾아 산책하곤 합니다. 거기에는 사람 사는 모습이 있고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순환이 있었습니다. 그 남매지를 친구로 삼고 오래된 벗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때로는 자연도 훌륭한 벗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진실한 친구 남매지를 산책하며 보고 느끼신 글 잘읽었읍니다.감사드립니다.
진정한 친구 두명과 인간이 아닌 자연을 친구로 삼은 점이 특이합니다. 이해타산을 따지는 사람보다 자연이 오히려 더 좋은 친구가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남매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예전 수성못을 관리하여 매일 한바퀴 돌던 생각도 떠올랐으며, 자연도 벗으로 삼고 지내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의미를 주는글 잘 읽었습니다.
남매지를 한 달 전에 가 보았더니 주위 환경이 많이 변해서 이 곳에 살면 얼마나 좋을 까 생각했습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남매지가 슬픈 사연을 담고 있으면서도 경산시민의 힐링 공원으로 사랑을 받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내 모든 것을 믿고 내어줄 수 있는 진실한 친구가 누구인가? 몇 이나 되는가? 곰곰 생각해도 언뜻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김선구 선생님이 마음을 내어 주고 위안과 행복을 얻는 남매지,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경산에 살면서 가끔 남매지 공원을 찾곤합니다.
경산시내에 위치한 남매지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입니다.
여름 저녁에는 분수쇼를 하고요. 굉장히 시원합니다.
남매지란 남매가 못을 만들었다고 남매지라 합니다.
마음의 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