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해무를 뚫고 붉은 해가 솟아오르자 함성이 울려 퍼진다. 카메라를 내밀어 사진을 찍는 사람, 양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소망을 빌고 있는 사람, 풍선을 날리며 소망을 기원하는 사람…, 모두 무슨 소망이 그리도 많은지. 아마 그 소망들의 끝은 복된 삶을 누리고 싶은 인간의 바람이 아니겠는가. 절정을 이루던 꽹과리 소리와 나발 소리도 한풀 꺾이고, 풍물놀이가 사그라지자 해는 어제의 해처럼 평상으로 돌아버리고 하산 행렬이 분주하다. 나도 여느 날 새벽 등산의 하산 길처럼 평범한 아침이다. 다만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은 방금 뜬 해에게 복을 청구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아마 이런 인사는 음력설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부터 시작해서 산길을 오르는 내내 왠지 모르게 꺼림칙하다. 이곳에 이사 온 후 십 년 동안 한결같이 셔틀버스로 삼사십 분이 걸리는 간절곶에 해돋이를 갔는데 번잡하고 귀찮아서 이번부터 가까운 뒷산으로 바꾸었기 때문이었을까. 간절곶이란 이름만큼이나 소망을 간절하게 기원하면 들어 줄 것 같았는데…, 그냥 가던 곳으로 갈 걸 하는 생각이 일 년 내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지는 않을는지 무게만큼이나 내 마음도 무겁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휴대전화는 연신 울어댄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하나같이 복을 받으라고 하는 고마운 덕담이다. 진짜 많이 받고 싶은 것이 복이다. 하지만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자세하게 받을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메시지는 하나도 없다. 나도 그분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답장을 보내지만, 복을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복이란 무엇일까 새삼스럽게 복이란 단어를 곱씹어본다. `편안하고 만족한 상태와 그에 따른 기쁨. 좋은 운수. 복조(?福祚).` `배당되는 몫이 많음`이라고 사전에서 복을 설명해준다. 새해에는 어디에서 듬뿍 복을 받았으면 참 좋겠다. `받다`라는 단어도 스스로 할 수는 없기에 타동사다 `주는 것을 가지다.` `어떤 행동이나 작용의 영향을 당하거나 입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스스로 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이 주는 것을 가지라는 것과 어떤 행동이나 영향을 당하거나 입는다는 뜻이다. `기원하다`도 타동사로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빎`이라는 의미다. 복을 바라니 이루어지기를 빌 뿐 스스로 찾아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에 기원하고, 신이나 우상에게 기원하는 것인가 보다. 모든 단어의 의미를 종합해 보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또는 `행복을 기원합니다.`라는 메시지는 올해에도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염원의 덕담이리라. 복을 기원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기원한다고 가져다줄 사람이나 신은 없다. 복이 깃들기를 바랄 수만은 없다. 아무런 작위도 없는데 복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지는 않을 것이다. 복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옷도 만들고, 글도 만들고, 곡식도 만들어서 살면서 복도 만들어서 사용하면 좋으련만. `짓다`라는 단어가 새해 벽두에 떠오른다. `복을 짓다` `복을 경작하다.` `글을 짓다` `밥을 짓다` `농사를 짓다`처럼 스스로 주체가 되어 복도 생산하고 나누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새해에는 복 많이 지으세요." 복도 농사를 짓듯이 봄부터 열심히 복의 씨를 뿌리고 여름 동안 땀 흘려 가꾸어 가을에 많은 복을 수확하는 것 일게다. 복을 타인이나 신이 내려주는 것을 받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밭에 복의 씨를 뿌리고 가꾸어서 수확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올해부터 해돋이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해야겠다. 새해에 돋는 해에 소망을 기원하는 것처럼 복을 받기를 바라지만은 않겠다. 한 해의 벽두에 불변하는 영원한 에너지인 태양을 당당하게 바라보면서 나는 올해 이렇게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약속하는 것이 복의 씨를 뿌리는 것이리라. 새해 봄까지는 일 년의 복 짓기를 계획하고(plan) 복의 새싹이 돋으면 잡초를 뽑으면서 열심히 여름에 땀 흘려 가꾸기를 실행하고(do) 늘 처음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있는지를 스스로 감시 감독하여(See) 복 짓기가 풍년이 들면 우선 나부터 가지고 남에게도 나누어 주리라.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나도 마음의 밭에 복 씨를 뿌리겠다고, 그리고 가꾸는 방법을 공유하고 풍년이 들거들랑 나누어 갖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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