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된 천마총(天馬塚)
한국의 청춘 넘녀는 물론, 전세계 젊은 이들이 열광적으로 모여드는 경주 향리단길은
말 그대로 쌍전벽해가 되어 있었고,경주의 랜드마크가 된 듯 했다.
4월 초순에 들른 이 날도 길거리 전체가 10대~ 20대의 젊은 청춘남녀들로 꽉 차 있었다.
허름했던 지난 날의 거리 주변을 다양한 최신형 현대식 건물디자인으로 리모델링 한 후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 카페와 맛집과 즐길 수 있는 관광인프라 가게가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어
이 향리단길에 들어서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젊은 기분과 감정으로 들뜨게하는 분위기로 조셩되어
있었다.
이 향리단길을 지나 큰나무숲으로 우거진 대릉원에 들어서니 갑자기 내가 천년전의 신라인이 된 듯한 몽환적인 착각이
들었다. 고요하고 아늑한 대릉원 안의 분위기는 심신의 활력을 신라 화랑도청년의 기력으로 단숨에
채워주는 듯 한다.그래서 여행은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도하나 보다.
천년 고도 경주는 세계 10대 역사문화도시로서 신라 천년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 넓은 지역을 갖고 있는 경주시는 감포바다 가운데 있는 문무대왕 수중릉에 이르기까지 시 관할 땅
전체가 땅 위는 물론 땅 아래에도 역사유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박물관 자체인 고장이다.
그 중에서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수 많은 고분군들 중 대릉원 안에 있는 왕릉이라 추정되는 제 155호 고분을
1973년 박정희대통령의 결단으로 발굴 작업에 들어가 대박을 친 곳이 천마총이다.
천마총은 신라 22대 지증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무덤의 축조 시기는 6세기경으로 보고있다.
이 155호 고분 발굴을 통해 천마총금관(국보 제 188호)과 천마총관모(국보 제 189호),천마총 금제허리띠
(국보 제 190호),천마 장니 천마도(국보 제 207호) 등 4점의 국보출토는 물론 수 많은 보물과 부장품 1만 1297점이
출토되었다.천미총 금관은 지금까지 발굴한 금관 중 가장 크다고 하며 ,이때 발견된 천마도는 자작나무 수피로 만들어
천 수백 년간 산성토양 속에 파묻혀 있었는데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음은 기적의 역사를 썼다.
천마총이란 이름은 고분 발굴 당시 출토된 천마도 그림 때문에 지었다. 제 155호 고분 무덤안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채색으로 천마를 그린 말다래(국보 제 207호)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고 명명되었다.
(*말다래 :말의 발굽에서 튀는 흙을 막기 위해 안장 양족에 달아 늘어뜨린 판)
곁에서 본 금관, 관모,허리띠,신발 등등 금으로 만든 출토품들은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약 1500년전
당시의 고고한 금세공기술에 찬사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채색으로 하늘을 달리는 천마도를 그린 바탕 화폭인 자작나무 수피를 봐도 당시 1500년전 제지기술의 우수성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멋있는 자작나무 수피 화폭 위로 자기의 모든 기예와 영혼까지 쏟아 부어며 천마도를 그린 화백은 혹시
그 유명했던 솔거가 아니었을까?
첫댓글 중학교 수학여행 때 처음 가보고 지금까지 못가봤습니다.
올 여름 휴가 때, 그 시절 그 호기심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집니다.
천마총 이야기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간 날도 인산인해였습니다.
경주는 갈 때마다 여행의 묘미를 느낍니다.
아씨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