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가마쿠라 막부가 들어서기 전에 있던 본래의 사무라이는 후대에 변형된 사무라이하고는 달랐습니다.
본래 사무라이는 천황을 모시는 제사집단과 무사집단을 겸했는데 후세에 천황의 힘이 약해지고 지방 봉건세력이 강해지면서 지방 성주를 모시는 무사 집단 사무라이로 그 지위가 변형되었던 것이라 안경전 종도사님께서는 밝혀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천황을 모시는 제사집단은 어디서 왔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왕을 모시면서 하늘에 천제 제사를 지내던 무리들을 근래 통일신라에서는 화랑이라 불렀으며 그 이전에는 고조선에 삼랑이라 불러왔습니다.
이들 고조선이 망한후 삼국시절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유민들이 차례로 일본에 건너갔으며 삼랑(삼시랑)이 사무라이가 되었습니다. 삼랑의 받침 ㅁ,o을 일본식으로 빼서 네 글자로 발음하면 사 무 라 이 가 됩니다.
그러면 삼시랑의 중간 "시"는 일본에서 글자로 사무라이를 쓸때 모실 시자 하나로 표현을 했습니다. 정말 뿌리를 밝히는 일은 소중하다 생각되었습니다.
그럼 이 삼랑들의 존재는 누구인가?
본래 삼랑은 태백일사, 삼성기등에 따르면 환국, 배달, 고조선에서 환인천제, 환웅천황님을 모시던 앨리트 제사장(무사)였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건국하고 때로는 나라를 왕을 보필하면서 경영했습니다. 그런 제도를 그대로 베껴서 차용한 것이 화랑이였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천제를 모시던 분은 바로 삼신상제님이셨습니다. 아직도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을 가시면 '삼신상제님'께서 천제를 모시던 참성단이 존재합니다. 그 곳 바로 밑의 절 이름이 삼랑성입니다.
삼산 상제님은 삼국사기에서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결혼을 중재해 주셨다고 나오는 그 상제님이십니다. 우리가 역사를 잃어버려서 그렇지 모든 김씨들은 바로 상제님께서 직접 주관하셔서 인류 씨를 뿌려주셨던 것입니다. 삼국사기 그 먼 인도의 공주 꿈에 상제님이 나타나셔서 너 머나먼 한국에서 김수로 왕이 기다리고 있으니 불교를 믿던 인도국 공주를 가보라고 명을 내리신 것이죠.
이것은 실화이며 정사입니다.
아직도 밀양의 부은사를 가시면 그때 허황후께서 싣고 오신 요니를 상징하는 돌과 불교물품들이 있습니다.
상제님은 불교의 미륵부처님이라는 것을 이 구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무라이 투구에 삼신과 칠성을 뜻하는 상징들이 박혀 있는 것만으로도 그 흔적을 일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신 상제님께서는 칠성에 거주하시기에...그 정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가 되겠습니다.
왕이 거주하는 경복궁에는 왕이 등극하는 궁전이 따로 있습니다. 왜 왕위에 오르다라고 하지 않고 등극하다고 표현했냐면,
왕위에 오르는 날, 그 영혼은 하늘의 칠성에 올라가 상제님께 신고식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를 등, 입극할 극을 써서 황제에 오르다고 한것이죠. 위에는 상제님이 아래는 황제님이 통치를 하는 것이 천지정사를 보는 고대 동방의 도였습니다.
건무 24년(서기 48) 7월 27일, 김수로왕은 자신의 혼인식을 준비하라고 명하며, 신하 유천간은 배와 좋은 말을 가지고 망산도(김해시 칠산)에서, 신귀간에겐 승점(위치 미상)에 가서 기다리라 하였다.
얼마 후, 바다의 서남쪽에서 붉은색 돛을 단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유천간은 봉화를 올렸고 신귀간은 급히 수로왕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보고 했다.
왕은 곧 구간(九干, 부족장들)에게 명하여 그 배를 맞이하게 했다.
김수로왕은 궁전에서 60보(600m 정도) 떨어진 들에 임시 장막을 치고 배에서 내린 일행을 기다렸고, 왕후는 포구에 내려 쉬다가 입고 있던 비단 바지를 예물 삼아 산신령께 제사드렸다.
허왕후 일행은, 신보, 조광, 모정, 모량 등 잉신(시집갈 때 딸려보내는 신하) 4명과 노비를 합하면 20여 명이었다. 그들이 갖고 온 금은보화는 모두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왕후 일행이 천천히 왕의 장막으로 다가왔고, 김수로왕은 왕후를 맞아 궁전으로 들어왔다. 잉신들에게는 모두 방 한 개씩을 주어 지내게 하고 노비들에게도 방을 제공했다.
이들에게는 난초로 만든 음료, 각종 비단과 채색된 옷과 자리를 내려 최고의 예우를 다했다.
마침내 왕과 왕후는 장막의 침전에 들었고 2박 3일간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때 왕후는 "저는 아유타국 공주로 이름은 허황옥입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5월에 아버지가 꿈에서 하늘의 계시를 받고, 가락국 김수로왕에게로 시집보냈다고 하였다. 왕은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신령하여 그대가 올 날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화답했다.
신관이 너무도 같지요. 종도사님께서는 슈겐도(수험도)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고구려의 조의선인이 창건한 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본거지를 가보면 놀랍게도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사찰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환단고기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진 분들은 직접 일본을 일주일만 돌아보면 바로 깨달을 수 있으 실겁니다. 무엇이 중한지를요... 이에 대해서 사실 양심있는 일본 학자들도 실토를 했습니다